[역사로 보는 정치] 청의 멸망 재촉한 의화단 사건과 한국당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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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청의 멸망 재촉한 의화단 사건과 한국당 망언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3.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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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극단적인 과거사 발언으로 보수 재건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愚를 범하지 않기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한국당, 극단적인 과거사 발언으로 보수 재건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愚를 범하지 않기를 사진제공=뉴시스
한국당, 극단적인 과거사 발언으로 보수 재건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愚를 범하지 않기를 사진제공=뉴시스

1900년에 발생한 의화단 사건은 청의 멸망을 재촉한 역사의 반동(反動)이다. 산둥 지방을 중심으로 발호한 의화단은 서양인과 그들에 협조적인 중국인, 그리고 그리스도교도를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부청멸양’을 기치로 삼았다. 이는 청을 도와 서양 침략세력을 멸하자는 극단적인 애국주의였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패전으로 국가 존망이 위태로워진 청나라로서는 의화단의 테러에 고무됐다, 청의 실권자 서태후는 의화단을 배후에서 조정해 서양 세력과 맞서게 했다. 베이징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외국인을 겨냥한 테러가 자행됐다.
 
의화단 테러의 절정은 베이징의 외국인 거주 지역 습격 사건이다. 이들은 외국인 수십명을 살해했다. 제국주의 열강도 이들의 테러에 분노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서양군대와 아시아의 헌병을 자처하며 제국주의에 동참한 일본군이 연합군을 만들어 베이징으로 진격했다.
 
영화 <북경의 55일>은 의화단 사건을 서양의 시각으로 그린 영화다. 아시아의 병든 돼지 청은 당초 신무기로 무장한 8개국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서태후는 베이징 함락이 임박하자 시안으로 도망쳤다.
 
베이징을 점령한 연합군은 의화단 소탕을 명분으로 무고한 민간인에게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 강간 등을 자행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애꿎은 중국 민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의화단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획득했다. 만주 내 철도 보호를 이유로 삼아 수십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켰다. 청은 자신들의 발상지를 러시아의 군화에 짓밟힌 것이다.
 
청은 연합국과 굴욕적인 신축조약을 맺고 자주성을 상실했다. 의화단 사건은 서태후의 그릇된 권력욕과 의화단의 극단적인 배외의식이 빚어낸 비극이다.
 
자유한국당이 5·18 발언 파문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 논란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민심과 동떨어진 경제 정책으로 경제가 악화된 상황의 반사이익을 얻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무관한 지지율 상승에 고무됐고, 일부 정치인들의 불필요한 발언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민감한 과거사에 대한 극단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보수 재건의 자해행위다. 의화단은 조국을 침략한 제국주의를 응징하려는 측면도 있지만 극단적인 테러로 오히려 조국을 위기로 이끌었다.
 
밉던 곱던 자유한국당은 보수권의 최대 정당이다. 한국당이 극단적인 과거사 발언으로 보수 재건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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