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신 칼럼] 국민연금, ‘모르면 손 빼라’는 격언을 다시 곱씹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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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신 칼럼] 국민연금, ‘모르면 손 빼라’는 격언을 다시 곱씹어봐야
  • 김문신
  • 승인 2019.03.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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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문신 기자]

지난해 검찰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지난해 검찰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바둑 시합에서 프로기사는 어려운 국면에 처하면 다음 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장고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격언이 바로 ‘모르면 손 빼라’는 말이 있다. 묘책이 없다면 차라리 손 빼고 다른 곳에 두라는 의미다. 

바둑 뿐 아니라 주식시장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쓰이는 격언이기도 하다. 일부 주식 투자자는 관심있는 기업에 대한 분석이 어려워 지금 해당 주식을 사야 할지, 팔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설 경우 그 주식을 쳐다보지도 않고 당분간 내버려둔다. 모르면 손 빼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격언이 적용되어야 할 대표적인 기관으로 국민연금을 꼽을 수 있다. 3월 주총 시즌을 맞아 국민연금의 우왕좌왕하는 의결권 행사를 보면 정말 ‘모르면 손빼라’고 권유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국민연금은 10% 이상 지분을 보유중인 현대건설, 신세계 등 11개 상장사의 주총 안건(사외이사 선임 등)에 반대 의결권을 던졌으나, 해당기업들이 연금의 반대의견을 일축하고 주총에서 안건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스타일을 구겼다.

거꾸로 현대차 주총에서는 회사 손을 들어주었으나 이번에는 해외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의 집중 비난에 시달리는가 하면, 해외 의결권 자문기관조차 국민연금이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여 곤혹스럽다. 

연금에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이런 비난이 제기되는 까닭은 전문성 결여에 있다. 연금내 기금운용본부는 말할 것도 없고, 수탁자위원회라는 전문가로 구성된 분과위원회 조차 설익은 스튜어드 코드십 적용을 들고 나왔다가 망신만 당했다. 한진칼의 경우, 연금이 직접 투자한 주식은 전혀 없고 위탁한 자산운용사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인데도 갑자기 경영참여 하겠다며 주주 제안을 들고 나오자, 일부 언론은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해외 5대 연기금 중에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이사회나 위원회에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곳은 없다고 비판한다. 유독 한국만 정부 인사들이 연금을 좌지우지하다보니 정권 트렌드와 맞지 않거나 정부에 밉게 보인 기업들에는 혹독한 영향력(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연금의 독립성 시비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연금은 약 130조원 어치 주식을 보유중이며 전체 주식물량의 7%에 해당되는 큰손이다. 이런 큰손 투자자가 주총 때마다 원칙과 기준없이 그때그때 국민 여론이나 상황적 논리에 따라 우왕좌왕 의결권을 휘두른다면 모든 상장사는 연금이라는 지주회사 밑에 있는 계열사 신세나 다름없다.

진보 경제학자인 모 교수는 국민연금과 복지부의 기금운용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왜 남(국민)의 돈을 맡아서 잘 관리도 못하면서 폼을 잡느냐”고 대놓고 질책한다. 상장사들마다 다들 저마다의 고민이 있다. 그런데도 외형적, 표피적 판단으로 이사선임을 비롯한 각 상장사의 주요 안건에 대해 즉흥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고 있다면, 정말 국민연금이야 말로 “모르면 손을 빼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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