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조양호 반대에 '끄덕'…최태원 반대에는 '갸우뚱'
[시사텔링] 조양호 반대에 '끄덕'…최태원 반대에는 '갸우뚱'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3.27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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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최태원, SK㈜ 사내이사 재선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정당한 주주권 행사라면 박수 칠 땐 박수 쳐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27일 대한항공과 SK㈜ 정기 주주총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양사의 이번 주총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문제가 엮여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앞서 국민연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과는 극과 극이었습니다. 이날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 회장에 대한 연임 안건은 찬성 64.1%, 반대 35.9% 부결됐습니다. 이로써 조 회장은 20년만에 대한항공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습니다. 반면, 최 회장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SK㈜ 사내이사로 재선임됐고, 국민연금이 반대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함께 통과됐습니다.

왜 두 사람의 처지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걸까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도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연임 안건과 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했습니다.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으며, 최 회장도 과거 비슷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바 있습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 최태원 SK그룹 회장 ⓒ 뉴시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 최태원 SK그룹 회장 ⓒ 뉴시스

그럼에도 양사의 주주들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까닭은(지분 문제는 차치하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당했는지, 아니면 부당했는지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조 회장에 대한 국민연금의 반대는 분명 부당한 주주권 행사였습니다. 횡령·배임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사법부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최 회장에 대한 반대는 정당한 주주권 행사였습니다. 후에 사면·복권 처리됐으나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는 정당성 여부가 뒤바뀝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갑질 논란과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기업이 성장해야 이득을 보는 주주 입장에서 오너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요.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실제로 이날 주총 이후 대한항공, 한진 등 한진그룹 계열 회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알고 시장이 반응한 것입니다. 국민연금이 왜 이 같은 결정을 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반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최 회장에 대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의문이 남습니다. 최 회장이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난 이후, SK그룹은 그의 지휘 아래 매년 좋은 실적을 거뒀습니다.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최 회장은 책임경영 강화 방침을 천명하며 스톡옵션 부여를 통해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진하고, 배당성향을 확대하는 등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적극 펼쳤습니다. 수익률을 최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할 국민연금 입장에서 최 회장은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더욱이 최 회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호응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SK그룹의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내세우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선도 중이며, 최근에는 포브스 아시아판과의 인터뷰에서 "재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SK㈜ 주총에서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분리를 결정, 이사회 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최 회장과 SK그룹이 정권 눈치 보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구심, 새로운 이사회 의장으로 예정된 염재호 전 총장이 SK장학재단 출신에 최 회장과 고등학교·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만큼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가 퇴색된 게 아니냐는 의문, 그리고 SK케미칼의 가습기살균제 논란과 SK건설의 라오스댐 붕괴 등 계열사들이 연이어 일으킨 사회적 물의 등 지적할 점이 산더미입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반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정경유착과 전관예우라는 관행적 악행, 비상식적인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등 재계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이번 3월 정기주총 시즌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 것처럼 SK그룹은 비록 흉내 내기일지언정 현재 국내 재계에서 그나마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대기업이고, 최 회장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현재 우리나라 재벌 2·3·4세대 중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경영인입니다. 정당한 주주권 행사라면 박수를 쳐야 할 일은 확실하게 박수를 쳤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말도 들립니다. 자신들의 반대표로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확실한 상황에서, 연금사회주의를 비롯한 각종 비판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고자 대한항공과 같은 날 주총을 개최한 SK㈜와 최 회장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날 대한항공 주총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국민연금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SK㈜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에 똑같은 근거를 들먹인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입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서 목도했듯, 우리 재계의,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청산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너무 인색한 결정은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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