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거법 개정과 신속처리 안건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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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거법 개정과 신속처리 안건의 거래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9.03.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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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 정치권, 선거법 개정되면 개헌 논의 시작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놓고 극한투쟁을 해오던 정치권이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여야 4당 잠정 합의안을 발표했다. 의석수는 현행 300석으로 하고, 지역대표 의원수를 225명, 비례대표 의원수를 75명으로 하되, 비례대표 선정 방식을 50% 연동율을 적용해 연동 비례대표의원을 먼저 산출하고 그 합을 전체 비례대표 75명에서 뺀 숫자만큼 병립 비례대표의원을 산출해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한다는 것이다. 조정의석제를 적용하여 초과의석을 인정하지 않고 석패율제는 도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잠정 합의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병립형 비례대표제, 연동율, 권역별 비례순번, 조정의석, 초과의석 그리고 석폐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의석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잠정 합의안이 발표된 후 필자는 필자의 정치학 강의를 수강하는 대학생들에게 잠정 합의안을 이해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더니 손을 든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됐을까? 선거법 협의 과정에서 각 당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다보니 비빔밥 선거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유권자들이 기존의 방식대로 2표 중 1표는 지역 후보에게 1표는 정당에 투표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어떤 국민인가? 자기 표가 사표 되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투표하는 국민이다. 산출 방식이 간결하고 쉬워야 전략투표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잠정 합의안의 한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도 의원정수를 현재 300명에서 늘릴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1:1에 근접시켜야 하는데 의원총수를 늘릴 수 없고 현역 의원들의 반발로 지역구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지역대표와 비례대표 비율을 3:1로 한 것인데, 일부 학자들은 이번 잠정합의안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말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국회 개헌특위와 정개특위 논의과정에서 권역별 비례대표 명부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 수가 최소 100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75명의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로 나눌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첫째, 직능대표와 전문가 등을 배려한다는 비례대표의 도입 의도를 반영하기 어렵다. 둘째, 현행 공직선거법 제47조 제3항에 따르면 ‘후보자 명부 순위에서 매 홀수는 여성’으로 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6개 권역의 모든 권역 비례대표명단 순서 1번을 여성으로 할 경우, 전국단위 명부에서 1번에서 6번까지 여성으로 배정하는 효과를 가져와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함께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신속처리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위해서는 최장 330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21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선거법 개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자유한국당을 압박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3건의 법안을 묶어서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한 것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선거법에 끼워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선거법 개정과 관련하여 2018년 12월 15일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 합의문이 있었다. 그 합의문 6항에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 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논의를 시작한다’로 되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시 정당체제가 다당제로 고착되고 이는 현행 대통령제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권력구조를 합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해야한다는 의도를 실은 것이다.

이 정신을 살린다면, 신속처리 안건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개정 선거법이 아니라 헌법 개정을 위한 ‘개헌 절차법’이 되는 것이 옳다. ‘개헌 절차법’에 개헌 일정을 담음으로써 그 동안 말만 풍성하고 공전해 온 개헌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최종 합의되면, 정치권은 개헌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바로 시작하기 바란다.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현)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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