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시원찮은 뒤처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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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窓] 시원찮은 뒤처리 유감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4.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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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복합건물.  ⓒ인터넷커뮤니티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복합건물. ⓒ인터넷커뮤니티

똥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예전 시골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게 똥이었다. 아버지는 그 옛날 남의 집에 가서 대소변을 못 보게 했다. 귀한 거름을 왜 남의 집에 가서 버리느냐고 역정을 내셨다. 약이 부족했던 시절엔 뼈가 부러지면 푹 삭은 똥물을 먹여 치료하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을 찾았다가 난감할 때가 있다. 변기에 똥이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구린 냄새가 진동한다. 조금 전 변기 사용자가 물을 안 내리고 가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뒤처리도 제대로 안 하고 간 걸까. 건망증 환자였을까?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똥은 구린내 나는 오물이 된다.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 탓을 하는 ‘내로남불’ 이중인격자는 추한 뒷모습을 남긴다. 

지난달 29일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두고 세간에는 이런 저런 비난의 말을 많이 한다. 발 빠른 사퇴로 물러나는 타이밍은 좋았지만 끝마무리가 시원찮아 논란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본인으로선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 사과 한마디 안 했지만, 어쨌든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으니 일을 더 키운 느낌이 든다.  

김 대변인은 사의표명과 함께 “너무 구차한 변명이어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떠나는 마당이니 다 털어놓겠다”면서, 논란이 된 고가건물 매입에 대해서 “아내가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고, 알았을 때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라고 해명했다. 마지막까지 남 탓을 하는 모습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위선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시세차익을 보면 크게 쏘겠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면서 언론과 갈등을 겪은 데 대한 미안함은 표명했지만, 투기 의혹에 실망했을 국민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세상은 참 좁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살이다. 세상은 돌고 돌며,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렇게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원망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을 수 있다. 하지만 떠나는 마당에 아무리 마음이 상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어릴 시절, 산에서 나무를 하다 똥을 눈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맡았던 오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똥 혼자서만 풍기는 냄새가 아니었다. 흙과 똥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절묘한 하모니였다. 화장실은 똥을 감추고 그 냄새를 지워버리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숨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구린내는 싫고 향내는 좋다. 부디 향내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만 붙여 놓을 문구는 아닌 듯하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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