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재벌家 마약 파문…'슬픈 캥거루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대변인] 재벌家 마약 파문…'슬픈 캥거루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4.05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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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적폐청산의 시대를 맞아 적폐가 정말 청산될 줄 알고 잠시 쉬었지만, 변이 풍기는 냄새가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기에 대변인은 다시 돌아왔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마약 파문에 연루된 재벌 3세들을 위한 최종변론

최근 마약 관련 사건에 연루된 재벌 3세들을 향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논란의 주인공은 故 최종건 SK그룹 회장의 손자이자 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아들인 최모 씨,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일 현대미래로 회장의 아들인 정모 씨, 故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황모 씨 등 세 사람입니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15차례 이상 고농축 액상 대마를 구입해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고, 정씨도 지난해 3~5월 고농축 액상 대마와 쿠키 형태 대마를 수차례 구입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황씨는 지난해 항정신성 의약품을 투약한 혐의로 체포됐는데요. 특히 황씨의 경우 2015년 마약 흡연·유통 혐의로 수사를 받을 당시 무혐의로 풀려난 전력이 있어 경찰과 남양유업 간 유착 의혹이 불거지며 더욱 국민적 공분이 거센 실정입니다.

SK, 현대, 남양유업 등 재벌 대기업 오너가 3세들의 마약 스캔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 pixabay
SK, 현대, 남양유업 등 재벌 대기업 오너가 3세들의 마약 스캔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 pixabay

본격적인 변론에 앞서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아무리 마약 범죄를 저지른 자라고 해도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수사단계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닙니까? 단지 재벌 3세라는 이유로 마약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대기업과 고인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여론몰이를 하는 건 이들을 마녀사냥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클럽 버닝썬, 장자연 사건, 김학의 성접대 의혹, 경찰의 유착 등 더 큰 이슈를 가리기 위한 윗선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려스럽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셨는지요. 해당 드라마는 부와 명예, 그리고 신분을 대물림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자녀들을 끊임없이 압박하는 상류층 부모들의 모습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저는 그 드라마를 좀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대물림이라는 부모의 욕망 아래 감춰진 '슬픈 캥거루의 눈물'을 말이지요.

극중 정형외과 교수로 나온 '강준상', 그는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과 기대를 이루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하늘의 명을 알 때인 지천명(50)이 다 되도록 오직 부모의 명만을 받들며, 부모의 입김과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평생을 갇혀 살았고,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앞에서 오열을 하고 맙니다.

그는 캥거루족이었습니다. 캥거루족이란 자립할 나이가 됐음에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사는 2030세대를 일컫는데요. 강준상의 경우 보통의 캥거루족과는 좀 다른 케이스입니다. 오로지 사회적 성공만을 위한 세뇌 교육을 받았고, 성공 후에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춘 부모의 위세에 눌려 정신적 자립심을 잃은, 어느 순간부터 주머니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자신의 손에 있음을 자의반타의반으로 망각해 버린 슬픈 캥거루, 독립성이 결여된 삶을 산 비사회적 존재였습니다.

갑자기 왜 드라마 얘기냐고요? 마약 파문에 연루된 재벌3세들 역시 강준상처럼 슬픈 캥거루의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 논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최씨는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패션 브랜드 베라왕에서 인턴십을 거쳤음에도, 종착지는 화학업체인 SK케미칼, 부동산·신재생에너지개발업체인 SK디앤디로 귀결됐습니다. 황씨는 '우리 삼촌과 아빠는 경찰청장 베프(베스트 프렌드)'라는 말을 했다고 하지요. 독립된 사회적 존재라고 보기에 어려운 정황들입니다.

슬픈 캥거루는 탈출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보는 눈들이 많아 보통 사람들처럼 스트레스를 풀기 어렵고, 이미 부모로부터 모든 게 갖춰진 상황이기에 상식선상에서의 일탈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결국 마약과 같은 음지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이 같은 범죄 행위는 부모에 대한 간접적인 복수로, 반항의 희열을 느낄 수도 있지요. 

이런 측면에서 이번 파문은 재벌 3세들의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슬픈 캥거루가 비단 상류층만의 문제일까요? 〈스카이캐슬>이 종영된 후 우리 사회에서는 입시 코디네이터 붐이 일었다고 하지요. 왜곡된 교육열을 비판하는 드라마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긴 겁니다. 슬픈 캥거루를 강요하는 부모의 욕망, 우리 시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들에게 무차별하게 돌을 던지는 건 삼가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재벌 3세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기조절능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했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1966년 월터 미셸 박사는 스탠포드대학 부설 유치원에 다니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4살 아이들 653명을 대상으로, 마시멜로를 15분 간 참고 먹지 않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마시멜로 1개를 더 주겠다는 내용의 실험을 했는데요. 후에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이 청소년이 될 무렵, 추적조사를 했더니 마시멜로 먹기를 더 오래 참은 아이들이 위기 상황에서 더 많은 자제력을 발휘하고, 높은 집중도를 보였으며, 사회 적응력도 좋았다고 합니다.

재벌 3세들의 주변에는 유아기부터 성인이 되도록 마시멜로가 사방에 깔려있었을 겁니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굳이 인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부모의 눈치만 잘 보면 평생토록 맛있고 달콤한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 순간의 욕망과 갈증을 참아내는 노력을 일생 동안 학습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상당할 겁니다. 재벌 오너가에서 유독 폭력적인 갑질사건이 터지는 게 이 같은 추측에 신빙성을 더합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것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조선일보 사장 손녀의 폭언, 대한항공 오너가의 갑질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슬픈 캥거루로부터 훈육을 받은 슬픈 캥거루, 그 슬픈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서 자라는 슬픈 캥거루, 다음 세대로 갈수록 자기조절능력의 감소폭은 축적되고, 이와 함께 대를 이어 축적된 부와 명예는 본능을 위한 무기가 됩니다. 모든 인륜과 도덕 위에 경제력이 군림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들에게 법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는 슬픈 캥거루는 속으로, 또 밖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분풀이를 하며 정서의 불안정을 느끼고, 결국에는 지속적인 자기혐오에 빠져 일종의 병을 앓게 됩니다. 이들에게 마약은 그 병을 이기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아니었을까요? 너무나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누가 감히 슬픈 캥거루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이들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게 아니라 철저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과거 현대그룹, 범현대그룹, 한화그룹 등 재벌 2~3세들이 마약 혐의가 확정되고도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것처럼 다뤄선 안 됩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서 '격리'시켜 독립성과 자기조절능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들이 주머니 속 슬픔에서,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치유해 주길 간절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모쪼록 이 같은 부분을 잘 헤아려서 마약 파문에 연루된 재벌 3세들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이들에게 '교화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재판장님께서 현명하게 판단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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