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덕배의 공연장에서 첫사랑을 추억하다
[칼럼] 조덕배의 공연장에서 첫사랑을 추억하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4.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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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혜화동 짬뽕 맛집 중식당에서 듣는 '꿈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그녀 앞에 서면 나는 뜨거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불태우며 녹여버리는 그 불이 도대체 어떤 불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나로서는 불타며 녹아버리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 中

작은 긴장감이 흐른 후 조덕배의 공연이 시작됐다. 나는 추억처럼 그의 공연장면을 흑백필름사진으로 담았다. ⓒ 최기영
작은 긴장감이 흐른 후 조덕배의 공연이 시작됐다. 나는 추억처럼 그의 공연장면을 흑백필름사진으로 담았다. ⓒ 최기영

첫사랑의 열병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고교 시절, 고향 동네에서 좋아했던 또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 때문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괜한 슬픔에 젖기도 했었다.

조덕배의 노래를 좋아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꿈에'라는 노래를 듣는데 어쩜 그리 처지가 나와 비슷하던지…. 그저 상상 속에서, 꿈 속에서만 봐야 했던 내 짝사랑의 사연을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 노래는 너무 애절했고, 내 마음은 요동쳤다. 어떻게든 내 마음을 전해야 겠다는 생각에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조덕배의 노래로 채운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답장을 기다리겠다'는 손편지와 함께 그 아이 집 우편함에 몰래 넣었다. 

그 뒤 쓸데없는 나의 용기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몇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편지는 잘 받았는지, 그 아이가 과연 답장을 줄 것인지 하는 초조함으로 학교가 파하면 가장 먼저 우편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아이의 답장과 선물까지 받았을 때의 그 환희란…. '뛰어갈 텐데, 훨훨 날아 갈 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이라는 노래 구절을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그리고 대학에 다닐 적, 기타를 배우면서 조덕배의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 됐고 그렇게 나는 그의 팬이 됐다.

조덕배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지만 그의 애절하고 감미로운 감성은 여전했다. ⓒ 최기영
조덕배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지만 그의 애절하고 감미로운 감성은 여전했다. ⓒ 최기영

얼마 전 혜화동에서는 조덕배 팬클럽이 주최한 작은 콘서트가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래 전 조덕배의 공연을 본 이후, 너무도 오랜만에 그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후배 가수의 사전 공연 후, 작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조덕배가 무대에 올랐다. 그가 노래를 준비하는 시간, 그 작은 공연장에는 긴장감이 흘렀고 드디어 '꿈에~'하며 노래가 시작되자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콘서트에 모인 사람들의 연령층은 40대 중후반부터 50대가 대부분이었다. 팬클럽 회장도 중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인이다. 이날 자리는 그 여인이 그 식당에 임시 공연장을 만든 것이었다. 조덕배는 "공연을 많이 다녀봤지만 중국집에서 노래를 부르기는 처음"이라며 웃었다. 그리고는 "이 집 짬뽕 맛이 끝내주니 자주 와서 많이 드세요"라며 팬클럽 회장을 살뜰하게 챙겼다. 

1959년생인 조덕배는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가늘어진 다리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겠고, 누군가에 대한 불같은 사랑의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가수로서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탈과 좌절도 있었다. 히트작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그가 중학교에 다닐 때(15세) 만든 노래라고 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애절하고 담백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의 아픈 사연이 그렇게 절절한 노래가 된 것이다.  

처음 TV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감미로운 미성의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외모는 투박했고, 왜소한 체격에 기타를 메고 의자에 앉아서 어두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의 사랑은 아픔이 참 많았으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사랑에 대한 그리움, 미련, 쓸쓸함, 이별과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조덕배의 노래는 처음 경험했던 첫사랑에 대한 생소했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시절, 우리의 이야기와 추억과도 같다. 

팬클럽과 만남이 있던 이 날도 조덕배는 목발을 짚고 무대에 올랐다. 찐빵 모자를 쓴 채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기타는 없었다. 넘치는 사랑에 대한 열정과 감정을 절제하며 감미롭게 나오던 그의 목소리에서 어느덧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애절한 그의 독특한 감성은 여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손뼉을 쳤고 환호했다. 

"나이 먹어 보니 별것 없잖아요? 인생이 다 그런거죠 뭐."

공연 중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누구보다도 불같은 인생을 살았을 조덕배는 그렇게 넋두리처럼 말했다. 

줄을 지어 기다린 뒤, 나도 조덕배와 기념촬영을 했다. ⓒ 최기영
줄을 지어 기다린 뒤, 나도 조덕배와 기념촬영을 했다. ⓒ 최기영

마지막 곡이 끝나자 우리는 '앵콜'을 연호했다. 조덕배는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라며 한번만 더 불러보겠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잊어'가 다시 흘러나왔고 공연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우리는 그와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나 역시 조덕배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서 중식당을 나왔다. 그날 혜화 거리에는 촐촐한 봄비가 운치 있게 내리고 있었다. 이래저래 분위기에 취해버린 탓에 나는 계속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조덕배는 역시 우리의 여전한 아이돌이고, 순수했던 내 첫사랑의 변함없는 추억이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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