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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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의 ‘역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4.07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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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룰'도 정쟁의 도구로 만드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지난 달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앞두고 "농촌 지역구 줄이는 패스트트랙 반대"를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지난 달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앞두고 "농촌 지역구 줄이는 패스트트랙 반대"를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좌초 위기에 처했지만, 얼마 전까지 정가에선 일명 '패스트트랙'이라 불리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이 화두였다.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이 패스트트랙 대상이었다.

패스트트랙은 애초에 국회에서 정쟁으로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반드시 필요한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지난 2012년 도입됐다.

그러나 7년여가 지나 지금 패스트트랙은 역설적이게도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다.

선거법 개편과 공수처 설치 등이 걸려있는 패스트트랙은,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중간에 이견을 보이면서 사실상 타이밍을 놓쳤다. 내년 4월15일 총선에 개편된 선거제를 적용하려면 선거구 획정안은 선거일 13개월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장 330일의 기간이 필요한 패스트트랙은 이미 시기적으론 완전히 늦은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패스트트랙 처리기한을 줄이자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2월20일 국회선진화법 관련 토론회에서 330일에서 180일로 단축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12년 패스트 트랙 기한이 정해질 당시,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의 안이었던 '180일'을 360일로 늘리자고 주장했던 것과 대치된다. 약 7년의 시간이 지나, 여당이 된 민주당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아예 '패스트 트랙은 날치기'라며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애초에 패스트트랙은 지난 2012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황우여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선진화법에 근간을 둔다. 과거엔 한국당이 추진했던 것이 패스트트랙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규칙도, 정치인들의 입맛과 상황에 따라 도구화 되고 있는 것이 현 정치의 현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또 한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지난 2016년 있었던 필리버스터(의사방해연설)다. 필리버스터는 패스트트랙의 정 반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거나 표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장시간 발언으로 시간을 끄는 행위다. 지난 2016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저지하기 위한 세계 최장기록(109시간27분)의 의사방해연설을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 테러방지법이 '안보를 위해 인권을 희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이지만, 정권을 잡은 뒤엔 입장이 바뀌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일부터 담당 경찰서 등과 함께 '개방형 단체채팅방' 이른바 오픈채팅방 집중 단속을 시작했는데, 사생활 침해·과잉규제 논란을 부르는 중이다. '테러범'을 잡기 위해 인권을 침해한다며 필리버스터까지 벌였지만, 정작 '몰카범'을 잡기 위해 이번엔 사찰에 가까운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난 필리버스터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는 모두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법적 절차를 핵심으로 한, 한국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도 있는 '룰' 들이다. 현 정치권은 이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아전인수식 규칙 해석의 끝이 도달하는 곳은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의 붕괴다.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정쟁의 공방전이 아닌, 민의를 대변하고 합의를 추구하는 의회민주주의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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