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人] 부침의 손학규, 정계개편으로 ‘승부’
[정치人] 부침의 손학규, 정계개편으로 ‘승부’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4.09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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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이었을까…정치 실험 계속돼
제3의 세력으로 총선서 승리할지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정계 개편을 위해 그동안 여러 행보를 해왔다. 제3 세력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의 앞날이 주목되고 있다.ⓒ뉴시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정계개편을 위해 그동안 여러 행보를 해왔다. 제3 세력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의 앞날이 주목되고 있다.ⓒ뉴시스

박정희 유신정권에 저항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면서 어머니 장례식마저 지키지 못했다. 젊은 시절 빈민과 노동, 민주화를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한 이야기다. 

손 대표는 1993년 정계에 입문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문민정부 때였다. 당시는 개혁 성향의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정계에 들어왔다. 손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독일 유학 후 시민사회운동,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YS 제안을 받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그해(1993년) 재보궐 광명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좋은 출발이었다. 4선의 국회의원부터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탄탄대로였다.

손 대표는 당을 막론하고 대선 시기마다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단골 인사였다. 과거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시절에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력 높은 대권주자였다. 영남 출신도 아니고, 조직적 세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스펙트럼이 넓은 합리적 중도 개혁 이미지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때문에 17대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그의 행보를 놓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았다. 계속 당에 남아 있었다면 18대 때는 박 전 대통령 대신 손 대표가 본선 후보로 나가지 않았겠느냐는 관측 때문이었다. 물론 손 대표 본인으로서는 그 시기 한나라당 안에서 고뇌를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YS 이후 형성돼온 민주계 쇄신파의 영향력은 수구화로 변해버린 당내 분위기 속에서 밀려나 있었다. 같은 진보 성향의 ‘김부겸 김영춘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등 독수리 5형제는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 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일찌감치 탈당했다. 이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며 손 대표의 갈등은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친이, 친박의 틈바구니에서 변화를 주도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DJ(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소신 발언을 폈던 부분에서도 정치적 부침을 겪었을 터다.

2007년 탈당 선언문을 통해 유추하면 당을 개혁할 수 없다면 차라리 시베리아의 추운 광야로 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였던 당시의 여권은 무능한 좌파 정부라는 비난에 직면해 여권 재편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무렵이었다.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치적 동지들과 제3지대 신당 건설, 그리고 여권을 포함해 새로운 정치 지형을 재편할 리더가 되는 길에 모험을 걸었던 듯하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 미래지향적인 전문가 집단,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세력, 그리고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 등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상당히 많다. 그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드는데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2007년 3월 19일 백범기념관, 탈당 기자회견 중)

그는 스스로를 먼 여정을 통해 새 나라를 건설한 고구려 주몽에 빗댔다. 손 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고, 범여권 후보들과 국민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 경선도 치렀다. 그러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아킬레스가 돼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동영 후보에 밀리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던 2008년 통합민주당을 거쳐 2010년 민주당 대표가 됐다. 이 시기 손 대표는 여타의 정치인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진취적인 목소리를 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진보적 자유주의 및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무상복지에 대한 공약을 통해 양극화 해법에 나서는데 선제적으로 앞장섰다는 평을 얻고 있다.  

18대 대선을 1년 앞둔 해는  ‘안철수 신드롬’을 비롯해 ‘서울시장 재보궐에서 범야권 후보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과 야권 통합의 요구가 높던 때였다. 손 대표도 그해 말 야권통합을 주도했다.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이해찬 시민주권 상임대표,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김두관 경남지사, 남윤인순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등 시민통합당과 함께 민주통합당으로 한데 뭉쳤다. 

손 대표는 18대 대선에도 유력 대권주자였다. 당내 경쟁을 뚫고 본선만 나가면 ‘박근혜 당시 후보’를 이길 적임자라는 예측도 상당했다. 당심은 손학규라는 말들도 많았고 그만한 조직력도 있었다. 만약 모바일 경선을 하지 않았다면  ‘문재인 당시 후보’를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됐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어쨌거나 당시 손 대표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인 ‘저녁이 있는 삶’은 시대를 꿰뚫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 경우였다. 요즘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하는 워라벨이 대세인데, 손 대표는 이를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어로 시대 흐름을 상징화했다. 세종대왕 리더십을 표방한 그는 민생과 통합을 화두로 제시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복지 사회, 민생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20세부터 70세까지 누구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는 완전고용사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이 균형을 이루는 진보적 성장을 통한 공동체 시장 경제. 한반도 평화공동체. 세종대왕 리더십의 민생과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 - 2012년 6월 14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대통령 출마 선언 중 -

그러다 전남 강진 만덕산 자락의 조그마한 토담집에서 2년간 칩거를 한 직접적 계기는 2014년 7·30 재보선에서의 패배 때문이었다. ‘안철수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체제 때였다. 경기도 수원병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정치 신인에 패해 충격을 안겼다. 새정련으로서는 참패로 기억되는 선거였다. 재보선 15곳 중 여당인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했다면 야당은 4곳 승리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 심판 등 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음에도 여당의 압승이었다. 손 대표는 다음날 정계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정치는 들고 날 때를 알아야 하고,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게 생활 철학이라고 한 그는 “지금으로서는 물러나는 게 순리라고 생각 한다”고 했다. 

손 대표가 택한 강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목민심서 등을 집필한 지역이다. 칩거 장소로 호남을 택했다는 점에서 언제고 때가 되면 다시 정계 복귀할 거라는 시사점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그에게 호남은 정치적 기반에 있어 상징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민주세력의 텃밭으로 호남이 상징하는 바는 컸고, 비호남 출신 중 호남에서 지지를 받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 손 대표였다. 또 한반도 통일과 평화, 남북교류에 큰 관심을 기울여온 그로서 DJ와 호남의 정신은 남다른 의미일 거라고 짐작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다시 정계 복귀를 선언한 지역도 호남에서였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뜻의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등을 언급한 그는 사실상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국론 분열의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한반도 통일을 이루도록 광주시민과 전남도민과 함께 나설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손 대표는 이후 국민주권개혁회의를 꾸렸고 다음해 2월 안철수의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밝혀지면서 촛불 정국은 거셌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며 정국이 요동치는 시기를 지나 생각보다 빨라진 5월 장미 대선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 시기 손 대표는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에 반대했다. 합리적인 개혁세력이 총결집해 개혁공동정부 수립을 건설하는 한국 정치의 새판이 짜여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국민의당 중심의 대선 실패 후 바른미래당으로 통합될 때도, 그리고 당 대표 체제의 현재까지도 한국 정치의 새판 짜기를 주창해오고 있다. 여기에 1987년 출범한 제6공화국을 종식하고 승자독식 양당제인 소선거구제에서 벗어나 7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 개혁도 물 건너갔고, 4·3 선거 패배로 책임론도 부각되고 있지만 손 대표는 여전히 제3지대 중심의 정계개편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정치인생의 주요 길목마다 제3의 길을 택했고, 정계개편의 촉매제를 자처하며 승부를 걸어왔다. 비록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앞으로의 정치 로드맵은 현재진행형이다. 내년 총선, 삼년 뒤 대선 가도에서 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더욱이 바람대로 제3의 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손 대표는 이에 대해 지난 8일 국회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에서 “제3세력으로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중간지대, 중도세력의 확대로 우리가 새로운 주력군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뒤이어 “단합하고, 양극단의 분열정치를 끝내고, 통합의 정치로 민생과 경제를 돌보는 정치세력의 위상을 확보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 대한민국의 정치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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