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둘러보기②>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둘러보기②>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 신원재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7.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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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신원재 자유기고가)

▲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위치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봉하마을'

한 참을 서 있었습니다.
팔짱을 끼기도 하고, 뒷짐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왠지, 부끄럽고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10분, 20분, 그러다가
흰 국화 한 송이를 들었습니다.
꽃을 드렸습니다.
"당신은 늘 대통령이었습니다."
과거의 힘과 어두운 권력, 반칙에 소신으로 대항하고
현실의 벽을 넘는 데는 남다른 열정으로…
부드럽지만 강렬한 어조는 이미 또 다른 이의 부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칼집에 넣은 칼로
他人을 감싸 안은 바보 노무현을 기억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흰 국화는 제단에 놓이고…
오후 뜨거운 점심시간을 송내역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서성거리고 있는지…
어디로 머리를 두고
어떻게 가슴을 풀어내야 하는지…
오늘은 또 다른 日常短篇을 생각합니다.             - 09.05.25 신원재 씀 -


▲ 지난 2009년 5월23일 서거한 '바보 노무현'의 모습.

방문자를 반기는 노란 바람개비

'분향소'라는 제목의 글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2009년 5월은 가슴속이 멍한 하루였다. 25일은 정말이지 점심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표현하지 않던 일반 대중들조차 모두가 표현할 때, 그렇지 못했던 여린 가슴의 내 자신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대통령 선거조차 거부했던 내가 작은 행동으로 나 자신의 의견을 밝힌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늘 마음 한켠에서 자리하고 있었고 꼭 한번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던 것이 봉하마을 방문이었다.

누군가 '세상에서 좋은 사람 세 명'을 이야기 한적 있다. 첫째, 좋은 얘기 해주는 사람. 둘째,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셋째,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다. 그 중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을 찾아서 방문한 곳이 봉하마을이다. 과연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좋은 이유와 나도 그러한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길가에는 '노란 바람개비'들이 지천으로 나부끼며 방문자를 반기고 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 주차장 건너편의 추모관인 듯한 건물이 있어 먼저 들러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가족들이 만든 공간으로 대통령에게 드리는 노란 편지를 쓰거나 웃고 있는 대통령의 브로마이드와 사진을 찍고,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쉼터를 나와 사저 뒤로 보이는 낯선 바위 봉우리, 봉화산 사자바위가 보였다.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이미지는 대통령의 옆모습 같아 우선 셔터를 눌렀다. 예전에 보았던 대통령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느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는 아담한 초가집이다. 입구에서부터 봐왔던 노란 바람개비처럼 그냥 우리가 늘 시골집에서 보는 듯한 초가집. 대통령 퇴임 후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고교 친구가 매입해 김해시에 기증했고, 복원하게 되었다.

생가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누님, 형님과 같이 기억을 되살려 그림까지 그려 자문해주었다고 하는 그림 안내, 그러면서 '최대한 원형으로 복원하되 방문객의 쉼터로서, 사람향기가 나는 집으로 복원되기'를 원했단다. 살아있었더라면 같이 차 한 잔 하고, 밤에는 실제 자고 갈 수 있도록 운영되었을 것이라고 입구의 안내표지판은 말해 주고 있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플랜카드가 봉하마을 입구에 나열돼 있다.

부엉이 바위가 내려다보는 묘역, ‘인상적’

생가 옆에 따로 쉼터를 만들고자 했으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대통령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매장으로 용도를 변경해 운영되고 있었다. 6월의 무성한 나무 색으로 인해 고요해 보이는 사저를 지나 '부엉이 바위'가 내려다보는 묘역에 다가갔다.

퇴임 후 최초로 고향으로 돌아온 대통령이었고, 방송 화면에서 전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는 모습을 많은 국민들이 잊지 못하고 있는 장소는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낮은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대통령의 유지와 "화장한 유골을 안장하되 봉분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태어난 곳(생가), 돌아와서 생활한 곳(사저), 생을 마감한 곳(부엉이 바위), 즐겨 다닌 등산로(봉화산), 친환경 생태농업 현장(봉하농장), 퇴임 후 생태계 복원을 위해 노력한 습지(화포천) 등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정했다고 한다.

▲ 지관스님이 쓴 '대통령 노무현'(사진왼쪽), 송기인 신부가 쓴 '대통령님 평화가 이슬처럼'

비석을 세우지 않고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한 너럭바위(충남 부여 석산의 자연석)로 대신하고 거기에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지관스님의 글씨로 '대통령 노무현' 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겨있었다. 비석 받침은 대통령 어록 중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긴 붉은 철강 판이 묘역 너럭바위의 색을 더하여 절로 숙연해지게 된다. 여기에 사용된 철판은 내후성 강판으로 오래될수록 두꺼운 산화층을 형성하여 붉은 색과 흘러내리는 녹물의 흔적을 간직할 수 있는 소재라 한다.

마치 용광로의 고매한 불씨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붉은색. 오늘 내리는 비가 그치면 더욱 붉어져 필자가 보기에도 붉은 녹 자체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 어렵게 살다 간 강한 흔적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산화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문을 대신한 것은 대통령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의 진심 어린 글을 새긴 1만 5천여 개의 박석으로 바닥에 설치했다. 묘역 전체의 배치와 설계를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빌면, 박석(薄石, 博石)이란 얇은 돌 또는 넓적한 돌이라는 뜻으로, 전통 건축물에 사용한 바닥 포장돌이다.

두께 10cm, 가로세로 약 20cm의 이 박석은 경복궁 근정전과 종묘 앞뜰에서 볼 수 있듯 대단히 품위 있고 기능적인 요소로서, 작은 박석을 자연스럽게 마치 조각보처럼 이어 붙인 아름다운 무늬로 마을을 향한 삼각형 묘역 뜰을 채우고 있다. 박석들이 어우러진 무늬는 '사람 사는 세상' 을 보여주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유홍준 전 청장은 설명한다.

박석은 63세를 일기로 서거한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에서 63개 구역으로 나누어 설치되었다. 박석은 전북 익산 황등석, 충남 보령 애석, 경기도 운천석, 황해도 해주 애석, 충남 부여석 등의 재료로 선착순 신청자의 기부를 통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1차 10,000개(2009.12.15~29) / 추가 5,000개(2009.12.29~2010.1.16))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는 대통령 묘역 전체에 작은 박석들을 바닥 돌로 설치하면서 그 박석에 추모기간에 온 국민이 보여주었던 존경과 애도와 사모와 사랑의 글을 새겨 넣기로 했다. 국민 참여 박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국민들의 메시지가 바로 비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필자.

이유 없이 좋은 사람…노무현, 그리고 대통령길 걷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닐었던 길을 따라 생태산책길 '대통령의 길'이 만들어졌다. 대통령은 생전에 봉하마을을 찾아온 많은 방문객들에게 보여드릴 게 없어 늘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 미안함으로 몸소 산책로를 가꾸어 어린 시절, 퇴임 후 즐겨 거닐던 봉하마을 주변 산과 숲길, 논길, 화포천길 등을 만들게 되었고 그 길을 함께 걷던 권양숙 여사가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어 아름다운 생태산책길로 직접 가꾸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길'로 이름을 짓고, 1주기를 맞아 2010년 5월 16일 '봉화산 숲길' 코스를 먼저 개장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길'을 주관하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이사장 권양숙)에서는 앞으로 준비가 되는대로, 국내 최대의 하천형 습지인 화포천 습지길, 대통령과 권여사의 데이트 코스였던 마을 논둑길과 철둑길, 고시공부를 하였던 토담집 마옥당(磨玉堂)이 있는 뱀산길 등을 차례로 열 계획이다.

필자가 직접 탐방하지는 못했지만 두 분의 애뜻함이 절로 느껴지는 길이라 생각된다. 지금은 말없이 이어진 길로 탐방객들이 다니고 있다. 아니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탐방 길은 대통령의 길로서 그 분의 이유 없는 동반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친구가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살면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하지만 적을 만들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모든 걸 다 포용하고 가신 분의 느낌을 돌아보면서 이 세상 어디서 무얼 하든지 적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내가 먼저 상대방의 적의(敵意)를 이해하면 얼마나 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러기는 분명 쉽지 않다.

단순하게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 미리 조심하자. 서로 불편함을 만들지 말자는 게 아니라 감싸 안을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갖추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떠난다. 바보 노무현을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정말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의 '좋은 이유'와 나도 그러한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로 한 답을 박석 중에서 하나를 골라 답으로 정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것을 누군가 옮겨 놓았다. 

 여기에 문장 하나를 더해서 설명해본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서산대사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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