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에 묻힐 위기 공룡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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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 묻힐 위기 공룡발자국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4.11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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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주뿌리산단 조성공사중 발견... 문화재청·市·시공사 묘책 찾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진주뿌리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경남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일대)에서 세계 최대규모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과 관련, 학계와 지역시민단체들이 뿌리산단 조성지를 문화재로 지정해 현장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해당 부지에서는 지금까지 약 7700여 개에 이르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세계 최대 공룡발자국 밀집지는 볼리비아 오르꼬 공원으로, 약 5000개다. 뿌리산단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세계적인 가치가 있는 이유다.

하지만 뿌리산단 시공을 맡은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현대엔지니어링·한반도건설 등, 이하 현대엔지니어링)과 진주시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세계적 공룡유산을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지난 2월에 취재진의 뿌리산단 조성지 출입을 불허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도 문화재청 관계자와 언론사의 공사현장 출입을 강력히 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진주시의원 역시 출입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진주시는 아직도 이번 사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일반산업단지 조성 공사 구역에서 발견된 초소형 육식 공룡의 발바닥 피부 흔적 화석. 학계에서는 세계적으로 드문 공룡 화석지를 확인한 만큼, 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 진주교육대학교 제공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구역에서 발견된 초소형 육식 공룡의 발바닥 피부 흔적 화석. 학계에서는 세계적으로 드문 공룡 화석지를 확인한 만큼, 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 진주교육대학교 제공

공사현장에서 화석, 유적 등이 발굴될 경우 시공을 맡은 업체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작업 도중 도자기가 나오면 이를 깨부순 다음 더 깊은 곳에 파묻은 뒤 건물을 올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뿌리산단의 경우는 참 아쉽다. 시공사가 현대엔지니어링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08년 청년인재 양성 프로그램 '해피무브'를 창단한 이후 글로벌 청년봉사단을 구성해 주기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보전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기아자동차 중국합작법인과 함께 중국 중경지역 등에서 환경미화 작업, 한국어 표지판 제작, 세계유산교육 등 문화유산 보호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최근 현대자동차는 요르단의 도시유적 페트라에서 관광 인프라 개선 지원 차원으로 세계문화유산 환경 보존 사업을 3년에 걸쳐 실시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룹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도 이 같은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에 위치한 강제 이주 고려인 정착지 마을을 개발하고, 그들의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프로젝트를 오는 2021년 2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며, 2015년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1문화재 1지킴이' 활동을 전력플랜트사업본부 대표 사회공헌활동으로 선정해 매달 고궁 정화활동을 실시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한국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적극 알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랬던 현대엔지니어링이 막상 자신들이 시공을 맡은 공사현장에서 세계적인 공룡유적이 나오자 표정을 싹 바꾼 것이다. 겉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문화유산 보전을 외치고, 속으로는 계산기만 두드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의 CSR 방향과도 어긋나는 처사다.

물론, 현대엔지니어링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뿌리산단은 총 2296억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된 프로젝트로 준공(2020년 3월)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시공사로서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마치 다된 밥에 재가 뿌려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진주시 입장도 수긍이 간다. 향후 정부 차원에서 지원되는 대규모 뿌리산업 육성기금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역경제 침체로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현대엔지니어링과 진주시가 양보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뿌리산단은 준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분양률이 8%대에 머물고 있다. 공정률은 60%에 불과하다. 산업시설용지 91필지 중 6필지만 분양이 완료됐으며, 지원시설용지 39필지와 주차장용지 5필지도 6필지에 대한 분양신청서만 접수됐다고 한다. 차라리 이번 공룡화석 발견을 계기로 부지 자체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공룡 콘텐츠 위주의 공원, 전시관 등을 조성하는 게 지역경제에 더욱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금껏 문화유산 보전활동에 힘써왔던 것처럼 현대엔지니어링이 세계최대 규모의 공룡유적지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진주시도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향적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로비나 외압에 굴복하지 말고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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