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예비타당성조사 개편…미래세대 부담 우려
[이병도의 時代架橋] 예비타당성조사 개편…미래세대 부담 우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4.13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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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의 변화, 국가재정 악화 안된다
낮아진 문턱 혈세 낭비 가능성
정치 바람 타기 더 쉬워진 SOC
청년세대 피눈물 加重 말라
무더기 승인 부실 난립 막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가 20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정부가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어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비수도권이나 수도권 둘다 대규모 예산투입 사업 추진이 더 쉽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파장이 적지않다.

문재인 정부가 24조 원이 투입될 23개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더기로 면제한 지 2개월여 만에 다시 예타 장벽을 크게 낮추는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개편안이 적지 않게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타 문턱이 크게 낮아짐에 따라 선심성 부실 사업이 난립해 재원 낭비로 이어질 위험이 커졌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지역의 표심을 끌어오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번 예타 개편안이 정부재정의 방파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역시 가장 큰 걱정은 선심공약을 양산하는 우리 정치현실과 예타 제도의 부실운영이 맞물릴 가능성이다.

문제는 지역균형 개발 효과도 미미한데 손쉬운 예타로 혈세가 낭비되고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점이다.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한 사업이 그대로 시행되면 결국 국가부채는 늘어나게 되고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대대적 선심성 정책

지난해 국가부채는 1700조 원에 육박하면서 국민 1인당 3260만 원의 빚을 떠안았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임기 중 공무원 17만 명 이상 늘리기로 한 것도 모자라, 올해 슈퍼 예산에 이어 추경을 예고했다. 이제 예타까지 풀면 국가재정은 견제장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월에도 24조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는 대대적인 선심성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예타 면제 발표가 국가재정법상의 예외 조항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이번 개편은 제도 자체를 바꿔 지방의 SOC 사업 추진의 문을 크게 열어준 것이다.

1월 예타 면제 발표로 4조7000억 원 규모의 남부내륙철도 등 이미 예타에서 한두 차례 떨어진 사업들까지 면제 대상이 됐다. 이번 개편으로는 지역거점도시가 추진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의 통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복지ㆍ소득이전사업은 더하다. 종전엔 사업목표와 대상이 명확하고 적절한지, 상위 계획과의 연관성이 있는지, 중복되지는 않는지가 주요 정책분석 항목이었지만 앞으로는 사업목표와 대상의 적절성만 주로 본다. 명확성은 싹 없애버렸다.

문재인정부는 전 정부를 향해 “토건 국가”라고 날 선 비판을 했지만 오히려 이전 정부보다 더하다는 말을 듣는다. 정부는 예타 허물기에 신중해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텅 빈 나라 곳간을 물려줄 순 없다.

예타제도 근간 훼손 가능성

예타는 세금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미리 사업성을 따지는 심사제도다. 국가적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국가재정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총사업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투자 대비 경제성이 있느냐를 따져보자는 것으로 예산 투입의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다.

예타의 핵심은 경제성 조사다. 타당성 조사가 주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반면에 예타는 주로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구 의원치고 좋아할 이가 없는 제도지만 국가부도 위기를 겪고 나서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선심성 재정사업에 국민 혈세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했었다.

이 제도는 도입된 이래 지난 20년동안 국고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실제로 그동안 총 849개 조사대상 사업(386조3000억원)중 불요불급한 300개 사업(35.3%, 154조1000억원)을 막아 재정효율화에 기여했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은 5월부터 시행된다. 비수도권의 경우 경제성 비중을 내리고, 지역균형발전 비중은 올리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책평가의 비중은 기존의 25∼40%를 유지하되 일자리, 환경, 생활여건 개선 등 사회적 가치의 항목을 신설했다. 정책성 평가중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재원조달 가능성 부분은 별 의미없는 특수평가 항목으로 보내버렸다.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경제성 평가 비중을 낮춘 제도 개편은 ‘재정 문지기’ 역할을 하는 예타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역대 정권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계속 추가해 예타를 너덜하게 만들면서도 예타의 기준 자체를 함부로 바꾸지 못한 것은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장기간이 소요되는 지역 SOC 사업의 경우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뒷감당은 다음 정부가 떠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왼쪽)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왼쪽)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대형 사업 봇물 터질 듯

실제, 문 정부의 이번과 같은 개편이라면 예타 제도가 정권 차원의 사업을 뒷받침하고, 추후 실패로 드러나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조사기관에는 비용편익 간의 경제성 분석만 맡기고 종합평가는 기획재정부 산하에 신설하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맡겨 정치권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작용하기 쉬운 구조로 바꾼것도 문제다. 특정 사업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이 커질 게 자명하다.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외부기관에 맡기는 게 상식이다.

사실, 그동안 지방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도권보다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수도권 사업의 경우 예타 통과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성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지다보니 지방 사업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인구와 돈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구조에서 지방은 경제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그 결과 비수도권은 사업이 억제돼 국책사업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동안 지방정부 차원에서 예타 제도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한 만큼 이번 개편을 일견 환영할 만하다. 경제성을 너무 중시하면 수도권-비수도권의 부익부 빈익빈이 확대되는 불균형 발전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은 갈수록 피폐화되고 수도권은 인구와 시설이 집중돼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꾼 제도를 당장 5월부터 적용하겠다니 올해부터 지역별로 정부 예산 지원을 전제로 펼치려는 대형 사업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판이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역기능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보면 조사 기간도 짧아지고 기준도 단순해져 문턱을 확 낮춘 것으로 보인다.

종래 평균 19개월 걸리던 조사 기간을 12개월 이내로 단축하면서 수도권 사업에는 경제성과 정책성만 따지고, 비수도권 사업에는 지역 균형발전 가중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균형발전 평가 시 지역낙후도 항목은 가감점제에서 가점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면 비수도권 국책사업의 예타 통과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진다. 지난 18년(1999~2017년) 동안에는 782건을 심사해 273건을 걸러내 탈락률이 35%였다. 앞으로는 탈락률이 상당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타제도는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고 정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이 대상이다. 이번 개편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300억 원 이상의 국가 지원을 받는 SOC 사업이 승인받을 여지가 커졌다.

예타의 문턱에서 좌절됐던 신분당선 연장(광교~호매실) 사업은 이미 조성된 5천억원의 재원이 가점을 받아 통과가 확실해졌다. 제2경인선 광역철도 건설사업과 계양~강화 고속도로 건설사업도 청신호가 켜졌다.

타당성이 약한 대형 사업들도 추진되게 될 것이다. 경인아라뱃길, 의정부경전철, 인천국제공항 KTX 등 예타를 통과하고도 수요 예측 실패로 두고두고 짐이 되는 사업들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가 건의한 개선방안이 상당 부분 반영된 정부의 예타 제도 개편을 환영한다"면서 "신분당선 연장 예타가 조속히 통과되도록 도 차원의 노력을 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염태영 수원시장도 "경제성 조사와 종합분석 평가를 분리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분석에서 제외한 점, 사업 추진부서 평가항목별 효과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관련자나 지역 주민들은 사업을 반길 수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우려가 크다.

정부 지자체 모두에 부정 영향

예타 제도는 그동안 사실 경제적인 측면을 너무 따지다 보니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지역 숙원 사업은 배제되기 일쑤였다.

특히 부산 울산 등 지방 광역도시는 종합 평가 때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 부문별 배점에서 수도권과 동일해도 지역균형발전의 세부 항목인 지역낙후도에서 감점을 받아 이중의 불이익을 받았다.

예타제도 종합평가의 지역균형발전 반영비율을 5%나 높인게 바로 지난 2017년이다. 그 결과 지난해 예타 통과율은 제도 시행 후 최고 수준인 74.1%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번엔 근본적으로 제도 자체를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예타를 계속 후퇴시키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대규모 토건부양책으로는 지역균형발전 효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까지 정부의 조치에 우려를 표시했겠는가.

예타 관문이 활짝 열리게 됐지만 부작용이 클 것이다. 이번 개편으로 예타 제도는 껍데기만 남은 꼴이 됐다. 막대한 적자를 낳고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사업장이 속출할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가 20년 만에 처음 내놓은 이번 개편안은 예타 제도의 취지에 역행한다. 선심성 사업이 늘어나 재정이 허투루 쓰이고 난개발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조건을 완화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게 뻔하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총선 겨냥 돈풀기 비판론

이번에 실제로 달라지는 내용의 상당부분은 한마디로 정책성 평가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이다. 정부 자의적인 결정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되는 구조다.

이제 정책이란 말만 가지고 못할 일이 거의 없어지게 생겼다. 내년 총선을 앞둔 문 정부로선 지역 유권자들이 박수를 치고, 여야 없이 정치인들도 요구하는 사업에 굳이 제동을 걸 이유가 없어 보인다.

문 정부 들어 재정 방파제로서의 예타 기능은 급속히 무너졌다. 지난 1월 발표된 23개 예타 면제 대상에도 예타를 마치지 않았거나,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 사업이 수두룩하다.

이런 무더기 예외 인정만으로도 예타는 사실상 무력화(無力化)했다. 그것도 부족해 방식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정권 입맛대로 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잖아도 정책성·균형발전은 주관적 요소가 강한데, 정권이 자의적으로 개입할 소지가 더 커진 것이다.

선심성 재정사업을 추진하려는 정치권 공세를 막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 전까지 지역마다 신청되는 사업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받아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의 총선을 겨냥한 합법적이고 공공연한 선심성 돈 풀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당정청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는 곳마다 산타클로스처럼 토건(土建) 사업을 선물로 퍼붓고 있다.

과거 국책사업이 흉물로 변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무리한 선심성 공약, 부풀려진 수요예측, 부실한 예타조사 등이 만들어낸 참담한 결과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이번 제도 개편안이 세금 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효용보다는 예산낭비 부작용이 지나치게 크다면 걸러내야 한다.

예산낭비 차단 제도를

부담은 미래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예타 제도는 재정의 효율적인 관리와 운용을 위한 안전장치였다. 시대와 환경 변화에 맞춰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본래의 취지를 흐려서는 안 된다.

글로벌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전한 재정은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다. 정부는 선거를 의식해 재정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예타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감시망을 확대하는 등 예산 낭비 차단 제도를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후 평가 제도를 강화하는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예타 문턱이 낮아진 틈을 이용해 선심성 민원 사업들이 무더기로 추진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균형발전과 대규모 사업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제대로 하려면 공정하고 투명하면서도 책임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대규모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사업들이 정확한 검증 보다 정치적 논리로 예타의 문턱을 마구 넘어서면 국가 재정의 파탄과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이제라도 운영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실하게 강화해야 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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