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재보선 통해 거물 된 인사…‘뒷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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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재보선 통해 거물 된 인사…‘뒷배가 있었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4.14 11: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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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4월 재보선 박근혜…뒷배는 이회창
93년 상반기 재보선 손학규…뒷배는 김현철
11년 하반기 재보선 박원순…뒷배는 안철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해 거물로 성장한 정치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박근혜다. 사진은 12년 11월 새누리당사에서 이회창의 박근혜 지지선언 기자회견 당시 모습이다.ⓒ뉴시스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해 거물로 성장한 정치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박근혜다. 사진은 12년 11월 새누리당사에서 이회창의 박근혜 지지선언 기자회견 당시 모습이다.ⓒ뉴시스

1998년 4월 2일, ‘수인번호 503번’ 박근혜의 정치인생이 시작됐다. 제16대부터 제19대까지 4번의 국회의원과 제18대 대통령을 지낸 박근혜의 시작은 1998년 4월 재·보궐선거를 통해서였다.

재·보궐선거는 누군가의 지역구였던 곳에 들어가 치르기 때문에 거물급 정치인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약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 승승장구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바로 ‘뒷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98년 4월 재보선 박근혜…뒷배는 이회창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해 거물로 성장한 정치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박근혜다. 그는 1998년 4월 재보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초선이었음에도 61.3%를 기록했으며, 이후 16대부터 19대까지 동일 선거구(대구시 달성군)에서 지역구 4선을 했다. 탄핵당한 적은 있어도 낙선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그는 매 총선마다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18대 총선 때는 무려 88.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재보선을 통해 거물급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이회창’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2대 총재 이회창은 박근혜에게 97년 한나라당 입당을 권유하고 98년 재보선 공천을 준 인물이다. 이회창은 당시 재왕급 총재라는 별칭이 따라붙은 인물.

93년 상반기 재보선 손학규…뒷배는 김현철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또다른 거물은, 최근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의 갈등으로 시끄러운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다. 33대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였던 그는 1993년 상반기 재보선을 통해 44.9%의 득표율로 경기도 광명시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93년 재보선 민자당 공천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노병구. 그의 회고록 <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를 잠시보자. 

“노병구 연수원장이 당연히 민자당의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노병구에게 기회가 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공천발표 날짜가 다가오면서 당시 문민정부 실세였던 최형우 민주산악회 회장이 노병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노 원장, 현철이를 한 번 만나보시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현철이를 모릅니다. 또 안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현철이를 찾아가며, 또 가서 무엇이라고 사정을 합니까? 나는 김영삼 대통령을 모시고 정치를 했는데, 무엇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그분의 어린 아들을 찾아갑니까? 회장님께서 한 번 더 말씀해주십시오.” 

손학규 정치입문의 뒷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손학규는 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민자당에 입당해 김현철의 뒷배로 재보선 공천을 받았다. YS의 차남인 김현철은 2015년 10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문민정부는 개혁을 확장해 나가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개혁세력확장을 하는 것이었다. 개혁공천을 주도했다"고 술회했다.

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선된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의 뒷배는 ‘안철수’였다. 사진은 12년 10월 '2012 서울 북페스티벌'에 방문한 모습이다.ⓒ뉴시스
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선된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의 뒷배는 ‘안철수’였다. 사진은 12년 10월 '2012 서울 북페스티벌'에 방문한 모습이다.ⓒ뉴시스

11년 하반기 재보선 박원순…뒷배는 안철수

다음은 박원순 시장. 그는 2011년 하반기 재보선을 통해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됐다. 53.4% 득표율로 당선된 그는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서울시장이 됐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원희룡·정운찬, 민주당에서는 박영선·추미애·김성순·한명숙, 민주노동당 이정희, 진보신당 노회찬 등이 거론됐다. 그 중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박영선 의원이 박원순 변호사와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처럼 각 당에서 막강한 후보가 거론됐던 2011년 9월 4일에 발표한 국민일보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GH코리아(대표 지용근)가 실시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36.7%), 나경원(17.3%), 한명숙(12.8%), 박원순(5.0%)로 박원순 변호사가 가장 낮은 적합도를 보였다.

그러나 여론조사 발표 이틀 뒤인 11년 9월 6일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와 회동 후 “출마를 포기하고 박원순 변호사를 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안철수의 지지선언 후 동일한 여론조사 기관이 10월 5일에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불과 한 달 만에 박원순(45.5%)이 나경원(35.6%)보다 지지율이 9.9%포인트 앞섰으며 20여일 뒤 재보선에서도 7.19%포인트 차이로 박원순이 당선됐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박근혜·손학규)과는 케이스가 다르지만 분명 그도 뒷배가 있었다. 정치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안철수였던 것.

국민대학교 강상호 교수는 “재보선은 총선에 비해 몇 개 안되는 의석이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다. 그렇다보니, 재보선에 각 당이 총력을 기울일 환경이 조성된다. 그 과정에서 거물정치인이 탄생하게 된다”고 전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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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2019-04-14 21:56:36
기자양반 어려서 잘모르네 ㅠㅠ 손학규가 김현철이 공천해 누가 그래 보도국장이 다시 배우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