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칼럼> 독재의 추억, 후진적 '도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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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칼럼> 독재의 추억, 후진적 '도청 사건'
  • 김동성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7.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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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사자들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답과 함께 결과 내놔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동성 자유기고가)

'KBS가 민주당 대표실의 비공개 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면서, 이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KBS는 그간 국회 소관 상임위인 문화관광체육위원회가 논의해온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던 만큼, 이번 사태의 진상에 적지 않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욱, 도청을 통해 전달된 문건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 전해진 점과 도청의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또 한차례 불거지면서 사실상 사태는 정치 쟁점화로 치달은 상황이다. 문제는 도청 의혹의 가해 당사자로 지목 받아온 KBS의 입장이 사건 발생 이후, 이미 세 차례나 바뀌었다는 것. 의혹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KBS는 민주당이 도청 의혹을 제기한 직후, 침묵을 지키며 사태 추이를 관망해 왔다. 그러다, 민주당 측이 관련 정황증거를 제시하자, 이번엔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을 한 적이 없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 말은 곧 "도청을 하긴 했지만, 그런 방법은 아니다"는 일종의 '시인성' 해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논란의 수위가 한층 커지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최근, KBS는 사건과 관련해 또 다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을 언급하며, 도청 의혹 사건의 진실에 궁금증을 배가 시켰다. 애초 도청을 실행한 당사자가 KBS 기자 아니냐는 주장에 이번엔 "제3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밝힌 사건의 경위와 KBS의 주장을 한데 묶어 지금까지의 정황을 정리해 보자. 

수신료 인상을 두고 한나라당과 다른 입장을 보여온 민주당이 비공개 회의를 통해 입장을 정리하려 했다. 이를 알아차린 KBS 혹은 또 다른 세력이 도청을 시도했다. 하지만 KBS의 주장대로라면, 방송사는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체 방식이건, 제3자의 도움을 받았건 불법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비공개 회의 자료는 결국 도청 당사자의 손을 거쳐 외부로 유출됐다. 

근래 민주당과 KBS가 벌인 이른바 '도청 진실게임'의 단면은 이렇게 정리돼야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사건의 맥락이 이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도청의 당사자와 자료 유출의 '진범'을 찾아낸다고 해도, 이미 사건에 연루됐거나 파생된 의혹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이중, 당시 유출 자료(녹취록)를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 측이 갖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녹취의 당사자가 한선교 의원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 자료가 한 의원 손에 들려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한 의원 측은 이번 사건을 '민주당과 KBS의 문제'라고 일축하며 경찰 조사에도 나서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황으로 미뤄, 녹취 당사자가 한 의원 측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반면 이들의 입장이 모호해 질수록 진실 게임은 흥미(?)를 더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궁금증은 KBS가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한 '제3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사건이 민주당의 내부 진상 파악을 넘어 경찰 조사에 이른 만큼,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그 진범이 가려질 수도 있다. 

우려되는 점은 그 '제3자'의 실체와 KBS의 역할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3자가 이미 도청으로 정평이 난 국가기관이라면 사태의 파장은 일파만파 정국을 뒤흔들 여지가 있다. KBS가 제3자에게 위탁했다거나, 의뢰한 경우도 파장의 정도는 마찬가지일 듯 싶다. 명색이 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의 위상 추락은 말할 것도 없고, 대대적인 풍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그나마 진위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 중 한명인 한선교 의원이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들어, 조사에 불응할 것으로 알려졌고, KBS도 입장을 바꿔가며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어 진실 파악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번 사태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는 우선 정치 성향을 떠나, 국가 운용의 한 축인 제1야당 대표의 집무실에서 불법이 자행됐다는 점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문제다. 

아울러 선진 민주주의가 국가 원리인 이 시대에, 후진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도청'이라는 전근대적 행태가 버젓이 이뤄졌다는 것은 통탄을 금지 못할 일이다. 따라서 사건 당사자들은 이제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답과 함께 누가 봐도 이해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다. <월요시사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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