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동산] 10·26 사건 벌어졌던 그 곳
[무궁화동산] 10·26 사건 벌어졌던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4.17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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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궁정동 안가서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시민들의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무궁화동산은 4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곳이다. ⓒ시사오늘
시민들의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무궁화동산은 4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곳이다. ⓒ시사오늘

따뜻한 봄날이었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무궁화동산’에는 네댓 살 쯤 돼 보이는 아이 여럿이 뛰놀고 있었다. 화단에 나무와 꽃이 가득한, 잘 정돈된 공원 이곳저곳에는 근처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나온 아이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곳은, 그러나 40년 전 대한민국, 어쩌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대 사건’이 있었던 자리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 모였다. 말 그대로 ‘권력의 핵심 중 핵심’들이 한 자리에 앉아 술자리를 기울이는 연회(宴會)였다.

그러나 이 연회는 대한민국의 정치사, 아니 역사를 바꿔 놓았다. 연회가 시작된 후,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신민당 공작(工作)’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신민당 공작이란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강성(強性)인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구속시키려던 공작을 말한다.

박정희 “신민당 공작은 어떻게 됐어?”
김재규 “공화당에서 신민당 의원들이 제출한 사표를 일괄 반려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다 틀렸습니다. 신민당 주류들이 강하게 나와서 당분간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차지철 “신민당 놈들 중에 국회의원 하기 싫은 놈 하나도 없어. 까불면 학생이고 신민당이고 그까짓 놈들 전부 탱크로 싹 깔아뭉개야지.”
박정희 “오늘 삽교천은 공해도 없고 공기도 깨끗하던데, 신민당은 왜 그 모양이야. 쯧.”

이 대화는 당시 박정희와 차지철, 김재규의 갈등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마사태를 직접 목격하며 민심(民心)이 박정희 정부를 떠났음을 확인한 김재규는 온건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다. 반면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느냐”면서 강경대응을 주장했고, 박정희도 차지철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무궁화동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공원이다. ⓒ시사오늘
무궁화동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공원이다. ⓒ시사오늘

여기에 차지철이 안하무인(眼下無人)격 행보를 일삼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김재규는 결국 ‘거사(巨事)’를 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연회 전 심복(心腹)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귀띔해 뒀던 김재규는 연회장에서 빠져나와 집무실로 이동, PPK 권총을 바지 호주머니에 숨긴 뒤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박정희, 차지철과 함께 심수봉과 신재순이 부르는 노래를 듣던 김재규에게, “부장님, 전화입니다”라는 암호가 전달됐다. 김재규는 다시 연회장을 나와 부하인 박선호가 있는 부속실로 들어갔다.

김재규 “준비됐는가?”
박선호 “완료됐습니다.”

김재규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박정희는 여전히 신재순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잠시 자리에 앉았던 김재규는 7시 40분, 주머니에 숨겨뒀던 PPK 권총을 꺼내 “차지철 이 새끼, 너 건방져!” 라는 말과 함께 차지철에게 제1발을 쐈다.

김재규의 제1발은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다. 당황한 차지철은 “김 부장, 왜 이래!”라고 외쳤다. 이때 박정희가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라고 소리치자, 김재규는 박정희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제2발을 발사했다. 김재규는 곧이어 제3발을 쏘려 했으나, PPK 권총이 격발 불량으로 발사되지 않자 밖으로 뛰어나가 박선호의 권총을 받아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차지철의 복부에 한 발, 박정희의 머리에 한 발을 더 쐈다. 18년간 계속됐던 박정희 정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26일 저녁 7시 50분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서거했다.
김성진 문공부 장관은 27일 상오 7시 23분 중앙청 기자실에 나와 박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했다. 발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26일 저녁 6시경 시내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시에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만찬을 드시는 도중에 김 정보부장과 차 경호실장간에 우발적인 충돌사태가 야기되어 김 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26일 저녁 7시 50분 서거하셨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 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차 경호실장을 포함한 5명이 사망했으며 김 정보부장은 계엄군에 의해 구속, 조사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온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장을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국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며 국민 모두는 국장기간 중 조기를 달고 다 같이 경건하게 애도의 뜻을 표하십시다.”
1979년 10월 27일자 <경향신문> ‘박정희 대통령 서거’』

무궁화동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가 심은 기념식수가 있다. ⓒ시사오늘
무궁화동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가 심은 기념식수가 있다. ⓒ시사오늘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붕괴하면서, 대한민국에는 이른바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1979년 11월 10일 특별담화를 통해 ‘제4공화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우선 선출하되, 새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빠른 기간 내에 민주헌법으로 개정한 후 이에 따라 다시 선거를 실시해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담화문은 거의 모든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특별담화 발표 후 겨우 한 달여 만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 대한민국은 다시 군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한편, 궁정동 안가는 제5공화국이 들어선 뒤에도 한동안 비밀회동 장소로 이용되다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면서 완전 철거됐다. 이후 이곳에는 무궁화동산이 조성돼 시민들의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때문에 무궁화동산 한 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의 기념식수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무궁화동산은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화의를 반대했던 청음 김상헌의 집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시사오늘
한편, 무궁화동산은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화의를 반대했던 청음 김상헌의 집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시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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