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100년] 효창공원, 역사적 성지로
[독립운동 100년] 효창공원, 역사적 성지로
  • 김주연 기자
  • 승인 2019.04.18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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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윤봉길 이봉창 등 7인 열사 안치
독립공원화 사업 무산 등 우여곡절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
효창운동장 등 이질적 시설 '리모델링'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주연 기자)

백범 김구 등 7인의 열사들이 안치된 효창공원이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지로 조성된다. 한때 독립공원화가 추진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 효창공원을 조명해본다.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시사오늘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시사오늘

독립운동가 묘역 산실, 효창공원

백범 김구의 묘가 안치된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시대 왕실의 묘역이었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묘원인 ‘효창원’이 있었던 자리다. 일제 강점기 때 숙영과 독립군 토벌 등 일본군의 작전지로 이용되면서 문효세자의 묘 등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장됐다. 이후 묘역이 훼손되면서 ‘효창공원’으로 만들어졌다. 

효창공원을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처음 조성한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해방 후 1946년 김구 선생은 일본군 주둔지를 철거하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와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3인의 독립운동가 유해를 이 공원으로 이장했다. 

1949년에는 백범 김구가 서울특별시 경교장에서 암살되면서 국민장을 통해 그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됐고, 효창공원은 1989년 사적 330호로 지정됐다. 2002년에는 김구 선생의 묘소 앞에 김구의 생애와 항일 업적 등을 기념하는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삼의사의 묘. 오른쪽부터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등 삼의사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왼쪽 끝은 안중근 의사 유해가 안장될 예정인 가묘다. ⓒ시사오늘
삼의사의 묘. 오른쪽부터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등 삼의사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왼쪽 끝은 안중근 의사 유해가 안장될 예정인 가묘다. ⓒ시사오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돼있는 삼의사묘역에 가보면 유골이 없는 가묘(빈 무덤)가 있다. 이 가묘는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유골이 안장될 예정인 묘소다. 하지만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유골의 행방도 찾지 못하고 있다.

삼의사의묘 건너편 언덕 아래 위치한 임정요인의 묘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출신이었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삼의사묘와 마찬가지로 3인의 유해와 이름을 새겨 넣은 비석들이 있다.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곳에 들어선 축구장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들어서있는 효창운동장과 건물 내 서울특별시 축구협회 입구 모습. ⓒ시사오늘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들어서있는 효창운동장과 건물 내 서울특별시 축구협회 입구 모습. ⓒ시사오늘

1956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의 대한민국 유치가 확정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했다. 이에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하지만 효창운동장의 공사는 강행됐다. 한 달 뒤 1959년 7월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축구경기장 건설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1960년에 운동장이 준공되기에 이르렀다.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효창공원을 골프장으로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다 저지당했고, 1969년에는 효창공원에 반공투사위령탑, 1972년에는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관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 독립공원화 사업 시도
효창공원을 국가 차원의 독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 시도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사업을 추진했다. 효창공원을 애국선열 추모의 장, 독립역사 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열 묘역과 백범김구기념관 등은 성역화해 보존하고, 독립공원으로서의 정체성과 공원 기능에 맞지 않는 시설물은 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승만 정권이 지은 효창운동장을 철거하는 일은 이 사업의 핵심이기도 했다. 효창운동장이 있는 자리에 광장을 만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공원을 조성해 관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독립운동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독립운동가 묘역이 안장되어 있는 효창공원과 성격이 맞지 않는 효창운동장을 완전히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체 구장을 마련해 달라는 대한축구협회 등 체육계의 반대로 결국 효창공원 독립운동화 사업은 거론된 지 1년 만에 중단됐다.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재탄생

효창운동장 밑 독립운동가 추모 전시 예상도. ⓒ서울시 제공
효창운동장 밑 독립운동가 추모 전시 예상도. ⓒ서울시 제공

효창공원이 2024년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바뀐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효창공원을 2024년까지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아온 효창운동장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전면철거, 축소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60여 년 간 자리를 지켜온 국내 최초의 국제축구경기장이자 한국 축구역사의 산실이라는 가치를 살려 보존하기로 했다. 다만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고 있는 스탠드, 조명탑 등 일부 시설은 없애고 운동장과 공원 사이 주차장과 도로를 녹지화해 연결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독립운동가 묘역은 참배객 위주의 박제된 공간이 아닌 방문객과 시민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일상 속 추모공간’이 된다.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 주변 연못을 개보수해 평상시에는 주민을 위한 휴식처로, 기념일에는 엄숙한 추모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지역사회와 공원을 단절시켰던 담장을 없애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정신을 담아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서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해 나가겠다. 시민 삶과 괴리된 공간, 특별한 날에만 찾는 낯선 공간이 아닌,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미래 세대가 뛰어노는 새로운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효창운동장을 포함한 공원 전체 재조성 사업은 서울시가 주관하고, 문화재 관련 사항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진행한다. 2021년 착공에 들어가 2024년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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