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미세먼지 조작, 경제살리기 앞장서다 나온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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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미세먼지 조작, 경제살리기 앞장서다 나온 옥에 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4.19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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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적폐청산의 시대를 맞아 적폐가 정말 청산될 줄 알고 잠시 쉬었지만, 변이 풍기는 냄새가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기에 대변인은 다시 돌아왔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미세먼지 배출조작 혐의 대기업들을 위한 최종변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미세먼지 배출 조작 혐의에 연루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대기오염 배출량 측정업체와 오염물질 배출을 공모한 것으로 알려진 LG화학, 한화케미칼 등을 지난 17일 검찰에 송치한 데 이어, GS칼텍스,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들도 검찰에 송치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환경부는 업체들이 대기오염 배출량 측정업체와 공모해 사업장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실제보다 낮추는 등 허위 보고를 상습적으로 일삼아 행정처분을 피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민적 공분은 점점 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혐의를 받고 있는 대기업 대부분이 겉으로는 친환경, 지역과의 상생 등을 구호로 외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업체들이기 때문이지요.

LG, 한화, GS, 롯데, 금호석화 등 재벌대기업 계열사들이 미세먼지 배출량을 조작해 허위로 보고했다는 혐의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 shutterstock
LG, 한화, GS, 롯데, 금호석화 등 재벌대기업 계열사들이 미세먼지 배출량을 조작해 허위로 보고했다는 혐의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 shutterstock

존경하는 재판장님, 요즘 경제 분위기가 참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경기불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인데요. 지난 18일 한국은행은 '2019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쟁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제시했습니다. 연초 밝혔던 2.6% 대비 0.1%P 낮아진 수치입니다. 이는 국가경제의 핵심인 수출이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지난 1월 -6.2%, 2월 -11.4%, 3월 -8.2%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 확산으로 인해 수출 감소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내수경기 활성화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네 지갑이 텅텅 비어가는 실정 아닙니까. 일자리는 없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고, 빚은 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되고, 내수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기업들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발 벗고 나선 겁니다. 내수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돈을 쓸 수밖에 없게끔 소비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가장 쉽게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 건강에 참 민감하지요. 몸에 좋다고 하면 일단 사들이고 봅니다. 거기다가 국민적 관심사를 살짝 얹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미세먼지 같은 뜨거운 감자를 말이지요.

이번 논란에 연루된 LG화학과 같은 그룹 계열사인 LG전자에서 생활가전사업을 담당하는 H&A부문은 지난 1분기 사상 처음으로 매출 5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공기청정기가 있었습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공기청정기 매출이 전체 LG전자의 매출과 수익성을 견인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화케미칼을 거느린 한화그룹은 어떻습니까? 전사적 차원에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태양광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미세먼지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존재일 겁니다. 더 많은 미세먼지는 곧,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니까요.

그런데 이들이 과연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미세먼지를 몰래 뿌려댔을까요? 얼토당토 않는 소리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대들보인 재벌 대기업들이 설마 그런 불순한 의도로, 어차피 나중에 다 드러날 일을 가지고 국민들을 속였겠습니까? 오로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살신성인, 병을 주고 약을 파는 일종의 '창조경제'를 실천한 겁니다. 경제를 위해 살신성인하시고, 억울하게 감옥에 끌려가신 회장님들, 얼마 뒤에 바로 풀려나시잖아요. 정부에서도 그들의 희생정신을 알기 때문에 사면복권을 해주는 겁니다. 이처럼 기업들이 경제를 살리려고 희생을 하는데,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미세먼지 좀 마시면 뭐 어떻습니까. 경제를 살려준다는데, 까짓거 금 모으기 운동처럼 폐 모으기 운동이라도 해야지요. 욕할 게 아니라 박수를 쳐줘야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백번 양보해서 미세먼지 배출조작이 잘못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아직 이들이 조작을 공모했다는 사실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업체를 비방해서야 되겠습니까? 더욱이 조작을 공모했다는 확실한 물증도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된 한화케미칼 측은 "(오염물질 배출 관련) 담당자가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고, 공모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혹자들은 오염물질을 배출한 업체와 배출량 측정업체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대표적인 메시지의 내용을 한번 살펴봅시다. 측정업체 직원이 '메일로 보내주신 날짜와 농도로 만들어 보내드리면 되나요?'라고 문자를 보내자, 배출업체 직원은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로 다 맞춰주세요'라고 답했답니다. 과연 이게 결정적 증거일까요? 아닙니다. 그저 정황적 증거일 뿐입니다. 막말로 정해진 날짜에 진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보내달라고 했을 수도 있고, 문자에서 나온 '탄화수소'는 아라비카 커피에 들어있는 탄화수소 화합물을 말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또한 직원들이 주고받은 문자만으로는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공모했다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일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실제 조작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그저 같이 일을 하는 입장에서 원활한 업무추진 차원에서 서로 호감을 끌어내기 위해 맞춰주는척 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 용산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 처리 과정에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안도 경찰 측은 "경찰서 차원에서 민원인 만족도 조사를 위해 민원인의 호감을 끌어내려 축하한다고 말한 것"이라며 "음주운전 보도 무마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건도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울러 이번 사건은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거론했듯, 우리나라 경제는 정말 거대한 위기와 직면한 상황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출구는 남북경제협력, 나아가 한반도 통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건데요. 현 정권도 이 같은 점을 인지하고, 내수경제가 흔들리는 실정임에도 바다 밖에서 동분서주하면서 북한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북미관계에 집중하고 있는데,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결국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통일 후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처럼 우리의 경제영역을 대륙으로 원활하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한중관계는 미세먼지 문제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방중단의 방문을 거부할 정도입니다. 중국이 이렇게 나서자 지난 18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근거를 더 쌓은 후에 중국에 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다급히 갈등을 봉합하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미세먼지 배출조작 사건이 터진 건 중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알아보니까 너희 문제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문제였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들에게 징벌은커녕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현 정권의 기조에 맞춰 중국몽 동참에 힘쓴 기업들에게 마땅히 면죄부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모쪼록 국가경제와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타의 모범이 되는 애국기업들이 더 이상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도록 재판장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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