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고향 마이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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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고향 마이산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4.2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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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광대봉에서 본 마이산 능선길과 마이봉의 모습 ⓒ 최기영
광대봉에서 본 마이산 능선길과 마이봉의 모습 ⓒ 최기영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지역이다. 마이산(馬耳山)은 그중에서도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산이다. 봉우리 2개가 나란히 높게 솟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마이산이다. 마이산이 있는 마령(馬靈)면은 신비로운 마이산의 혼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마령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한 학년마다 3∼4개 반이 있었던 제법 큰 학교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났고, 지금 그곳 학생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 부모님도 그 험한 산동네를 떠나 도회지로 나왔었다. 어릴 적 마이산을 보며 자랐지만 정작 그곳을 올라본 적은 없었다. 산 친구들과 마이산 벚꽃도 볼 겸, 처음으로 마이산을 오르기 위해 지난주 고향마을 마령으로 갔다. 

마이산은 멀리서 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 암봉 두 개가 높게 솟아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하지만 정작 마이산 속으로 들어가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콘크리트를 발라놓은 것 같은 거대한 바윗 덩어리다. 마이산의 두 개 봉우리 중 동쪽 봉은 숫마이봉, 서쪽에 있는 봉우리는 암마이봉이다. 숫마이봉은 등산이 불가능한 아주 가파른 암벽이다. 암마이봉만을 오른다면 두시간 반에서 세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마이산 능선길 곳곳에는 이제 막 진달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파리 하나 없이 산바람에 하는 거리는 진달래꽃이 정겹다 ⓒ 최기영
마이산 능선길 곳곳에는 이제 막 진달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파리 하나 없이 산바람에 하늘 거리는 진달래꽃이 정겹다 ⓒ 최기영

우리는 마이산의 절경을 온전히 느끼고자 마령면 강정리라는 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강정리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던 곳이다. 암벽에 세워진 수선루라는 멋진 누각이 있는데, 그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바로 섬진강의 발원이다. 버스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비포장 신작로를 전교생이 줄을 지어 걸으며 수선루로 봄소풍을 갔었다. 지금은 길도 잘 포장이 돼 있었고, 새로운 길도 나서 교차로가 생기며 훨씬 넓어졌지만 마을과 수선루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렇게 잠시 예전의 추억에 젖어 있었다. 이윽고 나는 마이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타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갔다. '무진장'은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인 고원지대다. 그래서 '진안고원'이라고도 한다. 장수군은 땅의 평균 높이가 430m에 이른다. 진안군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지다. 땅 넓이는 전북에서 완주군 다음으로 넓지만 경작지 비율은 15%에 불과한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다른 곳은 이미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했다가 다 떨어지고 있는데, 마이산 초입에서는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진달래가 우리를 맞이했다. 새순 하나 돋지 않은 산길에, 이파리 하나 없는 줄기에 매달려 피어있는 진분홍 진달래가 마치 바람에 떠다니는 것처럼 하늘거렸다. 

산행을 시작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1시간 가량 걸으면, 가파른 계단과 밧줄이 놓인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마주한다. 그곳이 바로 광대봉이다. 어릿광대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대봉은 암마이봉으로 가기 위한 마이산 능선길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진안군에 들어서면 마이산 봉우리를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산세와 어우러진 마이봉의 모습을 광대봉에 올라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광대봉을 지나면 그런대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지붕이 온통 금색으로 덧칠이 된 고금당이라는 암자를 지나면 비룡대가 나오고 그 다음으로 봉두봉을 거치면 드디어 암마이봉으로 향할 수 있다.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은 마이산 등산로 중에서 가장 긴 '깔딱길'이다. 암마이봉에서는 진안군의 평온한 산촌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특히 아찔하게 솟아오른 숫마이봉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도 있다. 

암마이봉 정상 표지석(왼쪽), 그리고 숫마이봉. 숫마이봉은 등산이 허락되지 않는다 ⓒ 최기영
암마이봉 정상 표지석(왼쪽), 그리고 숫마이봉. 숫마이봉은 등산이 허락되지 않는다 ⓒ 최기영

암마이봉을 내려와 탑사로 가는 길에는 마이산 암벽 바로 아래에 지어진 은수사라는 절이 있다. 한겨울 은수사에서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마치 마이산처럼 솟아오르며 그 물이 얼어버린다. 마이산 특유의 골바람이 만들어낸 역고드름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탑사가 나오는데, 수많은 돌탑이 그리도 강한 비바람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온전하게 쌓여 있다. 탑사를 지나면 남쪽 주차장 쪽으로 가는 길에 탑영제(塔影堤)라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나온다. 암마이봉과 호수 주변으로 어우러진 벚꽃 풍경은 이제 마이산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탑영제와 어우러진 마이산의 모습 ⓒ 최기영
탑영제와 어우러진 마이산의 모습 ⓒ 최기영

지금은 널찍하게 이어진 멋진 벚꽃길이 되었지만, 어릴 적 걷던 그 길은 논길이었고 길가에는 진달래가 피어있었다. 벚꽃나무는 없었다. 탑영제는 근처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작은 저수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리도 멋진 유원지가 되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들어선 수많은 음식점이며 기념품 가게가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곳을 떠나고 꽤나 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리라.

탑영제를 에워싸며 피어있는 벚꽃은 마이산 최고의 절경이다. 마이산은 우리나라에서도 벚꽃이 가장 늦게 피는 곳 중의 하나다. 이날은 좀 아쉬웠지만 지금쯤이면 만개해 있을 것 같다.  ⓒ 최기영
탑영제를 에워싸며 피어있는 벚꽃은 마이산 최고의 절경이다. 마이산은 우리나라에서도 벚꽃이 가장 늦게 피는 곳 중의 하나다. 이날은 좀 아쉬웠지만 지금쯤이면 만개해 있을 것 같다. ⓒ 최기영

사방이 온통 첩첩산중인 고향의 겨울은 몹시도 혹독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고, 봄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진달래가 피어났다. 학교를 파하고 봄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굽이 돌 때마다 산자락 여기저기에 진달래가 피어있었고, 그 불길 같은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입 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진달래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있다는 것을 안 건, 도회지의 삶이 하도 힘에 부쳐 위안을 얻을까 싶어 산을 다니면서였다. 

봄날의 추억 가득한 진달래 대신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벚꽃을 본 뒤, 나는 마치 타지 사람인양 고향을 뒤로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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