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3C 정신으로 한국 위기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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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3C 정신으로 한국 위기 극복해야”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4.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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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47) 자유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부의장
“18대 대선서 보수대단결 기획해 승리”
“경제성장하는 아프리카로 눈 돌려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국회 부의장이자 판사 출신 5선, 해양수산부 장관, 여의도 연구원장 등 '오뚝이'보다는 '승승장구'가 더 어울리는 이력이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 부의장은 23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초청 강연에 '아구 아재의 오뚝이 정치'라는 제목을 걸었다. 화려한 길 이면에 숨은 그의 치열한 정치여정을 중심으로, 정치인 이주영이 추구하는 가치의 뿌리에 대해 들어봤다.

ⓒ시사오늘
"당내 선거는 계파가 없다 보니 정말 많이 졌습니다. 원내대표, 당대표에 계속 떨어지다가 국회부의장에 당선된 게 당내에서 처음 이긴 거에요. 그러다 보니 '오뚝이'라고도 불리게 됐습니다." ⓒ시사오늘

이 부의장은 '아구아재'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강연을 열었다.

"아구는 제 고향 마산의 상징이고, 아재는 경상도에서 친근하게 아저씨를 부르는 말입니다. 지난 2006년에 제가 '아구아재'를 캐치프레이즈로 써서 큰 히트를 친 바 있습니다. 마산 어시장에 들어가면 '아구아재 왔네'라고 반겨 주십니다.
 '오뚝이'는 또 뭔가 하면, 제가 국회의원 5선인데 사실 선거는 7번 치렀습니다. 두 번 낙선을 했죠. 그리고 당내 선거는 계파가 없다 보니 정말 많이 졌습니다. 정책위의장까지는 무난히 했는데, 그 다음부턴 너무 어려운 겁니다. 원내대표, 당대표에 계속 떨어지다가 국회부의장에 당선된 게 당내에서 처음 이긴 거에요. 그러다 보니 '오뚝이'라고도 불리게 됐습니다."

이어 이 부의장은 자신의 정치행로를 돌아보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학창시절 도덕재무장(MRA) 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경기고등학교에 MRA 반이 없었는데 제가 만들었어요. 그리고 장충체육관에서 대회를 열고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3C(Change, Challenge, Confidence)정신, 즉 변화·도전·자신감을 제 평생의 신념으로 삼게 됩니다.

대학에 간 뒤에는 사회법학회 부회장을 하며 민주화운동을 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5년 간 판사를 했습니다. 판사를 하면서는 김보은 양 사건을 집행유예 선고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다 못해 결국 남자친구와 살인을 하게 된 사건이었죠. 이 판결이 나중에 성폭력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이제 부산지법에 부장판사로 가게 됐습니다. 고향 근처로 가니까 문득 조금 더 액티브한,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판사는 수동적인 요소가 많은 직업이기도 해서요.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처음엔 통합민주당 영입 후보로 7선에 도전하는 황낙주 전 국회의장과 맞붙었었죠. 그 때는 낙선했는데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이 됐죠. 제17대 총선 한번 더 낙선한 뒤, 재보선으로 고향인 마산에 돌아간 뒤로는 쭉 국회에 있었습니다. 저를 '온건주의자'로 생각하시는데, 저도 초선, 재선 때는 저격수 역할도 많이 했죠. '정현준 펀드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대북비밀송금게이트'까지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3선 이후엔 헌법연구회를 발족했습니다. 친이계가 당직을 맡을 때라, 계파가 없는 전 할 역할이 별로 없더라고요. 이낙연 현 국무총리, 자유선진당에 있던 이상민 의원과 함께 헌법연구회에서 개헌을 연구했죠. 결국 개헌까지 가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다가 중립성향의 황우여 전 대표와 함께 정책위의장이 돼서, 제19대 총선서 대역전하고 제18대 대선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잠시 이 부의장은 지난 제18대 대선의 비화를 들려줬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제가 대선기획단장을 맡았어요. 처음 박근혜 후보 전화를 받고 '전 친박계도 아닌데, 서병수 의원이나 최경환 의원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다 생각이 있어서 부탁하는 거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해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중도성향인 제게 맡겨서 친이도 포용하려는 기획이었습니다. 저는 친이 포용에서 그쳐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선 전략으로 제시한게 보수대단결입니다. 이회창, 이인제를 절대 이탈시키면 안된다고 봤습니다. 중도선점만이 이길 수 있는 기회라고 봤던 겁니다. 저쪽은 김두관, 문재인, 손학규가 당내경선을 하고 안철수까지 단일화하면 흥행요소가 많았습니다.

반면 우리는 일찌감치 박근혜 후보로 결정돼서 상대적으로 흥행에 불리한 선거였죠. 게다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공격에, 이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득했습니다. '아버지 역사에 대해 사과하자'고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중도층의 마음을 돌리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그 문제는 맡겨 두세요 알아서 할테니'라고 하는 박 후보를 제가 '이러면 선거 집니다'라면서 계속 설득했습니다. 결국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죠. '우리나라 민주주의, 헌법가치를 훼손한 사건들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꼐 사죄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에 의해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습니다. 그게 없었으면 보수 대단결과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시사오늘
"대선 전략으로 제시한게 보수대단결입니다. 이회창, 이인제를 절대 이탈시키면 안된다고 봤습니다. 중도선점만이 이길 수 있는 기회라고 봤던 겁니다." ⓒ시사오늘

이 부의장은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와, 현 정부에 대한 우려로 강연을 마쳤다.

"아프리카 새시대 포럼을 2003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로 우리가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가야 합니다. 중동 붐으로 우리가 경제도약을 이루는 데 도움을 받았듯이, 마지막 기회의 대륙은 아프리카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선 반부패 위원회를 구성해서 '특사로 왔던 한국 이주영 의원에게 배우고 오라'고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자문도 많이 해줬죠.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는 아프리카 경제에 눈을 돌리면서 가야 합니다. 하지만 현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보면 우려가 많습니다. 현 한국의 상황이 경제, 외교, 안보…제대로 가고 있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처음에 말씀드렸던 3C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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