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패스트트랙 정쟁국회 혼란과 '민생(民生) 실종'
[이병도의 時代架橋] 패스트트랙 정쟁국회 혼란과 '민생(民生) 실종'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4.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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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국뇌관,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극한대립 뒷전에 밀린 민생현안 비상
폭력사태와 33년만의 국회 경호권 발동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후유증...野 장외투쟁
민심 흔들리니 선거제도까지 의혹
국회의원 ‘연봉킹’ 부끄러울 지경
산업계, "국회는 할 일 하면서 싸울 순 없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여야 4당이 추진 중인 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국회파행의 또 다른 뇌관으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공수처 설치와 선거제 개혁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한국당이 반발하면서 극한 정쟁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33년 만의 국회 경호권 발동, 11년 만에 나온 장도리와 쇠지렛대(일명 빠루)_. 여야4당의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이어가던 국회는 과거 '동물국회'의 모습까지 경신했다.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초유의 폭력사태를 빚은 여야가 물러날 기미 없이 격렬하게 맞붙으며, 정국은 20대 후반기 국회 입법 주도권의 향배를 판가름할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접점 없는 대립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계기로 형성된 한랭 전선을 크게 확장한 셈이다. 꼬인 정국은 더 꼬이고 정쟁 양상은 더 복잡해졌다. 

4월 국회는 개점 휴업이고 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협의체는 아예 실종됐다. 그 후폭풍으로 당면 경제ㆍ사회 현안까지 길을 잃고 멈춰선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회는 몇 달째 공전하고 화급한 민생현안은 부지하세월 뒷전으로 밀린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산업계도 속이 타들어 간다. 국회에서 기업활력법 등 관계법이 개정돼야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데 기약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정국 혼란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여야는 이미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에 나선 상황이어서 정치적 타협의 공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정국 주도권을 상대에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기만 두드러질 뿐 민생을 챙기겠다는 결의는 보이지 않으니 개탄스럽다.

물론, 이번 4개 정당의 패스트트랙이 검찰의 봐주기 정황이 드러난 ‘김학의 사건’ 같은 범죄를 엄단하고, 유권자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보다 더 반영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시각에 따라서는, 일단은 공직사회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민 지지와 의석 비율을 일치시키려는 의미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만 있다. 협상과 대화를 계속해도 힘든 판에, 온통 정면 충돌하는 국면이니 암담하기 그지 없다. 민의의 전당은 고사하고 극한 정쟁만 판을 치는 셈이다. 한치 양보와 협의도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싸움판에서 어느 쪽 눈에도 민생은 뒷전으로 보인다.

정국구도 1與4野에서 4與1野로

사실,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주요 정당이 반대하는 선거법을 다수결로 처리한 전례는 한 번도 없다. 

과거 다수당의 날치기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가 빈번하던 '육탄 충돌 국회' 시절에도 선거법만은 여야 동수로 구성된 정치개혁특위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해 왔다. 경기의 규칙인 선거제도는 경기 참여자의 합의로 정한다는 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에는 실제로 야권 통합을 막기 위한 정권 측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혹까지 있을 정도다.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는 형식과 내용 두 측면에서 모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내년 4·15 총선을 1년 가까이 앞두고 정국 구도가 1與4野에서 4與1野로 뒤바뀐 것을 의미한다. 

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나머지 4당만의 합의로 선거제도를 바꿔 내년 4월 총선부터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은 최장 330일 내에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단순다수결로 처리되기 때문에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4월 총선은 개정 선거법이 적용된다.

이 기간 내내 4개 정당은 최대 쟁점 현안에서 협력이 불가피하고,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강력한 반대 캠페인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석 과반에 미달하는 여당이 제2·3야당과 힘을 합쳐 제1야당을 포위했던 1990년의 3당 합당을 연상케 한다. 당시엔 보수 대연합이었다면 이번엔 진보 대연합인 셈이다.

선거의 룰을 바꾸고,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핵심 권한을 정하는 중요한 법안 처리에 제1야당을 ‘패싱’했다. 의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의회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당은 이를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며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해 그 후유증이 길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정쟁이 심화하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산더미처럼 쌓인 민생법안은 4월 국회에서도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하게 됐다. 국회 공전의 피해를 국민들이 떠안게 된 셈이다. 결과는 정쟁과 혼란뿐이다.

국회표류는 책임정치 방기

여야의 극한 대치로 4월 국회는 소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의사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또다시 '폭력국회', '동물국회'라는 오명까지 썼다. 

지난 25일은 의원들 간 몸싸움을 방지하고 품격 있는 국회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12년 처리됐던 국회 선진화법이 한순간에 무력해진 하루였다. 

고성과 멱살잡이, 인간 띠, 밀고 당기기가 난무한 것으로, '동물국회'의 모습은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7년 만이다. 

'패스트트랙 열차'를 본궤도에 올리려는 여야 4당과 '육탄 저지'에 나선 한국당이 국회 소관 특별위원회 회의장과 로텐더홀 등 곳곳에서 '철야 대치'를 이어가며 거세게 충돌했다. 탈진과 부상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이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되고, 현장에 있던 3명이 대기하던 119 구조대에 의해 후송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야 4당은 이날 선거제와 개혁법안들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사활을 걸었지만 한국당의 강력한 저지에 막혀 일단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국회를 내팽개치고 장외로 뛰쳐나갔던 야당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여권과 청와대의 책임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민생 현안과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심의가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화급한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이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20대 국회도 이제 제대로 일할 시간이 채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20대 국회 역시 식물국회,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주도권을 쥐겠다는 결기만 두드러질 뿐 민생을 우선한 협치 의지는 뚜렷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한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국민의 삶과 기업 활동에 필요한 민생 현안을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지난 1·2월 임시국회도 여야 갈등으로 본회의조차 못 열었고 3월도 사실상 식물국회로 끝났다. 

여야는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대립과 별도로 민생 현안들은 이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일손을 놓고 지지층 결집과 정치적 유불리만 앞세우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은 물론 '국회 해산' 요구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국회표류는 정당정치 실종과 책임정치 방기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행위임을 민주당과 한국당은 명심해야 한다.

3개 안건 내용에도 심각한 문제점

패스트트랙 3개 안건의 내용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있어 이렇게 밀어붙이기엔 시기상조다. 

선거법은 일반 법률과 달리 선거 규칙을 정하기 때문에 정치권 합의가 기본이다. 만약 표결로 강행해야 할 상황이라면,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정도의 강력한 공감대와 타당성이 입증돼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선거제도는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4당이 합의한 선거법은 의석 300석은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75명으로 28명 늘리며, 배분 방식은 50% 권역별 연동형으로 하자는 게 골자다. 

모든 제도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치 현실에 적합하냐의 문제이다. 현 상황에서 계파 줄세우기와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향식 풀뿌리 정치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치 촉진에 도움이 되기보다 지역 유력자의 당선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더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법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법을 ‘끼워팔기’ 식으로 패스트트랙에 추가한 것이다. 두 법안 모두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수사권 조정에는 수많은 다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패스트트랙 4당 합의는 총선 때까지 정치를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으로선 4당의 선거제·공수처법안 합의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지만, 장외투쟁으로 4월 임시국회를 무력화할 수는 있는 만큼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접수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접수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뉴시스
25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접수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접수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뉴시스

'식물국회' 재현 예고

패스트트랙은 2012년 5월 도입됐다. 쟁점법안의 국회 장기 표류를 막는 게 주요 취지다.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은 일정 기간(최대 330일)이 지나면 상임위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문제는 이번 패스트트랙에 대한 한국당의 강력한 반대다. 처음부터,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한국당은 4월 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할 수 없다고 밝히고 의사일정 합의의 전제로 패스트트랙 철회를 내세웠다. 

한국당은 연동형 선거제를 거부할 뿐 아니라 선거법을 일반 쟁점법안으로 보고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자체가 국회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번 선거제는 종전보다 정당득표수에 의석수를 더 비례시키는 방향이다. 선거제가 구현해야 마땅한 '민심 그대로'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라는 점에서 여야 4당의 합의와 추인을 평가할 측면은 있다.

문제는 한국당의 전면적 반대와 이를 극복할 방법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4당 합의 직후 "20대 국회는 없다"고까지 했다. '식물국회' 재현 예고는 아닐는지 우려된다. 선거제 개혁은 지난 30여년간 합의처리 관행을 지켰다. 패스트트랙 추진을 비난하는 한국당의 항변은 들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민생·경제 법안 산적...산업계도 신음

지금 국회에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경제 관련 법안이 산적해 있다. 

미세먼지 대책과 산업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데이터경제활성화 3법 등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기는 커녕 먼지만 쌓이는 형국이다. 

근로기준법의 경우 지난달 31일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끝나 법 위반 시 사업주들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강원지역 산불과 포항 지진 등 재난 관련 추경예산안도 여야 간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추가경정예산이 급하다는 여당은 어떻게 국회에서 이를 처리하려는 것인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절실하다던 야당은 언제 이를 입법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국회 파행으로 산업계도 신음하고 있다.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과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이 국회에 묶여 있다. 지난 4일 이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한 논의도 진척이 없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100개 기업이 기활법 승인을 받았다. 조선, 기계, 철강, 석화 등 한계 상황에 몰린 산업의 기업이 74%, 중소·중견기업이 93%를 각각 차지한다. 올해도 기업 4곳이 기활법 승인을 신청했다. 기활법 승인을 원하는 기업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게으름 속에 기활법이 일몰되면 국내 주력 산업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국회는 신산업 육성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택시·카풀 합의에 따른 택시업계 지원법, 고교 무상교육 지원법, 유치원 3법도 처리가 급하다. 무엇보다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포항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곤란하다.

패스트트랙 배경도 의혹

정국대치는 앞으로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당이 장외 투쟁에 나서고 황교안 대표가 "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말한 것, 이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다시 그런 발언 하면 용납 않겠다"고 맞대응한 것은 더 강한 충돌의 예고편 같아 불안하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2년을 비판하는 '대국민 보고대회'에 나서겠다고도 벼른다.

구속됐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보석 허가로 풀려나자 한국당은 드루킹 재특검을 논의하겠다고도 반발하는 마당이다. 

한국당 정치 행보의 상당 부분이 민생보다는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셈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국민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국민 눈높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독선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이번 패스트트랙의 배경도 주목된다. 4당이 이번에 합의한 선거제는 복잡하기로 소문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한 번 더 변형한 것으로 현역 의원들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여당과 친여 정당들이 힘을 합쳐 의원조차 잘 모른다는 제도로 선거 룰을 바꾸려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제도가 한국당에 유리하다면 절대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정치 구도에선 한국당이 특별히 더 타격을 입게 되는 맞춤형 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른미래당과의 야권 통합이 물 건너가고 심지어 친박 세력이 10~20% 내외의 박근혜 지지표 결집을 믿고 신당 구성을 추진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의원들이 처음 선거법 개편에 반대하다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야권 분열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적지않다. 

수백 표 차로 승패가 갈리는 수도권 지역구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친박 신당이 야권 성향 표를 놓고 다투다 보면 전체 승부 추가 여권 쪽으로 기울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한국당은 4당 합의에 대해 "선거제도 패스트 트랙을 실제 강행할 경우 20대 국회는 더 이상 없다"고도 밝혔다.

정국파행 여권 책임론

여야 대치 정국에 빌미를 먼저 제공한 것은 여권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것은 청와대와 여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 탓이 크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업무를 시작하면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 과정은 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경실련이 실시한 국정평가 조사에서 전문가들이 가장 낮게 평가한 대목은 인사정책이었다. 10점 만점에 3.9점의 낙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 2년 평가 토론회’에서도 각계 전문가들은 “인사와 일자리 정책에 실망했다”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경제에는 무관심하고, 불로소득의 달인만 골라 장관에 임명했다”는 원색적 비판도 나왔다. 예사로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독선과 불통에서 벗어나라’는 4·3 보궐선거 민심의 경고를 청와대는 벌써 잊은 것 같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2년 내내 적폐청산에 매달리면서 야당의 반발을 사는가 하면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도 맞지 않는 인사들을 장관에 임명해 국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야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연철 통일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이어 지난 19일 이미선 헌법재판관까지 임명을 강행하자 정국이 얼어붙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만도 벌써 13명에 달한다. 이는 박근혜 정부 4년간의 숫자(10명)보다 많다. 

사정은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혼란을 우려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을 밀어붙였지만 효과는커녕 일자리 말살만 초래했다.

중요 현안 제1야당 '패싱'은 문제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에도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 포용과 여유로 야당을 품어내는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정국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여권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야당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는 등의 독선적 행태를 보이면서도 한마디 사과의 말도 없었다. 반발하는 야당에는 독설을 퍼붓기 예사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 있을 야당은 없다. 그러니 국가의 미래와 민생은 안중에 없고 증오와 혐오의 독기만 정치판에 차고 넘치게 된 것이다.

국회의원 정수 및 형사사법시스템과 직결되는 중요 현안을 논의하면서 제1 야당을 '패싱'한 것은 합의를 중시하는 의회민주주의국가에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한국당이 '국회 전면 보이콧' 검토에 나선 것도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압박 탓이 크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연동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명분이 쌓인 만큼 정의당 등과 손잡고 밀어붙이면 한국당도 마냥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여권은 일방처리로 빚어질 후폭풍을 먼저 생각했어야 옳다. 

한국당은 주말인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첫 대규모 장외집회 열고 대여(對與) 전면투쟁에 나섰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 자리에서 “국민을 개무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 당분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 동안 국정운영에 동력을 높이고 각종 개혁 과제를 마무리하려면 야당과의 협치가 절실하다. 이제라도 청와대가 정치력을 발휘해 정국 교착 타개책을 제시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책임론

자유한국당 책임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이 이번 합의에서 배제된 것은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많고, 야외 투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법안 처리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은 승자독식형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또한 공수처가 제대로 도입될 경우 고위공직자 비리 감시 체계는 한층 강화될 것이다. 

선거제 개혁은 불합리한 제도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 한국당도 선거제 개혁에 진정성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

다른 주요 민생, 경제 현안 역시 국회에 쌓여 있다. 제1야당이 손 놓고 지켜만 볼 순 없는 중대 사안들 아닌가. 한국당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세를 냉정히 짚고, 협상하고 또 협상하면 어떨까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정치는 꿈틀대는 생물이고 변화무쌍한 현실이다. 민주당 주도로 여야 4당이 수(數)로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만 해선 자칫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수 있다. 합의제가 구현되기 어려운 국회 환경이라면 다수제가 차선이 될 수 있고, 다수결 기본에 소수권리 인정과 보호가 불문율로 뒤따름을 되새겨야 한다.

책임을 묻되 민생과 직결되는 현안은 해결해야 마땅하다. 국회를 포기하는 정당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까지 합의처리 지혜를

물론, 4당은 이번에 한국당의 강력한 반대 탓에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법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항상 상대가 있는 것이고, 의회주의 철칙은 대화와 타협이며 상호관용과 인내다. 한국당은 114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제1야당이다. 여당인 민주당을 위시한 4당은 한국당과 끝까지 선거제 합의처리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패스트트랙은 최장 330일이 지나야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하는 제도여서 슬로우트랙이라는 비판론도 따른다. 그 전에 언제라도 한국당과 합의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청와대와 여당은 소통부재, 정책 독주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물어 정국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한국당도 국회 보이콧과 장외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깊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장외집회를 접고 국회 정상화에 머리를 맞대도록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회의원의 연간 평균소득이 1억4천만원으로 618개 직업 중 최고라고 밝혔다. ‘연봉킹’이 부끄럽지 않도록 여야는 총선용 주도권 싸움을 즉시 중단하고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펼쳐주길 촉구한다.

포용과 협치...민생위한 정치권 결단 주목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1년이 채 남지 않은 현 20대 국회는 이른바 촛불 민심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촛불 민심은 국회가 말 그대로 '민의의 전당'이 돼 달라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지금 민의는 여야 모두에 덧없는 정쟁을 즉각 접고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포용과 협치를 통해 민생을 챙기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에선 준엄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걸 여야 공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모두의 정치력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여야 대치를 풀고 민생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여야는 국회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반대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유연한 국정운영이 절실한 때다. 정치지도자들의 정치력과 결단이 주목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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