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이인영 “원내대표 선거,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풀인터뷰] 이인영 “원내대표 선거,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 대담 정세운 기자/정리 윤진석·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4.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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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국회의원
총선승리 위한 변화와 통합, 용광로 리더십
중원 확장의 미드필더, 야전사령관 될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대담 정세운 기자/정리 윤진석·김병묵 기자)

이인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중원으로 최대 확장할 거라며 원내대표는 미드필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인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중원으로 최대 확장할 거라며 원내대표는 미드필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에서 ‘결선만 가면 이긴다’로 바뀌고 있다. 요즘은 ‘이인영이 대세다’라는 말도 나온다.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대한 얘기다. ‘김태년 vs 노웅래 vs 이인영(가나다 순)’ 3파전. 처음엔 무난히 친문(文)핵심 의원의 승리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석도 얻지 못한 4·3 재보선을 거치면서 판세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 의원은 스펙트럼이 넓다. 그를 둘러싼 표심의 반경이 크다. 86그룹, 범친문, 부엉이모임, 민평련, GT(김근태)계, ‘더 좋은 미래’ 모임 등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다. 흩어져 있던 계파가 이 의원 쪽으로 통합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는 기존 선거의 학습효과 때문도 있다. 여야 모두 계파 공천 잡음, 옥새 파동 등을 통해 선거에서 쓴 맛을 본 바 있다. 재보선 패배로 위기감이 확산된 상황이다. 민주당이 지는 전철을 밟을 리가 없다.

때문에 총선 컨트롤타워의 원내 수장을 뽑는 이번 ‘원대’는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중원으로 나가 미드필더 역할을 할 사람. 지지층 결집, 중도를 아우를 통합의 아이콘에게 표가 향할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87년 6월 항쟁 때 고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1기 의장이었다. 직선제 쟁취 후에는 학생운동을 대표해 김영삼(YS) 김대중(DJ) 후보 단일화를 주도한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시민 재야 운동을 거쳐 구로 갑에 당선됐다. 17, 19, 20대 국회의원 삼선 째다. 교육위, 행안위, 기획재정위, 환경노동위, 여가위, 외통위, 정보위 등 국회 상임위를 폭넓게 거쳤다.

개헌특위 간사,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장 등을 통해 협상의 관록을 쌓았다. 전략가로서 노무현,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전략 담당,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다. 박원순 서울시 캠프, 2010 지방선거 기획단장 등도 맡았다. 당내 경제정의 노동민주화 특위에서도 활약했다.

2020 총선 시계 앞. ‘이인영’의 머릿속엔 민주당의 권력지형이 새로 짜여 지고 있다. 계파가 통합된 원 팀. 그는 2020 총선의 야전사령관이 될 수 있을까. 눈빛이 살아있고 화법은 솔직한 정치인. 인터뷰는 지난 4월 2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문재인 정부와 당의 성공은 총선 승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문재인 정부와 당의 성공은 총선 승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文정부와 민주당 성공은
총선 승리에 달려 있다


-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게 된 이유가 듣고 싶다.

“한국에서 극우정치의 등장.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그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다. 제1야당 공당의 대표니 미래를 향한 이야기, 국민들을 위한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무덤 속에 있어야할 386 철학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 됐다. 당정청을 장악한 좌파독재…’ 이런 식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었다. 오바마 때 주한미대사, 민주당 상하원의원, 싱크탱크 인사 등을 만났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미팅이었다. 황 대표의 발언은 휴대폰으로 한국 정치를 검색하던 중 발견한 거였다.

그래도 내가 민주화 운동의 기수였는데. 저런 소리를 듣고도 참으면서 정치할 이유가 없다. 모멸감이 확 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황 대표로서는 아플 테지만, ‘사탄의 조롱’ 같았다. 그 정도로 모멸감, 모욕을 느꼈다.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원내대표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 당 대표에 도전해오다, 원내대표로 선회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당 대표에 출마하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상황이 긴박하다고 여겼다. 한국당의 극우화 경향은 폭력성, 포악성을 넘어 너무 심각한 병폐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나름대로 합리적 보수라고 여겼던 나경원 원내대표마저 점점 극우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심성을 선하게 유지시키는 게 정치인들의 도리인데, 오히려 할퀴고, 자극해 갉아먹어가고 있다.”

이 의원은 2010~2011년 민주당 최고위원,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거쳐 이후 두 번의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때, 2018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 원내대표 출마하면 의원들을 많이 만날 텐데. 무슨 얘기를 하나.

“당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촛불 시민혁명의 정신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총선의 고비를 넘기자. 그러려면 총선에서 꼭 이길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는 당내소통·당정청의 소통·내적인 단결·통합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또한 총선 승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회 운영위, 상임위 중심의 운영도 약속했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 자부심이 당당해질 수 있도록 컨센서스(의견)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문제 등도 언급한다.”

- 총선 승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야당도 모든 걸 총선전략에 맞춰서 나올 것이다. 편을 갈라 결집시킬 것이다. 우리도 선한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새로운 통합,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용광로처럼 다 섞이고 녹여내는 거다. 새로운 시대 주류들, 새로운 정권의 책임자들을 우리가 뒷받침하는 거다. 앞으로 너는 주류 나는 비주류는 없다. 아주 넓고 새롭게 짜보자는 전략이다. 내부의 통합력을 극대화해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진용을 구축하겠다.”

- 슬로건이 ‘총선승리를 위한 변화와 통합’이다. 자신이 변화와 통합의 적임자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볼 때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원내대표 후보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포지션이 넓다. 당 안팎의 평가를 보면, 한분은 너무 친문(文) 색채다. 또 한분은 너무 비문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한분은 너무 강경해 보인다. 또 한분은 너무 온건해 보인다. 반면에 나는 주류 비주류를 포괄한다. 스펙트럼이 넓다. 강온 행보에 있어 유연하다.”
 

지난 4·3 재보선 결과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민심의 경고등이락 읽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인영 의원은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난 4·3 재보선 결과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민심의 경고등이락 읽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인영 의원은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민심의 경고등을 받았다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지난 4·3 재보선 결과, 어떻게 봤나.

“‘우리가 완패했다’ 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겼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비겼다고 하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다. 회복불능의 상태는 아니지만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경고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4·3 재보선은 초미니 총선, 민심의 바로미터, 총선의 전초전이라 불릴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창원성산은 정의당과의 단일화로 후보를 따로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통영고성, 전북 등 기초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 때 통영고성 등에서 민주당이 싹쓸이 했던 것에 비춰 민심의 경고등으로 읽혀졌다.

- 흔히 여야 막론하고 주류에서 오더 식으로 꽂은 후보가 되면 선거에서 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때의 한국당 예를 들면 비박(朴)의 김무성 체제 일 때 승리했다. 그러나 친박(朴)의 이정현 대표 때는 거의 망조가 들어서 탄핵되고 그랬다.

“예컨대 공천에서 누굴 꽂고 찍어낸다, 이런 식의 시비가 걸려서 성공한 케이스는 없다. 2012년엔 우리도 친노 공천이니 이대 공천이니 386공천이니, (김용민 등) 나꼼수 공천이니 말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졌다. 새누리당 시절이었는데 박근혜 당시 대표의 부활을 방치한 거다. 말씀한 대로 2016년 총선에서는 저쪽이 폭망했다. 진박 감별부터 희대의 촌극이었던 김무성 대표의 옥새 들고 나르샤까지…. 공천에서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공정하냐. 균형감을 갖췄냐.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편파성 시비를 공천과정에서 애초에 없애버려야 한다. 그게 총선승리에도 유리한 전략이다.”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략 부재, 공천 잡음과 막말 파동에 휩싸여 패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반대로 20대 때는 새누리당이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참패했다. 친박 진박 감별 및 공천 파동 때문에 보수마저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 공천 뿐 아니라 당내 선거를 보면, 민주당 경우 거의 친문 쪽에서 됐다. 이번 역시 초장 때만해도 친문의 ‘김태년 우세’로 많이들 점쳤었다. 물론 지금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게 감지되고 있지만. 어찌됐든 기존 주류에서 오더 꽂듯 될 경우, 이런 것이 과연 총선 승리와 연결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친문 핵심 그룹도 위기감을 느끼고 변화하고  혁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게로 표심이 향하고 있는 이유다. 더 넓은 통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자. 주류 비주류가 없는, 모두가 새로운 시대의 주류가 될 수 있는 모두가 친문일 수 있는 용광로 같은 새로운 단결, 통합을 만들어내자. 그래야 내부 단결력을 극대화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진영을 짤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현재 많은 인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변화와, 단결력, 통합의 조건이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우리 내부의 차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한 사람들과 지키려고 한 사람들 간의 차이보다 간극 면에서 훨씬 덜하다. 단결력이나 통합력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때문에 더 좋은 리더십을 통해 단결과 통합에서 우위를 점유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 큰 틀에서 이미 공천룰이 만들어져서 원내대표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룰은 늘 사전적으로 결정이 돼있었다. 그보단 리더십의 문제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본다. 운영에 있어서의 공정성, 균형성, 합리성을 잘 갖추는 것, 잘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당대표, 원내대표 투톱의 역할이 크다. 이해찬 대표와의 관계가 궁금하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김태년 의원을 지원한다고도 한다. 원내대표가 되면 불협화음 없이 관계 면에서 괜찮을 수 있겠나.

“인연으로 보면 이 대표와 내가 더 오랜 인연이다. 재야운동시절 학생운동 하면서부터 맺어진 사이다. 그분의 논리 체계, 이론 체계, 현실감각을 높이 사고 존경한다. 서로 생각의 차이로 인해 불협화음이 생길 리 없다고 본다. 그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큰 대의나 명분에 맞춰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충돌할 일은 없다. 누가 되더라도 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서로 소통 잘하고 신뢰하고 협조해야 한다. ‘나랑 친한 사람이 돼야지만 더 잘 운영할 수 있다’이런 생각의 당이라면 일찍이 망할 당이다. 우리당은 그런 당이 아니다.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

- 당정청 간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당의 주도성이 좀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과 늘 결합돼있다. 어떤 걸 아파하는지 어떤 걸 목말라하는지, 체감하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이를 민감하게 반영하려 할 거다. 정부가 정국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당이 좀 더 주도성 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이를 좀 더 힘차게 얘기하면 당이 먼저 나가서 바위 깨고 나무 찍어서 길을 열고 가겠다는 거다. 그 자리에 대통령이 양떼 몰고 상인들과 함께 가도록 하겠다는 거다.

앞으로 당이 훨씬 더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평화문제 남북관계 진전에 역할을 해야 한다. 장관들도 좀 더 창의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예로 원내대표가 되면 그런 걸 최대한 해보려 한다. 모든 국회의원들 한 사람이 한 가지 정도의 주제를 만들어 남북 관계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 당정청 소통도 중요하다.

“당정청 소통이 잘 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뜻과 개헌 정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거의 일치했다고 본다. 청와대 비서실장 등 실무진과의 관계의 문제에서 봐도 소통이 안 될 게 없다. 얼마 전 다른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있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질까 봐 걱정이라고(웃음).”
이 의원은 노영민 비서실장과 꽤 오랜 시간 함께 했다. 민평련 활동도 함께 했고, 정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가까운 편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가 5월 8일 열린다.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진 이인영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한 변화와 통합, 용광로 리더십으로 중원확장의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가 5월 8일 열린다.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진 이인영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한 변화와 통합, 용광로 리더십으로 중원확장의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내대표는 미드필더,
중원으로 최대 확장할 것


- 출마 기자회견에서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원을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메시지인가.

“한국 정치에서 공백이 있다면 중도 정치의 붕괴다.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붕괴하면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대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유한국당이 점점 극우로 가면서 중원이 비어 있게 됐다. 원래 우리의 땅이 아니야.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정세의 긴급성으로 봐도, 우리가 중원으로 확장하는 건 전술적으로도 매우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축구로 치면 레프트윙을 해왔다. 원내대표를 한다는 건 미드필더를 하겠다는 것이다. 굉장히 유연하게 라이트, 레프트에도 공을 공급하고, 센터포워드한테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대한 유연해지고, 확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의원은 자신의 생일날인 4월 21일 원내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특히 총선 승리를 위해 공을 갖고 적진 속으로 뛰어드는 미드필더처럼 강한 의지로 중원을 뚫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 여기서 사실 궁금한 점이 있다. 범여권 단일화,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2012년 총선까지만 해도 후보단일화가 유의미했다. 연합공천, 후보 단일화에 표가 왔다. 그런데 2016년 총선 결과를 보면 또 다르다. 일종의 크로스보팅을 했다. 지역별로는 당선될 사람에게 투표하고, 정당은 선호하는 당을 찍었다. 총선 전략을 세움에 있어 유권자의 의식이나 투표 심리 등 변화의 흐름을 잘 봐야 할 것 같다.”

당시 크로스보팅을 통해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 민주당을 넘어 전국득표율 2위를 기록했다.

- 창원성산 같은 경우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단일화를 해야 이기지 않나.

“창원성산은 좀 다른 경우라고 본다. 그건 보궐선거에 해당하지만, 총선은 또 다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구로에서 이인영을 찍으면, 정당은 국민의당 혹은 정의당을 찍는 경우도 많았다. 총선 땐 이처럼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다. 비례대표들도 있고 하니까. 동일한 조건은 아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그럼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선 정의당과의 단일화는 안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최종적으로 유권자들이 판단해서 정리를 할 거다. 범여권의 단결을 극대화해서 중원으로 흘러넘치자, 이렇게 가자 저렇게 하자 등 도식적으로 일치하진 않을 것 같다. 만약 민주 진보는 단일화 됐는데, 보수는 분열됐다. 그러면 중원에 있는 사람들은 민주 진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근데 이 가능성이 더 클지 아니면 크로스보팅 경향이 더 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단일화 프레임으로 전환할 수 없다.”

-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국 출마설도 나온다. 민주당에 유리하냐 불리하냐 문제도 나올 수 있다. 왜냐면 정권 심판론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 않을까 싶다.

“청와대 인사뿐 아니라 각료들, 장관 출신들도 총선에 나올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친문인사들만 중용하면 정권 심판론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렇게는 안 한다. 단순하게만 가겠나. 내년 총선은 정부가 3년차를 맞는 시점이다. 야권에서 정권심판론으로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유권자들한테 선택의 폭을 더 넓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출마 회견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버지를 한국인으로 둔 프랑스의 새 디지털경제장관 ‘세드리크 오’의 나이는 38살이었다. 그린 뉴딜을 주창한 미연방의 여성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의 나이는 30살이었다. 연령적으로도 미래 세대, 미래 정치 진입을 담보해낼 수 있으면 하고 바란다.”
 

이인영 의원은 청년 정책을 위해 '교직주', 교는 교육, 직은 취업, 주는 주거.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패키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인영 의원은 청년 정책을 위해 '교직주', 교는 교육, 직은 취업, 주는 주거.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패키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경제 정책, 진보 경제 아닌,
중도 입장으로의 변화 이유


- 출마 선언문 보면 경제정책도 중도쪽으로 언급했다. 노동안전유연성, 사회적 대타협 규제 빅딜 등. 그 이유가 경제가 어려워서인 건지, 아니면 생각이 바뀐 건지도 궁금하다.

“우선 경제가 어렵다. 자영업, 중소기업 대책은 즉각적으로 필요하다. 청년 문제도 고질적으로 되고 있다. 탈출구가 필요하다. 안 그러면 일본처럼 장기화 될 수 있다. 한 세대의 단절 이런 게 생길 수 있다. 진보냐 보수냐 이전에 다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이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다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 문제는 보수정권시절에도 끊임없이 나왔던 문제였다. 원인은 친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다르다.”

- 이십대 정부 지지율이 떨어진 원인은 청년 실업률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들려 달라.

“청년들 문제 같은 경우는 파편적으로 할 게 아니다. '교직주', 교는 교육, 직은 취업, 주는 주거.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패키지를 만들어서 유럽에서 하는 유스 개런티(Youth Guarantee) 같은 청년보장제, 이런 것들을 같이 만들면 좋겠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지는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소득이 될 때까지 상환을 유예하게 해야 한다. 소득에 따라 이자율 차등해서 상환하게 해야 한다. 기숙사형 청년주택을 많이 보급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앞에 많이 보급하면 하숙촌이나 자취촌 등에 또 다른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학교와 떨어진 일반 주택들을 리모델링하는 방안이다. 현재 교육부와 국토부가 기숙사형 청년주택 보급을 하고 있다. 이는 대학기숙사보다 저렴하다.”

- 국민연금이 아파트를 사서 청년들에게 빌려주는 건 어떤가. 그럼 거긴 거기대로 이익이 생기는 거고,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그것도 좋다고 본다. 앞서 내가 언급한 건 사학진흥재단을 활용한 방안이다. 둘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 노동의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홍영표 원내대표가 말한 것처럼 노동 유연성을 넓히려면 사회안전망을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유연성과 안전성의 사회적 빅딜,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런 것 없이 유연성만 하자, 그건 저는 받아들이기가 많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설령 해고가 되더라도 실업급여가 확대돼 실업상태에서 재취업할 수 있는 게 신속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한 번 해고당하면 사회적으로 생명이 끝나는 거다. 사회적 타살인 셈이다. 그러면 누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나.”

- 민주평화당의 김경진 의원의 경우는 인구 절벽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국내 학사취득 외국인 ‘간이귀화’ 가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균형감이 필요하다. 좀 더 전략적으로 다각적으로 생각해보자는 편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전략적 검토를 했다. 70년대쯤 경제력은 올라가는데, 노동력이 부족할 당시였다.  여성노동력을 사회화시킬 건가, 아니면 외국노동력을 받아들일 건가. 그 판단에서 일본은 여성노동력 사회화 방향으로 갔다. 우리는 90년대부터 3D업종이 생기면서 외국노동자들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25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 노동력의 10%가량이다. 다양성 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되는 것에 대해 균형감 있게 해야 한다. 남북경협을 통해 돌파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경제협력을 경제적 돌파구,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탈출구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남북간 경제협력이 일어나면 산업의 충돌은 없을 것 같고 시너지가 많다는 생각이다.”

87년 항쟁 직선제 쟁취 後
양김 단일화 주체의 역사


- 주제를 바꿔서 질문하면, 87년 6월 항쟁 때 고려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다. 직선제 개헌운동에 참여했고, 그해 10월 학교에서 김영삼(YS) 김대중(DJ) 양김 단일화 대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그때가 10월 25일이었을 거다.”

- 이후 삼선 의원이 되기까지 드라마틱한 면이 있다. 87년엔 직선제에 이어 지난해에는 헌법개헌특위 간사로서 개헌 정국을 주도했다.

“처음부터 정치를 하겠다,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한 10년쯤 사회 운동과 재야 운동을, 시민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DJ 국민의정부로) 정권교체 되고 나서 개혁세력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시민운동보다는 정치영역이 워낙 커졌다. 정치 안에 있었던 김근태 선배도 들어오라고 했다. 정치개혁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러나 처음엔 낙선하는 등 순탄치만은 않았다. 역정권 교체 시기의 시련도 있었다. 돌아보면 어느 때든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2010년에 복지를 통한 진보의 길, 연합을 통한 승리의 길을 주도했다. 제 포지션에서 할 일은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저만 쭉 앞으로 나가는 정치는 안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혼자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86그룹의 이 의원은 1987년 고려대 20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1기 의장으로 유명하다. 1999년 DJ의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 386출신 중 화려한 경력에 비하면 좀 약하게 성장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도 있다.

“나는 나다운 일을 해왔다. 원칙에 있어선 굉장히 강건했고, 진보주의 노선엔 확고했다. 그러나 일을 풀어내는 것에 있어선 합리적이고 유연하고 단계적 접근을 해왔다. 단적으로 박근혜 정권 말기 당시 노동악법 개정 시도를 막아냈다. 매우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막아냈다. 자칫하면 파견법, 기간제법을 대량 양산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되고, 민주노총 파업이 묻히는 등 매우 어려운 국면이었다.

하지만 이를 돌파했다. 1987년 6월항쟁 직선제를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10년 만에 개헌의 향방을 책임지고, 운영했던 것은 제가 할 일이었다. 2017년 1월부터 시작된 개헌정국에서 비록 관철시키진 못했지만 미래 사회 방향을 여당과 정부가 함께 보여주고 국민들의 지배적 담론을 모아내는 과정에선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개헌특위 간사로서 우리 당 국회의원들, 75만 진성당원, 일반 국민들의 의사를 묻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선전선동의 정치가 아니라 집단의 지혜와 지성을 모아나갔다. 꼭 필요한 영역에 있었다.”

 -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잘 올라타는 정치인들이 있다. 흔히 그런 이들이 잘 뜬다. 근데 이 의원 경우는 스타성이 충분히 있는 정치인인데, 그런 점에서 소극적인 것 같다.

“정직하게 얘기하면 그런 것을 제가 잘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오래 가면서 드러나는 사람이다. 매순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스타일 면에서 원내대표가 된다면 협상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개혁입법 등 패스트 트랙, 추가경정예산 등의 난제가 산적하다. 국회 파행, 정국 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원내대표는 협상력이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할 것이다. 매순간 정성스럽게 협상하고, 때로는 통 크게, 그러면서 손해 보지 않는 협상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다. 그것이 곧 정치의 복원이라고 생각한다. 1년 반 동안 개헌 논쟁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얘기를 해왔다. 경색된 국면을 어떻게 푸느냐의 문젠데. 절충점을 찾는 방법이 중요하다. 우선 탄탄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힘과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어느 시점쯤 되면 ‘그랜드 바게닝 (크게 주고 크게 받는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쟁점 법안, 쟁점 법안 포함해 국민들이 손해 보는 일 없도록 할 거다. 원칙에 강하면 굉장히 유연해질 수 있다. 진짜 강한 사람이 진짜 유연한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본다.”

극우로 가는 보수와의 경쟁
반드시 총선 승리해 이길 것


- 정치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잘하지 못한 부분들은 세 가지쯤 있다. 하나는 후배들을 많이 성장시키지 못했다. 개별의 장점 잠재력에 주목하고, 정치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했는데 잘 못했다. 여러 변명의 여지가 없다. 두 번째는 사회 전체의 문제에서 세대적 고립감, 단절감, 그 칸막이를 뜯어내지 못했다. 20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보수냐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소외의 문제다. 그 부분들에 대해 함께하지 못했다. 이건 이미 나와 내 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4차산업혁명의 시대, 남북통일 평화의 시대를 맞아 미래의 행동 그룹을 설계하는 데 미진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 평화통일에 대한 소신이 있는 정치인으로 알고 있다.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보나.

“6월 혁명, 촛불 시민 혁명을 거쳤다. 앞으로 통일을 이루는 민족 혁명의 과제가 있다. 그러나 과연 통일을 할 수 있을까. 평화를 살려내는 것까진 해왔지만, 통일은 좀 멀어진 것 같다.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우리 세대가 90쯤 왔을 땐 통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결정할 게 아니다. 다음 세대가 결정할 몫으로 남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 끝으로 왜 정치를 했는지, 그리고 현실 정치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사회주의 혁명. 이런 것 때문에 정치하진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치를 한 거였다. 나는 개인이 뭘 한다기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디까지 만들어놓고 갈 거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2년 정도 경기침체가 지나고, 다시 살아나는 사이클이 올 것으로 본다. 그때 남북 경협이 본격화될 수 있다면 우리가 경제적 재도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경협은 추가적으로 성장할 발판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본다. 세계 경제 10강 안에서 7~8위권에 쉽게 안착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와 인권에선 시민역량, 국민역량이 상당한 선진국이다. 정치가 부족한 것이지, 국민은 일류다. 일류국가 될 만 한 점을 촛불에서 보여줬다. 남은 것은 복지와 노동에서 상당한 수준의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다. 10년 내에 독일 정도의 수준까지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이 의원은 마무리 멘트로 “원내대표가 되면 변화와 통합의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아들이 한 얘기도 들려주며 각오를 피력했다.

“우리 아들이 ‘진보는 꼰대이고 보수는 꼴통’이라고 했다. ‘꼴통보다는 꼰대가 낫지 않냐’ 하니까 ‘착각’이라고 하더라. 누가 먼저 혁신하느냐다. 극우로 가고 있는 보수와의 대결에서 반드시 이길 생각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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