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텔링] 오신환, 패스트트랙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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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텔링] 오신환, 패스트트랙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4.28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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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기택의 선택을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1979년 이기택이 선택한 길은 유신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야당이었다. 오신환 의원이 이기택 의원의 고뇌에 찬 결단을 헤아렸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제공=뉴시스
1979년 이기택이 선택한 길은 유신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야당이었다. 오신환 의원이 이기택 의원의 고뇌에 찬 결단을 헤아렸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제공=뉴시스

패스트트랙 파동이 정국을 마비시켰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당 지도부와 달리 사개특위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천명했다가 김관영 원내대표에 의해서 강제로 사임당했다. 이는 정국 마비의 신호탄이 됐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공수처 설치에 이견을 보인 권은희 의원마저 사임시켰다.

만약 오신환 의원이 자신의 복안을 공개하지 않고 사개특위 표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다면 정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이번 <정치텔링>은 오 의원이 반대표 행사를 천명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상 상황을 설정했다.
 
#1 동물 국회의 신호탄이 된 오신환 소신
 
오신환 의원은 지난 24일 자신의 에이스북을 통해 “당의 분열을 막고 저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사개특위 위원으로서 여야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오 의원의 소신 발언이 전해지자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오 의원을 강제로 사임시키고 채이배 의원을 보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른바 팩스 사보임이 전격 단행됐다. 병상에 있던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를 승인했다.
 
오신환 의원은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오 의원의 사개특위 표결 원천배제를 선택했다. 당의 분열을 야기시킬 수 있는 악재임에도 불구하고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를 강행했다.
 
이에 격분한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고자 국회를 점거하고 27일에는 대규모 야외집회를 열며 격렬한 투쟁에 나섰다. 한국당이 이토록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고자 하는 이유는 범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법이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야외투쟁 현장에서 범 여권의 선거법과 관련, “연동형 비례대표제, 심상정 의원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해찬 당대표도 모른다고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나 원내대표는 “저희가 선거법 보니까, 수학 공식이다. 내가 찍은 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아, 몰랑 선거법’ 이거 말이나 되나”라며 “이 선거법 더 웃긴 게 선거법은 우리 국민들끼리 정말 중요한 선거의 ‘룰’이기 때문에 합의에 의해서 해야 한다. 그런데 합의를 안 하고 일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범 여권은 자유한국당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며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했다. 국회는 한순간에 욕설, 몸싸움도 모자라 빠루, 망치 등 공사판에서나 볼 수 있는 도구까지 등장하는 무법천지가 됐다. 민의의 전당은 민의가 실종됐다.
 
#2 오신환, 패스트트랙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면?
 
오신환 의원은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23일 당은 선거제 개편,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자는 여야4당 합의문 추인을 놓고 의원총회에서 격론을 벌였다. 표결까지 가는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당론을 정하지는 못했고, 합의안을 추인하자는 '당의 입장'을 도출했다.
 
12 대 11이라는 표결 결과는 합의안 추인 의견은 온전한 '당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절반의 입장'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기가 나서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에게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뜻을 밝히면 자신을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시킬 것이 뻔했다. 손학규 대표가 4·3 보궐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짓을 못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당의 통합보다는 민주평화당과의 연합을 통해 호남 자민련으로 회귀하려는 의혹도 피할 수 없었다.
 
오 의원은 과거 정치사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 있는지 찾아봤다. 순간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길목이었던 1979년 신민당 전당대회가 떠올랐다.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철승 의원을 물밑 지원했다. 反독재 투쟁의 상징인 김영삼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선 이기택 의원이 필요했다. 캐스팅 보트를 쥔 이기택 의원은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며 유신정권과 김영삼 의원의 애간장을 태웠다.
 
심지어 자신의 비서인 박관용에게도 심중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관용이 누구던가? 후일 국회의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박관용은 속으로 YS를 지지하고 있지만, 이 의원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흥분해 이기택의 허리띠를 잡고 흔들며 ‘밖의 함성을 들어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이기택은 묵묵부답이었다. 이기택은 결선 투표를 앞두고 김영삼과 마지막 회동을 갖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마침내 오후 7시 결선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김영삼 3백78표, 이철승 3백67표” 유신정권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김영삼과 이기택은 反독재 투쟁의 기수가 됐다.
 
다음 날. 박관용은 이기택의 서교동 집으로 사과를 하러 갔다. “의원님, YS를 지지한다고 저에게 사전에라도 말씀해 주셨어야죠.”
 
이기택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답했다. “내가 김영삼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너의 눈빛이 달라질 거다. 그러면 어제 전당대회가 치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권을 가진 이철승 쪽에서 전당대회를 치렀겠느냐.”
 
오신환은 이기택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오신환 의원의 심중을 모르는 당 지도부는 자신만만하게 사개특위 표결에 참여했다. 결과는 오신환 의원의 뜻대로 나왔다.
 
합리적 추론- 오신환 의원이 패스트트랙 지정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상 상황을 연출했다. 정치인이 소신을 지키는 방법은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979년 이기택이 선택한 길은 유신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야당이었다.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人百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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