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人] 선친 잇는 민주당 지킴이 노웅래…원내대표 도전의 끝은?
[정치人] 선친 잇는 민주당 지킴이 노웅래…원내대표 도전의 끝은?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5.02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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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DJ 동교동계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
민주화 발전사, 마포 지역구와 함께한 정신 계승
언론 노조 출신의 노 의원, 원내대표 도전 ‘승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총선승리’에 모든 답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회정치 복원, 일하는 국회, 성과내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총선승리’에 모든 답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회정치 복원, 일하는 국회, 성과내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이달 8일 세 번째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한다. 정치인 노 의원을 조명함에 있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는 그의 아버지 故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이다.

아버지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
야당사 발자취를 함께한 정치인

노 전 부의장은 독재에 저항한 YS(김영삼), DJ(김대중)와 함께 야당사(史)의 발자취를 함께 써내려간 정치인 중 한사람이다. 특히 DJ밑에서 오랫동안 정치 운명을 함께한 동교동계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박정희 군사 독재 체제의 3·4공화국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유진산,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현대 정치사의 거목이 이끌던 신민당은 1980년 전두환 군사 정권인 제5공화국의 헌법 부칙을 계기로 자동 해산되기까지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했다.

이 기간 노 전 부의장은 신민당 소속으로 8·9·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전두환 군사정권의 야당 탄압에 내몰려 당은 와해됐고, 민주화 인사들의 정치활동 역시 금지되면서 더욱 어려움에 봉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YS가 23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나면서 노 전 부의장을 비롯해 흩어져 있던 야당 정치인들은 다시금 의기투합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YS가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을 창당한 것이 민주화 정치운동의 큰 전환점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직선제 쟁취의 발화점이 된 선명 야당의 길을 다시금 획득하는 기폭제가 됐다.

노 전 부의장도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12대 총선에서 당선되는 저력을 보였다. 신민당 부총재도 역임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YS와 DJ의 통일민주당에 몸담았지만 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갈등하면서 DJ와 함께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13대 총선 당선, 1988년 13대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됐다. 뒤이어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등에 몸담으며 동교동계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4대째 이어온 마포구 사랑
아버지에 이어 지역구 당선 

지역구는 아들인 노웅래 의원의 현 지역구이기도 한 서울마포구갑(당시는 용산구마포구)이었다. 노 전 부의장은 이곳에서만 내리 5선을 지냈다. 같은 지역구에서 아버지는 5선, 아들은 3선을 하고 있을 만큼 4대째 마포에서 살고 있는 마포 토박이 가문으로 지역 내 유대감과 애틋함이 남다르다. 노 전 부의장은 이 지역에서 민선 1·2기 마포구청장도 지낸 바 있다.

민주당과 역사를 함께해온 아버지처럼 노 의원의 시작도, 현재도 민주당이다. 사회 정치 경제 분야의 취재 현장을 누빈 언론인으로 20여 년 간 MBC 기자 생활을 했다. 우리에게는 시사고발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 진행자로 잘 알려져 있다. 2001년 MBC 연합노조위원장,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MBC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92%라는 최고의 지지를 받아 선출될 만큼 언론인 사이에서 높은 신뢰를 받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노 의원은 MBC 노조 활동 관련,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보도 사수를 위해 단식도 했었다”며 “단식하던 9일째 강제진압 당하면서도 민주언론에 대한 혼을 불태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MBC 언론노조 출신의 정치인
최순실 국정농단 파헤치며 ‘활약’

정치 입문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인 2003년부터다. “군림하는 정치권력이 아닌, 발로 뛰는 생활정치, 공공의 정치를 열겠다”는 포부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마포갑에 나가 당선됐다. 18대 낙선을 제외하면 19·20대까지 3선 째다. 직접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는 뜻에서 국회의원으로서 보기 드물게 19대 때부터 자신의 명함에 휴대전화번호를 새겨 넣었다. 이를 통해 문턱 없는 정치 풍토 분위기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을 비롯해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민주당 비서실장,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등을 거쳤다. 상임위로는 국회 문화관광위, 보건복지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안전행정위, 예산결산특별위 등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상임위 위원장이다. 이외에도 민추협 자문위원, 민화협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노 의원이 대중의 인식에서 가장 인상을 남겼던 때는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박근혜 정부의 탄핵 국면에서다. 당시 노 의원은 비선실세 의혹의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대 입학 불법 의혹 등을 밝히며 언론인 출신 의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대표 훈련 관리의 부실성 의혹,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김종 전 차관의 불법 의혹,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 문제 등을 지적하며 진실 규명에 주력했다. 20대 때는 국회 후반기 19건의 민생 혁신법안 통과를 비롯해 KT 통신지국 화재 의혹에 대한 돌직구 문제 제기, 사상 처음 실질적 피해보상금 타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세 번째 원내대표 선거 도전의 끝은?
“총선 승리 올인, 의회주의 복원”

노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원내대표 출마선언을 했다. 그는 출사표를 던지면서 “기승전 총선 승리에 있다”며 “외연확대, 잡음 없는 공정한 공천 과정 시스템, 당 대표 중심의 원팀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 총선 승리를 향한 강하고 유능한 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의회정치가 복원돼야 하고, 이를 위해 출마하게 됐다는 포부도 밝혔다. 노 의원은 그 일환으로 △의회정치 복원, 일하는 국회 △의원 중심 및 정책 중심의 당정청 협의 △원내 입법전략추진단, 현안 중심의 운영 △의총안건제 실시를 통한 의원총회 활성화 △민생입법 우선 처리, 선진화법 개선 △의원들의 지역공약 이행지원단 구성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전반적으로 일목요연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원내대표 도전만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선거에서 패한 후 1년 동안 열심히 의원들을 만나며 표를 다져왔다는 후문이다. 주되게는 언론인 출신 의원들과 노조 측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세 번의 경험이 보태어지고는 있지만, 이제껏 원내대표 선거가 주류가 미는 후보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노 의원으로서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친문 핵심의 김태년 의원은 일찌감치 주류로 인식돼 왔고, 신 주류로 떠오르는 이인영 의원과의 삼파전 구도 속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계파로서 스펙트럼이 넓다는 강점을 살려 결선만 가면 이긴다는 전략을 갖고 오는 8일 선거 막판까지 진력하고 있다. 노 의원은 이 같은 의지의 일환으로 출마 자리에서 “오직 우리당의 총선 승리에 올인 한다는 결연한 각오로 원내대표 당락과 상관없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겠다”며 “당의 변화와 혁신으로 총선 승리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삼수 도전 끝의 결과가 주목되는 가운데 노 의원 측은 최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4·3 재보선 이후 주류 불패 분위기도 깨져가고 있다”며 기대감을 전했다. 아울러 노 의원의 리더십 강점에 대해 “노 의원은 경륜과 관록, 연륜 면에서 이해찬 당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원내 전체를 아우를 만큼 소통과 협상력, 화합과 통합 조율의 리더십에 능하다”고 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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