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 재벌家에 부는 변화의 바람…총수들 잇따른 퇴진 발표
[김웅식의 正論직구] 재벌家에 부는 변화의 바람…총수들 잇따른 퇴진 발표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5.0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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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포기는 아냐”…2·3세에게 경영권 승계 가능성 높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국내 유력 그룹 총수들이 퇴진을 발표하면서 혈연적 거대자본 집단인 ‘재벌 문화’도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요 그룹이 자회사 독립경영과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선단식 경영에서 탈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한국형 재벌 문화’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총수가 퇴진한 그룹의 경우 상당수는 일정 기간 과도기를 거쳐 2·3세에게 경영권이 승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의 총수 퇴진 움직임과 관련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것이지 소유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경영자와 오너가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경영인이 섣불리 하지 못하는 투자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기업의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건 오너가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는 주식을 매각해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든 후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 재벌 총수들이 세금을 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터넷커뮤니티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는 주식을 매각해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든 후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 재벌 총수들이 세금을 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터넷커뮤니티 

수많은 계열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상당한 지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재벌 총수들은 적은 지분을 갖고도 순환출자나 지주회사 방식으로 문어발식 경영을 한다. 독특한 경영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재벌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배임, 편법승계, 횡령이 빠지지 않는다. 

재벌 총수들의 퇴진 움직임에 대해 세인들이 갖는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자식의 경영승계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놓았다. 게다가 검찰이 이 회장의 상속세 탈루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은퇴를 밝힌 시기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진 그 즈음이다. 

덴마크의 대표 맥주 브랜드인 칼스버그를 탄생시킨 야콥 크리스찬 야콥센은 아들 칼 야콥센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모든 재산을 칼스버그 재단에 넘겼다. 아버지와 반목하며 자신의 맥주회사를 만든 아들 칼도 죽은 뒤 자신의 재단을 칼스버그 재단과 합치도록 했다. 두 사람은 부와 지식을 덴마크 국민과 나누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과학 분야에, 아들은 예술에 힘을 쏟았다. 칼스버그 재단은 회사를 지배하면서 동시에 과학·예술분야를 후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칼스버그 창업자 야콥과 그의 아들 칼은 재단에 지분을 넘긴 후에는 오너 일가가 재단 활동에 관여를 못하도록 막고, 전문가나 명망가들로 이사진을 구성하도록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도 주식을 매각해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든 후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 재벌 총수들이 세금을 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재벌 회장들은 재산 대물림이라는 ‘검은 기부’를 선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사면 조건으로 거액의 사재(私財) 출연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없는 재단을 만들어서 재산을 출연한다. 잘못을 저지른 후 여론 무마용으로 하는 거액의 기부약속이 공익재단 출연으로 이어지고, 공익재단의 재산은 이후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그래서 자식에게 기업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꼼수 기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인 이형기는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이형기 ‘낙화’ 中) 

꽃은 피고 떨어져야 열매 맺는다. 우리네 삶도 끝맺음이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진정한 ‘부(富)’의 모습을 보여주는 야콥과 빌게이츠 같은 거부(巨富)가 나와야 한다.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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