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 대학가요제 말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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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대학가요제 말아먹었다.(?)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9.18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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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실타래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였다. 1988년이라는 시점은 대학가요제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한국가요 전체를 놓고 봐도 의미 있는 분기점이었다. ‘7080’에서 ‘8090’으로 ‘음악적 세대’가 전환점을 이룬 시기다.

7080과 8090은 한국 가요사를 양분하고 있는 두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흐름 안에는 여러 시도와 분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두 흐름 사이에 공통점이 혼재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7080이 포크와 전통을 두 요소로 하고 있다면 8090은 댄스와 테크노, 힙합 등 서구 팝의 최신 조류를 충실히 받아들이고 있어 두 시기는 분명 다르다.
 
▲     1988년 대학가요제를 전후로 대학가요제의 명암은 극명히 갈렸다.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일 수 있지만 ‘그대에게’는 포크와 전통을 존중하던 한국 가요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꿨고 이 노래를 끝으로 대학가요제의 생명력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신해철이 잘 나가던 대학가요제를 말아먹었다는 생각이다.
 
‘그대에게’를 전후로 7080과 8090으로 나뉘어
 
1977년에 시작된 대학가요제의 역대 대상곡만 살펴봐도 ‘그대에게’ 이후 대학가요제의 명암이 뚜렷이 갈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회 대상 ‘나 어떡해’(샌드 페블스)를 시작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썰물), ‘내가’(김학래, 임철우), ‘꿈의 대화’(이범용 한명훈), ‘바윗돌’(정오차), ‘참새와 허수아비’(조정희), ‘그대 떠난 빈 들에 서서’(에밀레),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이유진), ‘바다에 누워’(높은 음자리),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유열), ‘난 아직도 널’(작품 하나)까지 ‘그대에게’ 이전의 대상곡들은 한결같이 포크의 맥을 잇는 멜로디 중심의 서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상곡 이외에도 ‘돌고 돌아가는 길’(노사연), ‘탈춤’(배철수의 활주로), ‘가시리’(이명우) 등 국악에서 가락을 차용한 곡들도 대거 입상하며 당시 청년 문화의 중심지였던 대학가 주변에서 주목을 받았다.
 
▲ '그대에게'로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무한궤도 리더 신해철은 대학가요제의 마지막 수혜자이자 종말을 고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시사오늘


그러다 신해철이 이끄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이후에 대학가요제는 급작스럽게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1989년 이후 입상곡들을 죄다 살펴봐도 수작이라고 할 작품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단지 2005년 Ex의 ‘잘 부탁드립니다’가 과거의 영예를 재현하는 듯싶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2002년 폐지된 강변가요제에 이어 대학가요제 폐지 소문까지 돌았다.

대회를 주최하고 있는 MBC는 대학가요제가 누려온 ‘상징성’을 감안해 “폐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명칭마저 아는 사람이 드물어진 지금 파장된 시골 장터처럼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대회를 한 번 더 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무한궤도 상업음악 들고 나와 대학가요제 몰락
 
대학가요제의 몰락과 신해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1988년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필자는 같은 반 친구가 “대학가요제 입상곡 중에 ‘그대에게’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말하던 걸 지금도 기억한다. 그 때 가요계는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등 댄스 가수 전성시대였다.
 
‘그대에게’는 댄스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자 악기 위주의 편성이라는 점에서 이전 출전곡들과는 확연히 구분됐고 기성 가요의 유행을 추종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대학가요제가 가요사에서 남긴 족적은 ‘순수성’에서 시작한 음악이 강력한 상업성까지 겸비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순수성의 핵심에는 포크가 자리하고 있다. 포크(Folk)는 사전적으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운율, 후렴구, 멜로디’라고 정의된다.
 
포크가 음악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다. 지금은 전설적 이름으로 기억되는 밥 딜런(Bob Dylan)과 존 바에즈(Joan Baez)가 그 대표적 존재다. 이들은 미국의 상업 음악이 세계 대중문화를 휩쓸던 무렵 자국의 민요에서 차용한 서정적이고 애수가 깃든 멜로디의 노래를 들고 나왔다.

포크는 미국 사회에서 붐을 일으키며 반전과 반핵, 반 환경파괴 운동에 불을 지피며 현실참여적 목소리를 높였고 ‘한국의 밥 딜런과 존 바에즈’라고 불리던 김민기와 양희은의 주도로 촌스런 트로트가 지배하던 한국 가요계에도 포크 선풍이 불기 시작했다.
 
70년대 지식인으로 통했던 대학생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가요가 ‘딴따라’ 이상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했고 젊은 포크 가수들의 현실 참여는 그들을 시대 정신으로까지 인식되도록 했다.

대학가요제는 이와 같은 시간적, 장소적 배경에서 시작됐다. ‘그대에게’ 이전 초창기 10년 간의 수상곡들이 포크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야 말로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 마지막 수혜자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즈음해 인터넷의 등장으로 다양한 놀이공간이 생겼고 가수들의 등용문도 가요제에서 전문 연예기획사로 이동됐다. 또한 가요계 데뷔 나이도 과거에는 대부분 20대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며 중고등학생 때부터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체계적인 조련을 받는 풍토가 생겼다.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상업음악과 별반 차이도 없는 노래를 들고 나온다고 해서 눈여겨 볼 대중이 있을 리 없다. 신해철과 무한궤도는 순수 아마추어 음악과 상업음악의 경계를 허물었고 자신은 마지막 스포트 라이트를 화려하게 받으면서 대학가요제가 쌓아온 10년간의 찬란한 명성에 암운을 짙게 드리운 장본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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