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를 가다①-종로] 정치 1번지…인구구조 변화 탓 ‘진보 강세’
[지역구를 가다①-종로] 정치 1번지…인구구조 변화 탓 ‘진보 강세’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5.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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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 평창동·사직동과 서민촌 창신동·숭인동 대립 구도…창신동·숭인동 인구 많아 진보 강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는 특별한 정취를 내뿜는 곳이다. ⓒ시사오늘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는 특별한 정취를 내뿜는 곳이다. ⓒ시사오늘

서울특별시 종로구는 특별한 정취(情趣)를 내뿜는다. 수백 년 전 기억을 간직한 고궁(古宮)과 현대식 빌딩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넉넉잡아 20분이면 북한산 자락의 조용한 주택가와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형형색색(形形色色)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까지, 종로의 풍경은 그 자체로 좋은 구경거리다.

종로가 이렇게 독특한 분위기를 갖게 된 것은 역사적 이유가 크다. 조선이 건국되고 법궁(法宮)인 경복궁이 들어서면서, 종로는 ‘양반의 마을’이 됐다.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북촌은 고관대작이나 부유한 양반들이 거주하는 곳이었고, 인사동부터 세종로까지를 가리키는 중촌에는 전문 기술직인 중인(中人)들이 주로 살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힘없고 가난한 조선인들은 청계천으로 내몰렸다. ⓒ종로구청
일제강점기 이후, 힘없고 가난한 조선인들은 청계천으로 내몰렸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청계천의 모습. ⓒ종로구청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종로는 급변(急變)의 시기를 맞게 된다. 우선 통인동 일대의 서촌에는 새로운 상권과 시장이 들어섰다. 남촌에는 일본인 거리가 만들어졌다. 북촌과 중촌은 여전히 부유한 양반들의 거주지였지만, 우아한 한옥들은 모두 양옥으로 변신하며 현재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힘없고 가난한 조선인들은 외곽으로 내몰리게 됐는데, 이 지역이 바로 청계천 일대다. 사람이 몰리자 해방 전후로 청계천 일대에는 세운상가 등 상권이 조성됐다. 또 1980년대 이후에는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구(舊) 중촌 지역을 중심으로 고층 빌딩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덕분에, 종로는 고전과 현대, 주거지와 상가,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고급주택과 낡은 서민주택이 공존하는 오묘한 풍경을 갖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 중 하나인 종로는 바로 이 같은 역사적 흐름이 낳은 산물인 셈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뉴시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뉴시스

‘정치 1번지’…1985년 신민당 돌풍 진원지 되기도

조선은 종로에 또 하나의 선물을 남겼다. 경복궁 건설 후, 조선은 지금의 청와대 자리를 후원(後園)으로 사용했다. 후원에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던 내농포, 군사 훈련을 점검하는 경무대(청와대의 옛 명칭이기도 함) 등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관저를 지었다.

이후 해방이 되자 조선총독관저는 미 군정 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 쓰이다가, 미 군정이 끝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새로운 주인이 됐다. 여기에 정부서울청사와 서울시청 등이 있고, 1975년까지는 서울대학교도 품고 있었던 종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뉴시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뉴시스

청와대가 위치한 선거구인 데다, 명문대학들의 존재로 정치의식마저 높았던 종로는 자연스럽게 ‘정치 1번지’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종로가 대통령만 세 명(윤보선·노무현·이명박)을 배출하고, 장면 전 총리, 김두한 전 의원, 정세균 전 국회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앞 다퉈 출사표를 던지는 ‘인기 지역구’가 된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신민당 총재 이민우가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종로에 출마해 당선, 신민당 돌풍을 촉발하면서 종로는 대한민국 민주화에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역대 종로구 국회의원. ⓒ시사오늘
역대 종로구 국회의원. ⓒ시사오늘

종로는 ‘정치 1번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특정 정파의 ‘텃밭’ 역할을 거부해왔다. 제헌국회부터 제8대 총선까지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대한 반감으로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가도, 경제 성장이 가시화됐을 때는 여당에게 표를 던졌고, 유신이 길어지자 ‘선명 야당’ 신민당에게 힘을 실어줘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다.

소선거구제로 복귀한 후에는 제15대 총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선거법 위반 사퇴 후 보궐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제16대 총선에서 정인봉 전 의원, 제17·18대 총선에서 박진 전 의원을 연이어 당선시키며 보수 우위 지역으로 정리되는 듯했지만, 제19·20대 총선에서는 정세균 의원에게 배지를 달아주면서 ‘경합 지역’으로 남는 모양새다.

젊은 층·호남 출신 많아 ‘민주당 우위’ 평가

다만 2019년 현재 종로는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인사동, 이화동, 익선동, 혜화동 등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발생, 인구 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설명이다.

지난달 <시사오늘>과 만난 익선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땅값이 올라가니까 건물 있는 사람들은 다 세를 놓고 빠져나가고, 30~40만 원짜리 싼 집에 세 들어 살던 노인들은 쫓겨나다시피 나갔다”면서 “이 지역 상권 특성 상 새로 점포를 내는 사람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종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구 구조가 급변하는 지역 중 하나다. ⓒ종로구청
종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구 구조가 급변하는 지역 중 하나다. ⓒ종로구청

또한 종로는 북서-동남 구도로 표심이 갈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북쪽과 서쪽에 위치한 평창동, 삼청동, 사직동 등은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보니 보수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혜화동, 창신동, 숭인동 등 동쪽과 남쪽에 위치한 지역들은 대체로 진보 정당이 우위를 보인다.

우선 혜화동은 성균관대의 존재로 인해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통계에 따르면, 혜화동에는 20세부터 29세까지 청년층이 6915명(2018년 기준) 거주하고 있다. 혜화동을 제외하면, 종로구 내에서 20~29세 청년층이 3000명 이상 사는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이곳은 평균 연령도 종로구에서 가장 낮아(41세), 진보정당의 인기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된다.

서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인구밀집지역 창신동. ⓒ시사오늘
서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인구밀집지역 창신동. ⓒ시사오늘

창신동과 숭인동은 서민 동네인 데다 호남 출향민이 많아 민주당이 우위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창신동은 1950~1960년대에 일자리가 마땅치 않던 이북 사람들과 지방, 특히 호남 사람들이 몰려들어 쪽방촌이 형성됐던 곳이다. 당시 청계천 근처에는 봉제공장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일하던 가난한 종업원들이 주거지로 삼았던 곳이 창신동이었다.

3일 <시사오늘>과 만난 창신2동 주민으로부터도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대문역 1번출구로 나와 경사진 골목을 한참 올라간 뒤에야 만날 수 있었던 70대 남성은 “먹고 살 게 없어서 고향에서 올라와서 자리를 잡다 보니까 여기서 살게 됐다”며 “꼭 이 동네로 오려고 했던 건 아니고, 공장이랑 가까우면서 사람 살 만한 데를 찾다 보니까 여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자, 봉제 노동자들은 임대료가 싼 창신동에 소규모 봉제 작업장들을 열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창신동은 지금도 봉제 산업의 메카이자, 호남에서 상경한 서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전태일 역시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사진은 창신2동에 위치한 전태일재단. ⓒ시사오늘
전태일 역시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사진은 창신2동에 위치한 전태일재단. ⓒ시사오늘

이에 대해 4월 말 <시사오늘>과 만난 한 택시기사는 “아무래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직동, 평창동, 삼청동 저 쪽은 보수 쪽이 강하고, 주로 서민들이 살고 전라도 출신들도 많은 창신동, 숭인동 저 쪽은 진보 쪽이 강하다. 또 대학로 쪽도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진보가 많다”면서 “전체적으로는 진보가 유리한 지역구라고 봐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선거만 하면 다 민주당이 이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18대 대선과 제20대 총선에서 사직동과 평창동은 각각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오세훈 후보에게 확실한 우세를 선물했다. 반면 이화동과 혜화동, 창신동, 숭인동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정세균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특히 호남 출향 인구가 밀집돼 있는 지역으로 알려진 창신2동에서는 박근혜·오세훈 후보보다 문재인·정세균 후보의 표가 1000표 이상 많이 나올 만큼 압도적인 진보 강세를 보였다.

혜화동과 창신동, 숭인동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까닭에, 종로는 야당 우세 지역이라는 것이 최근의 평가다. ⓒ시사오늘
혜화동과 창신동, 숭인동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까닭에, 종로는 야당 우세 지역이라는 것이 최근의 평가다. ⓒ시사오늘

문제는 북서 지역과 동남 지역의 인구수 편차가 심하다는 점이다.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큰 표 차로 이겼던 사직동(3448표 vs. 2551표)와 평창동(6958표 vs. 4700표), 종로 1·2·3·4가동(2432표 vs. 1957표)의 2018년 기준 인구수는 3만7385명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가 대승을 거뒀던 이화동(3244표 vs. 2318표)과 혜화동(6728표 vs. 4782표), 창신제1동(2018표 vs. 1619표), 창신제2동(3811표 vs. 2548표), 창신제3동(2838표 vs. 2134표), 숭인제1동(2343표 vs. 1877표), 숭인제2동(2927표 vs. 2362표)의 인구를 합하면 6만9489명에 달한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최근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이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을 꺾은 이후, 종로에서는 대선과 총선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민주당 계열 정당이 승자의 위치를 내준 적이 없다.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던 제18대 대선에서도 종로는 문재인 후보(5만2747표 vs. 4만9422표)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으며, 제6·7회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역 국회의원(정세균)과 구청장(김영종)도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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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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