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척돔에서 꼴찌를 응원하다
[칼럼] 고척돔에서 꼴찌를 응원하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5.05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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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이겨도 술, 지더라도 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던 고3 시절 가을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지만 교실에는 공부가 아닌 다른 이유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경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이어폰을 끼고 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우리에게 중계를 해줬다. 3 대 4로 지고 있던 9회, 장채근이 동점 안타를, 이순철은 역전 안타를 때렸다. 라디오를 듣던 아이는 이성을 잃고 "안타!"를 외쳤고, 조용하던 다른 아이들도 "와~"하며 함성을 질렀다. 

갑자기 시끄러워진 교실로 달려온 선생님은 그 친구 머리를 쥐어박으며 라디오를 빼앗았다.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한 표정을 짓더니 "근디 지금 몇 대 몇인디?"라며 스코어를 물으셨다. 우리는 "5대 4요~"라고 합창하듯 말했다. 선생님은 "조용히 해!" 라며 교실을 떠났고, 우리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타이거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교실에서는 다시 한번 환호가 터졌고, 우리를 가만두지 않겠다던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타이거즈 꼬마팬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다 ⓒ 최기영
타이거즈 꼬마팬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다 ⓒ 최기영

야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봄은 프로야구가 시작하는, 언제나 즐거운 계절이다. 80년대 초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부터 타이거즈를 좋아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하게 고향 연고팀이었던 타이거즈의 팬이 된 것이다. 

지난 주말 고척돔을 갔다. 야구장을 찾는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선수들을 직접 볼 수도 있고, 치킨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누구와도 어울리며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우리 일행도 타이거즈 모자를 하나씩 챙겨 쓰고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홈런과 안타를 외치며 고향팀을 응원했다. 

하지만 타이거즈는 올 시즌 출발이 몹시 어렵다.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난 시점에서 최근 9연패를 당하며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이날 현재 10개 구단 중 꼴찌였다. 꼴찌팀의 원정경기였지만 오히려 응원단 수는 홈팀을 압도했다. 그리고 1승을 바라는 응원석의 응원도 더욱 뜨거웠다. 타이거즈는 막판까지 끌려다니는 경기를 하며 애를 태웠다. 이러다가 진짜 10연패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9회에 극적으로 2점을 따내며 경기를 뒤집었고 이날 드디어 지긋지긋한 9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우리는 마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기라도 한 것처럼 열광했다. 그리고 승리 뒤에 늘 함께 부르는 '비 내리는 호남선'을 고척돔이 떠나가라 외쳤다.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단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어릴 적 응원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흥겨움은 여전하다 ⓒ 최기영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단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어릴 적 응원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흥겨움은 여전하다 ⓒ 최기영

고향을 떠나 우리 집은 광주로 이사를 했고, 나는 80년대에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지금은 타이거즈의 1승이 참 반갑고 간절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들의 승리는 우리가 배고플 때 먹으면 되는 밥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기아 타이거즈'가 되기 전, 타이거즈의 모기업인 해태그룹이 IMF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좌초되기 전 타이거즈는 아홉 번의 우승을 했다. 1982년에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했으니 해태가 마지막 우승을 했던 97년도까지만 해도 타이거즈가 우승했던 해가 그렇지 못했던 때보다 더 많았다.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단칸방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들도 모두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살기 팍팍했던 가난한 시절이었음에도 우리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데리고 광주 무등경기장을 찾아 타이거즈의 경기를 함께 보시곤 했다. 경기장에 가면 부모님은 우리 남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맘껏 사주셨다. 경기가 끝나면 아버지와 그 친구들은 야구장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을 하며 우리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셨다. 야구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아버지 친구로부터 용돈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너무도 신이 났다. 아버지는 "역시 김봉연이여~!"라며 기분 좋게 소주를 들이켰다. 

1983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김봉연은 상처자국을 감추기 위해 콧수염을 기른 채 재기에 성공, MBC 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19타수 9안타 8타점을 기록해 MVP에 올랐다 ⓒ 기아 타이거즈 역사관
1983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김봉연은 상처자국을 감추기 위해 콧수염을 기른 채 재기에 성공, MBC 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19타수 9안타 8타점을 기록해 MVP에 올랐다 ⓒ 기아 타이거즈 역사관

당시 타이거즈의 모기업인 해태는 가난했던 것 같다. 타이거즈 선수들은 연봉이 적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너스라도 받기 위해 우승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만 나가면 소위 돈 많은 구단을 속 시원하게 이겼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자식이지만 공부 잘하는 우등생 같은 존재였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권력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민심이 흉흉했던 그 시절, 타이거즈의 승리는 묘한 쾌감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최고의 강자였지만 약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약자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그렇게 승리를 거뒀다. 

9연패를 끊은 선수들의 모습. 그들은 응원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최기영
9연패를 끊은 선수들의 모습. 그들은 응원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최기영

이날 고척돔에서 경기를 마친 타이거즈 선수들은 관중석을 향해 일렬로 서더니 응원단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마 승리의 기쁨보다는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으리라. 그러나 그들로 인해 예전을 추억하며 경기장을 찾고 야구를 즐길 수 있기에 나는 선수들이 고맙다. 그리고 꼴찌의 반란을 기대하며 올해도 열심히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야구장을 찾는 날은 타이거즈가 이겨도 술, 지더라도 술이다. 경기장에서 못다 한 한잔을 더 하며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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