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행복한 판소리 읽기
[사색의 窓] 행복한 판소리 읽기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5.09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말글의 표현미 잘 드러나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도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요즘 일간지나 잡지에 실리는 칼럼, 기획기사에서 편지, 대화, 시나리오, 일기, 여행기 등 독특한 형태의 글을 보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는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한 글쓴이의 표현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독자의 눈길을 끄는 신선한 데가 있어 좋다. 

가끔은 판소리 창(唱)을 기록한 판소리사설을 탐독한다. 우리 말글을 운용하는 슬기를 엿보려 한 것인데, 표현영역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선인들의 노력과 함께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어 값지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미전달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독자의 반응도 사뭇 달라질 것이다. 그러기에 말글살이에서 의미전달에 효과적인 표현방법이 주목받을 것은 당연하다.

구두(口頭) 전달이 중심이 되는 판소리에서 창자(唱者)가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해 다양한 표현방법을 창조해 낸 것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사실, 글쓰기의 성공은 말글을 운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커뮤니티
구두(口頭) 전달이 중심이 되는 판소리에서 창자(唱者)가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해 다양한 표현방법을 창조해 낸 것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사실, 글쓰기의 성공은 말글을 운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커뮤니티

구두(口頭) 전달이 중심이 되는 판소리에서 창자(唱者)가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해 다양한 표현방법을 창조해 낸 것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사실, 글쓰기의 성공은 말글을 운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흥보가’에는 한자를 활용한 의성어(擬聲語)로 ‘제비 우는 소리’가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처마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가 흥보 내외의 치료를 받고 강남으로 무사히 날아간다. 이듬해 그 제비는 보은 박씨를 물고 흥부네를 다시 찾아온다. 은혜에 보답하는 제비.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내용이 의인화한 제비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포지 내지배요.’(知之知知 主之主之 去之年之 又之拜요. 落之脚之 折之連之 恩之德之 酬之次로 啣之匏之 來之拜요./아는지요, 아는지요? 주인님, 주인님. 지난해 간 뒤로 또 뵈옵습니다. 떨어져서 부러진 다리를 이어 주셨으니 그 은혜와 덕을 갚으려고 박씨를 물고 찾아와 뵈옵습니다.)

제비 우는 소리는 일반적으로 ‘지지배배’라는 단순 의성어로 표현된다. 하지만 흥보가에서는 의성어 ‘지지배배’를 넘어 의미를 더하는 의성적 한자로 표현되고 있어 흥미롭다. 제비 입을 통해 보은의 마음을 전달하면서도 자음 ‘ㅈ’ ‘ㅂ’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제비 우는 소리 ‘지지배배’와 같은 청각적 효과를 충분히 내고 있다. 

판소리사설에는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일반적으로 정체 확인은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를 때 이뤄지는데, 판소리사설에서는 정말 상대방의 정체를 몰라서 정체 확인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황을 심화하거나 주된 인물을 부각하기 위한 창자의 의도에서 정체 확인은 비롯되고 있다. 

“어따 이거 말허는구나여. 네 이놈 네가 대체 무엇인고?” 자래란 놈 겁짐에 바른 대로 갈쳐 주것다. “예 내가 명색이 자래새끼라고 하오.” 호랭이란 놈 반겨 듣고, (…) 어헝 으르르르 허고 달려드니 자래가 깜짝 놀래 “아이고 나 자라새끼 아니요.” “그러면 무엇이냐?” “내가 두꺼비요.” “두꺼비 같으면 더욱 좋다. 너를 산 채 불에 살러 술에 타 먹고 보면 만병회춘 명약이로다. 이리 오너라 먹자.” “아이고 두꺼비도 아니요.” “그래면 네가 무엇이냐?” “나 남생이요.” (…)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먹고 죽는 비상덩어리요.” “비상이라도 생킬란다.”(수궁가 中)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에 나온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나 고초를 겪는 장면에서 정체 확인이 나타나는데, 정체 확인이 반복될수록 별주부의 상황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별주부가 자신의 정체를 ‘자라새끼, 두꺼비, 남생이, 비상덩어리’로 말하며 사지(死地)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만 가중될 뿐이다. 별주부의 지난(至難)한 삶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정체 확인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비롯해 ‘배비장전’ ‘봉산탈춤’ 등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정체 확인은 우리 전통연희(演戱)에서 상당히 보편화된 표현방법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슬픈 상황을 반전시켜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판소리사설이 갖는 한 특징이다. 흥보 가족이 박에서 나온 쌀로 밥을 해 먹는데, 너무 많이 먹어 그만 일이 터진다. 흥보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흥보 아내와 큰아들이 가장을 살리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어디, 아버지 배 좀 봅시다, 예? 아, 아버지 배에 가서 밥이 환하니 비쳤소. 우리, 강아지 한 마리 몰아넣읍시다.” “아이고, 이놈아. 강아지가 들어가서 어쩐다냐?” “아, 밥을 팍팍 파먹을 게 아니요?” “아이고, 이놈아. 밥은 파먹는다고 허고 강아지는 어디로 나오게야?” “그러기에 호랭이를 몰아넣지요.” (…) “아이고, 이놈아. 강아지는 잡아먹는다고 허고 호랭이는 어디로 나올 것이냐?” “그래기에 토간 포수를 또 몰아넣지요.” (…) “아이고, 이놈아. 호랭이는 죽는다 허고 그럼 포수는 어드로 나올 것이냐?” “그래기에 나랏님 거동령을 아부지 볼기짝에다가 때려붙여 보시오. 나달아오나 안 나달아오나.”(흥보가 中)

가장을 살리기 위한 모자(母子)의 노력은 계속되지만 ‘흥보가 죽게 되었다’는 비극적인 상황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들의 방법제시와 어머니의 반대’가 반복될수록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밥을 많이 먹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극적인 상황을 역으로 표현한 창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슬픔이 너무 깊어지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했던가. 비극의 해학화. 웃음이 때론 슬픔을 더 심화한다는 말이 ‘흥보가’의 경우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다들 웃고 있지만 웃음 뒤에 더한 슬픔과 씁쓸함이 밀려들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판소리사설은 의성어와 의태어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여타 언어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말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의 하나를 의성어와 의태어 활용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음산한 분위기와 심술궂음을 이보다 실감 나게 표현한 경우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밤 새 소리는 푸푸, 물 소리는 주루루루루루루루, 도챗비는 휫휫,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지둥 치듯 불고, 궂인 비난 퍼붓난듸, 귀신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히이히이히이히이히 춘향 모친 기가 막혀…’(춘향가 中)

‘어따, 이 제기 붙고 발길할 년. 삐쭉하다 빼쭉허고, 빼쭉하다 삐쭉허고, 힐끗하다 핼끗하고, 핼끗허다 힐끗허고, 삐쭉 빼쭉, 씰룩 볼룩,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시시각각 변덕한다.’(심청가 中)

표현미가 돋뵈는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는 계속돼야 한다. 더불어 의미전달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을 듯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새로움은 옛것에서 싹트는 법이다. 보다 나은 글쓰기를 위해 우리의 전통 문학유산에도 관심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우리 선인들이 보여준 말글 운용의 슬기는 참신한 글쓰기에 좋은 영감(靈感)을 줄 것이다.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