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진중 ‘희망버스’가 외부세력? “바보야 문제는…”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한진중 ‘희망버스’가 외부세력? “바보야 문제는…”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7.21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여당, 희망버스 ‘제3자, 외부세력’으로 폄훼…사유권력과 국가권력의 상호관계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최신형 기자]

한진중공업 사태가 파국 일보직전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게 강제진압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의 저항으로 강제진압이 일단락됐지만, 농성이 진압으로, 진압이 극한 상황으로, 극한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국적 상황과는 달리, 사측과 정부당국은 요지부동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노사간 합의된 문제로,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는 한진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버스’와 관련,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희망버스를 ‘훼방버스’라고 규정했다고 21일자 <경향신문>이 전했다.

정부당국은 입장은 간단하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이미 노사간 합의된 사안으로,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 지도위원을 응원하고,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요구하는 희망버스는 제3자의 개입, 이른바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일부 언론 역시 희망버스와 관련해 피상적인 보도에 그치고 있다. ‘부산 시민들 절망 주는 희망버스, 오지마라(19일자 조선일보)’, ‘희망버스, 여름 한철 장사 망칠 것 영도 주민들 반발(20일자 중앙일보)’ 일부 시민들이 김 지도위원과 노조, 이들을 응원하는 야권인사와 희망버스를 비판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진중공업 사태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사간 합의가 끝난 사안인가. 또 노사분규 때 제3자, 즉 외부세력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가. 이것이 이번 사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진보신당

먼저 노사간 합의 부분에서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 가능성이 존재한다. 금속노조는 산업노조로, 지부나 지회의 교섭체결권을 갖는다. “소속 사업장 단위는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노조위원장 동의 없이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다룰 수 없도록 하고 있다.(금속노조 단체규약 제73조)” 사측이 교섭한 지회에 교섭체결권이 애당초 없었다는 얘기다. 절차상의 하자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두 번째로 제3자의 개입 금지, 이른바 외부세력 개입 논란이다. 이는 외부세력에 대한 정의 규정이 해석싸움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끝없이 평행선만 유지한 채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다만 기준이 같아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국가와 정치권이 불개입하고, 또 어떤 사안에 대해서 개입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대기업 등 재벌의 권력, 즉 사유권력은 국가권력 아래에 온다. 재벌이 아니라, 재벌 할아버지라도 국가 최고 법규범인 헌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근데, 한진중공업 사태는 어떤가. 사측은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 다음 날, 170억 원의 고배당을 지급했다.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로 한진 노동자를 해고한다고 하지 않았나. 또 조남호 회장은 국회 청문회 출석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입법권 위에 재벌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는 헌법 조문이다. 87년 헌법 중 가장 진보적인 조항으로 꼽히는 동시에 헌법개정시 재계 등에서 가장 먼저 폐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헌법 조문이다.

우리의 헌법은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왜 이 같은 규정을 두었을까. 시장의 포악성으로 인해 경제주체 간의 조화가 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국가의 개입이다. 이것은 정치논리도 아니고, 불순한 생각도 아니다. 왜 국가가 존재하며, 어떤 이유로 국민이 합법적인 폭력수단을 국가에 위임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우리 헌법이 노사 간의 문제를 사측과 노조 측의 문제로 한정지었는가. 노사정위원회법에 근거한 대통령자문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제3자 개입을 천명한 이른바 불순세력 집단이라는 얘기인가. 노조의 파업시 사측이 공공연히 동원하는 용역은 제3자인가, 당사자인가. 이 같은 이유로 ‘제3자 개입 금지’라는 논리는 이율배반적이다. 

노동권은 당초 자연법적 사상에 기초한 소극적 권리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적극적 권리로 진화된 시민권 중 하나다. 다만 우리의 경우 국가가 노동자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에 대한 적극적인 보상을 해주는 상호의무 관계는 아니다. 사측과 노조 중 어떤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은지 여부를 떠나 노동3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다.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저마다 복지 어젠다를 들고 나왔다. 슬픈 현실이지만, 노동권의 보호 없는 복지 구호는 그 자체로 허무주의적 담론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마타도어를 일삼으면서 친서민을 얘기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정치적 냉소만 심화시킨다.

모르고 주장하면 무지 때문에 불편하고, 알고도 주장하는 것이라면 위선이기 때문에 불편하다. 자, 노동자의 권리를 향해 누가 침묵하고 누가 외치고 있는가. 과연, 어떤 부류가 헌법적이며 어떤 부류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인가. 스스로 판단해보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