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페리제독의 함포외교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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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페리제독의 함포외교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9.05.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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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침략을 전화위복으로 삼은 일본과 정권유지에만 충실했던 조선의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함포위협을 근대화로 뒤바꾼 일본과 운요호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에만 충실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함포위협을 근대화로 뒤바꾼 일본과 운요호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에만 충실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임진왜란 이후 기유약조로 조선과 국교를 재개했으나 서양에게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그들은 몽골제국의 침략도 물리쳤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서구 제국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이라던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참패를 당했는데도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 정책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1853년 에도만에 나타난 네 척의 흑선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이들은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동인도 함대였다. 페리 제독의 흑선은 일본인들이 접해보지 못한 증기선이었다.
 
미국 함대의 흑선은 에도만 일대를 마음대로 오가면서 엄청난 화력을 뿜어대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충격에 빠졌다. 만약 미국 함대가 자신들을 공격한다면 에도만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위기의식에 빠진 도쿠가와 막부는 미국의 통상요구에 굴복해 미일 화친조약을 체결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굴욕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했지만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초로 산업혁명의 길을 걷게 된다. 아시아의 변방 일본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미국에게 당했던 수치를 절대로 잊지 않고 페리 제독이 자신들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조선을 위협했다. 조선의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이 터졌다. 조선의 민씨 정권은 일본처럼 외세에 굴복해 치욕적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조선 최초의 근대식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다.
 
문제는 민씨 정권은 일본의 위정자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조선의 근대화보다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가 더 중요했다. 임오군란이 터지자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조선의 민중을 학살했다.
 
이를 계기로 위안스카이는 조선의 총독처럼 군림했다. 고종의 친부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는 수모를 당해도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위안스카이를 극진히 모셨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권력욕보다는 약했다.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던 일본과 조선의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됐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최근 북한이 두 차례의 군사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일으켰던 주적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북한이라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함포위협을 근대화로 뒤바꾼 일본과 운요호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에만 충실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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