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희용 “민주당, 70년대생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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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희용 “민주당, 70년대생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할 것”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5.1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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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강희용 동작을지역위원장
“親文 분화는 사실…계파 자체가 사라져”
“동작을? 낙하산 와서는 절대 안 되는 곳”
“한국당, 리더십 없어서 극우로 끌려가”
“신민, 국민, 시민 거쳐 정당원의 시대로”

조용한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물론 요즘 들어 종편 채널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강희용 동작을 지역위원장에게 '조용하다'는 수식어는 실례일지도 모른다. 기자가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는 답변이 준비된 정치인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민주당의 굵직한 변화를 조용히 도왔다. 매 선거마다 시끌벅적한 지역인 동작을을 묵묵히 오랫동안 지켜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조용히 세상을 움직여온 인물 중 하나다. <시사오늘>은 10일 동작구 사당로에 위치한 강 위원장의 사무실을 찾아, 그가 추구하는 정치에 대해 듣고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잠시 들어봤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황교안 대표도, 나경원 원내대표도 구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구심력이 없으니 원심력에 끌려간다. 제1야당이라는 거대정당이 태극기부대쪽으로 휩쓸린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계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걸 아주 어려서 느꼈다. 우리 부모님이 게으르거나, 일을 못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난의 굴레가 있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늘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했다. 나중에야 그게 양극화, 불평등이라고 하는 개념인 것을 알게됐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정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졸업앨범을 보면 장래희망에 '혁명가'라고 써있다. 전두환 정권 때인데, '정치혁명가'라고 쓴다는 걸 담임선생님과 타협을 봤던 것 같다. 하하."

-열린우리당에서 처음 정치를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게 2003년이다. 서른 셋이었니 이제 16년이 됐다. 그 전까지 민주당은, 내겐 여전히 호남에 근거지를 둔 지역주의 정당이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승리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기존 민주당에 여러 가치가 더해지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젊은이들이 그 때 열린우리당 당원이 되고 활동을 했다."

-민주당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인상깊었던 기억은.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로 있을 때 민주당 창당 60년 기념사업회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1955년을 기점으로 창당 60년이 되는 해였다. 생각해보니 정당들 중에 과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정당이 더불어민주당 밖에 없는거다. 내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60년 기념사업회가 시작됐고, 나중엔 당명개정으로 이어졌다. 당명은 손혜원 의원이 바꿨지만, 그 계기가 된건 내 제안이 한몫했다. 지금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회의실 가면 신익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 때 처음 걸린거다."

-더불어민주당이 1995년 민주당을 잇는다고 단정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은가.

"1995년 창당 때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입당하는데, 그 때를 기산점으로 삼았다. 중간에 정당들이 들고나는 여러 과정이 있지만 결국 정체성 승계가 민주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져왔다는 데 많은 역사학자, 정치사학자들이 동의한 부분이다. 통일민주당은 1990년까지는 우리의 한 갈래로 볼 수 있지만, 삼당합당으로 보수정당으로 가버리면서 명맥이 사라졌다. 민생, 민주주의, 남북평화 세 가지 기조를 유지해온 정당은 평화민주당을 거쳐 지금 우리 당에 맞닿아 있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이 된 후엔 추미애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대선이 끝나고 친문이 분화된 건 사실이다. 이 원내대표의 당선은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 계파색이 옅어졌다는 사실이 더 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추 전 대표와는 사실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 8월에 추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당선되고, 그 해 10월에 촛불에 불이 붙었다. 그 과정에서 추 전 대표의 의도와 무관하게 리더십이 좀 위기가 온 적이 있었는데, 당에서 긴급하게 나를 투입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때 정무조정실장으로 합류한 것이 정말 크고 중요한 경험이었다. 추 전 대표와 탄핵, 헌재판결, 조기대선, 지방선거와 전대까지 함께 치러냈다."

-최근 민주당엔 이인영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그 배경으로 주류였던 친문계가 분화(分化)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대선이 끝나고 친문이 분화된 건 사실이다. 지난 2018년 전당대회때, 여러 언론들이 보도한 것처럼 이해찬·김진표·송영길로 4:4:2 정도로 나눠졌던 것 같다. 문재인 이후 리더십을 만드는 과정에선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원내대표의 당선은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 계파색이 옅어졌다는 사실이 더 크다. 이 원내대표의 속성이라고 해야하나. 정파로서의 민평련, 연구모임으로서의 더좋은미래, 고유한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86그룹 이 세 가지가 모두 작동한거다. 과거에 '친문이다, 아니다', '친안이다, 아니다'로 모든 것을 재단할 때는 이런 속성들이 작동하기 아예 어려웠다. 그런 시기를 민주당이 뛰어넘은 거라고 본다."

-이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선제방어 하겠다고 했다. 지지율 추이를 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와 당의 국정운영 기조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아예 바꾸는 것이기 떄문에 1, 2년 만에 성과가 나오긴 힘들다. 포용적 성장·혁신경제·공정경제가 현 정부의 세 가지 경제기조의 축이다. 시행 착오도 좀 있었고 또 금방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라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조금씩이나마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완화시키면서 성장률을 제고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못한다. 그래서 미세한 조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기조가 '유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일부 비판은 감내하고, 성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이다. 일단 인내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면 다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청와대에 비해 당이 '존재감이 없다', '포획돼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청와대가 주로 정책 등을 집행해서 그렇게 보인다. 어젠다는 당이 준비하는 것이 많다. 당청관계는 지금만큼이었으면 좋겠다. 자유한국당 등은 자신들이 집권했던 이명박, 박근혜 때를 생각하면서 당청관계가 수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동등하고, 균형잡힌 위치에서 대화하고 협의한다. 내가 정무조정실장을 하면서 2017년에 우리가 집권하자마자, 당청관계의 시스템을 촘촘하게 설계했다. 의제별로, 역할별로 고위당정·정책당정·실무당정 협의가 나눠져 있다. 지금은 완전히 이 시스템이 정착됐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했던 일에 비춰서 '보고싶은 대로 보고' 얘기하는거다. 청와대가 당을 잡고 있다는 것은, 청와대가 너무 강한 권력기구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만들어낸 학습적 편견에 불과하다."

-한국당은 지지율이 상승세다.

"한국당은 지금 같은 시각으로 가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거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의 리더십은 엄청난 공백이 생겼다. 개혁보수라는 유승민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그룹이 생겼고, 반대쪽 극단에는 태극기부대와 대한애국당이 나타났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친박계, 옛 친이계가 유승민을 버리고 태극기부대 쪽으로 쏠리면서 극우경쟁을 하게 된 모양새다.

이는 리더십 부재다. 황교안 대표도, 나경원 원내대표도 구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구심력이 없으니 원심력에 끌려간다. 제1야당이라는 거대정당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눈으로 세가 보이는 태극기부대쪽으로 휩쓸린다. 황 대표나 나 원내대표의 극우성 망동은 그런 기조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동작을 지역위원장이기도 하다.

"2003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동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이곳이 마치 한국당이 강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내가 오래 이곳에 있어본 결과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제17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11년간 4번의 선거를 다 지긴 했다. 그런데 매번 이유가 있었다. 선거가 임박해서 자꾸 무리한 내부 낙하산이 왔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기동민 의원, 노회찬 전 의원…여기는 그렇게 해서는 승리할 수 없는 곳이다. 동작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여기는 민심의 뿌리부터 다져야지, 외부에서 뚝 떨어져서는 어지간해선 안 된다. 내가 당협위원장을 맡고 나서는 많이 변하긴 했다.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7석중 5석을 얻으면서 사기가 다시 올랐다. 이제 뿌리가 다시 단단히 잡힌 셈이다."

-최근 지역구 활동 중 인상깊은 것이 있었나.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골목민원실이다. 파란색 파라솔을 들고, 동작을에 있는 7개동에 골목까지 찾아가서 펼치고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다. 반응이 상당히 좋다.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분들도 많지만, 한바탕 속에 든 말씀을 해주신 다음에는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제가 쓴소리 들으러 왔습니다, 욕먹으러 왔습니다'하면 이야기한 뒤엔 응원도 해준다. 그리고 뜻밖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꼭 지켜달라'는 분들이 많아 놀랐다. 내게 와서 말할 정도면 애초에 적극적인 지지층이겠지만, 이분들도 '여당이 잘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경우도 있다. 반성하면서 항상 마음을 다진다.

다른 하나는 동작야학이다. 당원들을 초청해서, 정치권의 어려운 이슈들을 쉽게 공부하는 거다. 처음엔 박범계 의원이 와서 패스트트랙, 사법개혁의 필요성 등을 아주 현장감있게 들려줬다. 당원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어야 진실이 전파가 되고, 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아주 호평이라 이어나가려 한다. 우리 사회가 나중에 갈 곳은 시민사회를 넘은 당원사회기 때문이다."

-당원사회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는 황국신민, 신민(臣民)이라고 불리지 않았나. 박정희, 전두환 때는 국민(國民)이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엔 시민이 됐다. 시민의 정점이 노무현, 문재인이었다면 이제 좀더 조직화되고, 정예화되고, 자기가 사는 세상과 사회를 위해 생각하는 정당원으로서의 역할이 큰 사회다. 정당의 역할도 앞으로 커져야 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제 정말 팔을 걷어붙이고 일할 때다. 민주당은 70년대 생들이 이제 주역이 되어 더 젊어질 것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치인으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정말 팔을 걷어붙이고 일할 때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선거날 70년대생 의원들을 일일이 호명했다. 세대교체를 주장해온, 86그룹의 리더가 '당신들의 시대'라며 그 촉진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70년대 생들이 이제 주역이 되어 더 젊어질 것이다. 내게도 그만큼 더 많은 역할이 주어질 거라고 본다. 그 때 최선을 다하는게 당면의 목표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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