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전 상서(前 上書)
이인영 전 상서(前 上書)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5.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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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습효과의 무서움… 이인영 뒤엔 20대 총선, 노무현 뒤엔 DJP연합 있어
이인영 선택, 20대 총선 새누리당으로 남을 것인가, DJP-3당합당으로 남을 것인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인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한 이유는 바로 2016년, 20대 총선에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인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한 이유는 바로 2016년, 20대 총선에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 세상에 외생적 요인의 영향을 단 하나도 받지 않은, 완전히 독립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단정할 것입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님도 이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칼 마르크스도 일찍이 그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의 18일>에서 이런 말을 했었지요.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지는 않으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환경 하에서 만들지도 않는다. 인간은 기왕에 존재하고 있거나,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온 환경 하에서 역사를 만든다.” 

결국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선택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선례(先例)에서 학습합니다. 또 아주 가끔, 선례를 깨는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 선례를 만들고 진화합니다. 그래서 ‘학습효과’가 중요하겠지요. 우리가 무엇을 배웠느냐가 곧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로 이어지니까요. 

이인영 선택 뒤엔 20대 총선의 선례가 있었다

왜 더불어민주당은 이인영 원내대표님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출했을까요.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가늠자가 되는 이 시기에 말이지요. 이 역시 마찬가지로 이인영이라는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역사적 맥락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죄송한 말이지만 이 원내대표님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보다, 선례로부터의 학습효과가 더 앞섰던 것은 아닐까 해서 올리는 말씀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학습한 가장 가까운 선례는 바로 2016년, 20대 총선에 있었습니다.

당시 모두가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당이 크게 두 조각으로 분열됐기 때문이지요. 안철수 전 의원은 친문(親文)측과의 계파 갈등 끝에 호남계를 이끌고 탈당해서 국민의당을 창당했습니다.

진보의 균열을 지켜보던 새누리당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180+α’. 자만에 빠진 주류는 갑자기 칼춤을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최경환 의원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갑자기 ‘진박(眞朴) 감별사’라는 새로운 적성을 찾아내더니 ‘비박(非朴)’인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쳐냈습니다. 

비박계 수장이었던 김무성 대표의 ‘옥쇄 파동’까지, 비박과 진박으로 나뉜 당내 패권 싸움은 국민의 외면을 불러왔고, 결국 새누리당은 참패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낙동강 벨트’는 무너졌고, ‘집토끼’ TK에서도 민주당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당의 분열과 총선 참패로 힘을 잃은 보수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나가던’ 이들의 몰락은 애초에 주류의 칼춤, ‘친박 감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원내대표님의 손을 들어준 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서 뭘 학습했을까요. 

집권 중후반기, 특히 선거전(戰)이라면 주류가 앞에 나서 있는 모양새가 국민의 외면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요? 특히 주류에서 ‘오더 꽂듯’ 공천이 될 경우, 총선 필패(必敗)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비주류’ 이미지로 승부를 보던 이 원내대표님이 시류를 잘 타서 당선된 것은 아닐지요.

당선 이후 “지금 ‘친문 프레임’ 가지고 총선 치르면 민주당 큰코다쳐”, “중요한 건 친문이 정신을 차리는 것”, “그나마 이인영 당선으로 주류 계파가 깨져” 등의 말이 당 내부에서 나오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YS는 1990년 민정당·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해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DJ 역시 이 같은 선례를 통해 DJP 연합을 결성했고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시사오늘 DB
YS는 1990년 민정당·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해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DJ 역시 이 같은 선례를 통해 DJP 연합을 결성했고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시사오늘 DB

15대 대선 뒤엔 3당 합당, 16대 대선 뒤엔 DJP연합 있어

학습효과가 참 무섭지요. 이렇게 정치권의 판도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바꿔버리니 말입니다. 정치권의 학습효과는 비단 현재의 정치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조금 더 과거의 선례를 살펴볼까요.

1997년 15대 대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1997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와 ‘DJP 연합’을 만든 것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3당 합당’ 성공 사례를 학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YS는 지난 1990년 “호랑이를 잡으러 가겠다”며 민정당·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해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죠. DJ 역시 이 같은 선례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대권을 잡으려면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하나 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DJ의 연합은 ‘호남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던 통념을 깨뜨리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요.

YS에게 DJ가 배웠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의 가장 가까운 선례인 DJ를 통해 배웠겠지요. 2002년 제16대 대선, 노 전 대통령은 ‘서민의 후보’를 그의 기치(旗幟)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후보’로 통하던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며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의 승리는 그의 선택이 최종적으로 옳았음을 입증했지요.

‘노무현의 선례’를 또 다시 꼬리물기 하듯 학습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대권을 꿈꾸며 안철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함과 동시에, 선례를 부수면서 진화합니다. 과거의 성공 사례는 또 다시 성공할 수도, 실패해서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둘의 단일화는 박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씁쓸하게 끝났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후보 단일화는 지지층이 겹치며 큰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다른 성향의 후보를 껴안아야 표의 확장성이 올라가면서 승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대 대선엔 단일화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민주당 의원들이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실패에서 배웠듯 말이죠. ‘진보’를 내세운 심상정 후보와 ‘중도진보’를 내세운 안철수 후보. 성향이 비슷한 그들과의 단일화에 진보당 문재인 후보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럴듯한 가설입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에서 새 원내사령탑이 선출됐지만, 여전히 국회는 시끄럽습니다. 제2야당인 바른미래당은 계파 갈등을 겪느라 정신이 없고, 제1야당인 한국당은 ‘5·18 망언 징계 논란’으로 여전히 여당과 기(氣)싸움 중입니다.

이 상황에선 여당 원내대표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 원내대표님은 어떤 선례로 남게 될까요.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20대 총선의 새누리당으로 남을 것인지,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YS와 DJ의 연합으로 남을 것인지. 그 몫은 이젠 왕관을 쓴 자의 것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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