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본무 1주기] LG 구광모, 靑龍의 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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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구본무 1주기] LG 구광모, 靑龍의 잠행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5.20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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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上은 언제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故 화담 구본무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화담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한동안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던 LG그룹은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그 중심에는 그룹 오너일가 4세 경영인 구광모 회장이 있었다. 요즘 시대에는 청년('靑'年)이라 여겨지는 만 41세(1978년생) 젊은 나이에 용(龍)이 된 그는 어떻게 1년 간 거대한 회사를 이끌었을까.

고인의 '실용주의'에 '탈권위' 덧붙여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0일 LG그룹은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故 화담 구본준 회장 1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구광모 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임원직 400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경영철학이었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렀던 것처럼,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멀리하고 소탈하게 살아온 고인을 기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된 것이다. 특히 추모영상에는 구본무 회장이 생전에 추구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이념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이는 현재 구광모 회장이 선보이고 있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구광모 회장은 장자승계원칙이라는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 고인의 양자로 입적된 이후 고인으로부터 겸손과 배려, 실용적 사고에 대한 가르침을 꾸준히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 같은 가르침은 모두 실천으로 이뤄졌다.

LG그룹은 매 분기마다 개최됐던 정례 행사인 임원세미나를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LG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고 월 단위로 전환했다. LG포럼은 300여 명에 달하는 임원들이 참석해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격의없는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그룹 계열사별 사업보고회도 격식을 배제한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로 전개 중이다.

고인의 경영이념 역시 승계·유지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2019년 새해모임에서 "우리 안에 있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의 기본 정신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고객과 함께 70여 년의 역사를 만들어 온 저력과 역량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첫 대외행보로 다시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고객과 사회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기업이 되고 싶은 LG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믿음과, 최고의 R&D 인재육성과 연구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화담이 생전 강조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에 구광모 회장만의 새로운 리더십은 실용주의라는 큰 틀 아래 그룹에 조용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바로 탈권위다. 기존 LG그룹의 기업문화는 재계에서도 특히 보수적으로 유명했다. 신입사원 교육자료에 '막내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심부름, 허드렛일로 성실함을 쌓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이 같은 기업문화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직후 열린 경영진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을 '회장' 대신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홍보팀의 공식 보도자료에서도 '회장'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LG그룹은 지난해 9월 복장 자율화를 전면 실시했으며, 같은 해 연말에는 3M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CEO로 영입해 '최고경영자 순혈주의'를 깨기도 했다.

드러나지 않는 변화…"올해가 시험대"

이 같은 의미 있는 변화에도 일각에서는 구광모 회장의 행보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내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외에서 봤을 때는 잠잠한 파도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침묵의 리더십'이라 불리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침묵을 깨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을 펼치고 글로벌 현장을 직접 찾아 미래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사회적가치 전도사'를 자임하며 새로운 기업문화를 퍼트리는 데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을 목표로 총 133조 원을 투입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양성하겠다는 중장기 방침을 밝혔으며, SK그룹은 지난 16일 베트남 최대 민영기업 빈그룹에 1조1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발전을 모색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LG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LG전자가 지난달 경기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통합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도 일부 사업 철수·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 CNS는 대주주인 ㈜LG 보유 지분 일부 매각설이 돌고 있다.

라이벌 업체와는 달리 파격적인 투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LG전자 등 5개 계열사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해 현지 스타트업에 투자하긴 했지만 그 규모는 법인 출자에 4800억 원, 스타트업 투자에 216억 원 등 약 50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표면적인 이유는 선택과 집중, 실용주의지만 그만큼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가 지지부진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 올해 초 본지와 만난 재계의 한 관계자는 "2019년이 구광모 회장의 본격적인 경영능력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핵심 계열사의 실적부진과 대내외 경기침체에 대한 위기감 심화라는 이중고에서 구 회장이 어떤 승부수를 띄울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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