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기생충>, ‘제2의 김기영’이 만들어낸 현대 가족판 <하녀>
[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기생충>, ‘제2의 김기영’이 만들어낸 현대 가족판 <하녀>
  • 김기범 기자
  • 승인 2019.05.30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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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넘어서는 봉준호의 또 한 번의 진화, 그리고 실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영화 <기생충>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고(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는 한국영화 100년사의 중간 지점에서 명실공히 전무후무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최고 명작이다. 

겉으로는 남자 주인공인 음악선생을 두고 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애정관계를 그린 스릴러지만, 실상은 근대화에 접어든 한국사회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세련된 필치로 묘사한 당대 걸작이었다.

<하녀>는 이촌향도 추세에 따라 시골 출신 여성들이 도시에 파고드는 세태를 보여줌으로써 사회 저변에 깔린 당시 중산층의 ‘아노미(anomie)’와 경계 의식을 반영했다. 

하녀라기보단 주로 ‘식모’라 불리었던 그들은 살기 위해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지켜가며 한 가정에 녹아드려 했지만, 늘 주변 냉소와 괄시 속에 숨을 헐떡여야 했던 주변인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나였으며, 여동생이었던 이들은 그렇게 살아남아야 했고, 때론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상사와 애사(哀史)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지금 다시 봐도 헐벗고 척박했던 60년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김기영이라는 천재 감독의 시대를 앞선 감각적 연출은 경이로울 뿐이다.

<하녀>는 인물 간 복잡한 심리 상태와 갈등 구조를 세트로 지어진 2층 양옥 내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치밀하고도 교묘하게 그려나간다.

복도와 계단, 그리고 높은 천장을 지닌 당시로선 흔치 않은 신축 양옥은 단순히 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나, 그 안에 기생하려는 한 인간이 침투해 안주하고 싶은 천국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일개 ‘하류인간’이 현실을 넘어 꿈꿀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다. 여기에 어우러진 특유의 흑백 화면은 이은심이라는 신인 여배우의 몽환적이고도 그로테스크(grotesque)한 표정과 엮여 오히려 강렬한 미장센을 선사했다.

특히 계단에서 하녀가 남자 주인공의 다리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장면은 더 이상 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마지막 절규이자, 영화의 압권이다.

김기영의 이 엄청난 저작은 이후 숱한 아류를 낳으며 한국영화를 이끌 후속 주역들에게 심오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가히 한국영화는 김기영의 <하녀>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최첨단의 자본주의를 이루며 모두가 그토록 열망하던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 못지않은 의구심과 불확실성이 엄습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중산층이 늘어난 듯하지만, 월등히 신장된 경제지표 안에서 사회 양극화와 함께 계층 간 갈등구조는 심화되고 있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아도 현실적 만족감은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난다.

아울러 언제 밑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중간 계층의 미래 불안감은 성장에 대한 희망을 압도한다.

실제로 자신이 이뤄놓은 기득권으로부터 밀려나는 순간, 사회경제적 하류층으로 떨어져 원상회복이 쉽지 않은 현실은 많은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한다.

과거 경제발전의 맹렬한 기세 속에서 그나마 바라볼 수 있었던 신분 상승의 여지는 이제 경제·사회적 안정화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사그라들고 있다. 

하위계층과 서민으로 규정된 이들이 수직 상승을 넘보기엔 진입 장벽은 점점 높아만 간다. 개인의 노력보단 타고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부와 교육의 대물림으로 부모 신분을 고스란히 이어받기 일쑤다. 이른바 ‘계급의 고착화’다.

우리가 ‘무지개 너머’ 꿈꾸고 바라던, 현재 살고 있는 선진국의 현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제2의 김기영’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은 2019년을 사는 오늘의 우리를 신랄하게 비틀지는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평범한 백수 가족의 생존 투쟁기를 약간의 과장과 씁쓸한 웃음 속에 보여주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 봉준호 특유의 은유나 반전은 불필요하고 생략될 뿐이다.

<기생충>은 장르가 내세워야 할 현실감보다는 봉준호 특유의 유머와 함축적 대사 톤이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드라마보다는 블랙 코미디의 범주 안에 관객을 가두고 시작한다.

시종일관 관객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추리와 서스펜스의 서사는 배제된 대신, 적절한 대사와 인물 간 시선이 <기생충>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내포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통해 보여줬던 희대의 스릴은 절제되지만, 영화 속 한정된 배경의 대비가 탁월한 심리묘사를 보여준다. <괴물>의 오락성은 뛰어넘지 못하나, 여전히 가족 중심주의는 <기생충>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마더>에서의 충격적 반전보다는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이 대미를 장식하고, <설국열차>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공간의 정치학’은 그에 못지않다.

여러모로 최신작 <옥자>의 사회성을 기반으로, 봉준호 최초의 장편 연출작 <플란다스의 개>의 참신한 동화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봉준호는 빛과 그늘, 햇살과 빗물, 언덕과 반지하의 교차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질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너른 정원이 딸린 고급저택과 퀴퀴한 냄새에 찌든 반지하의 대조는 단순히 빈부 간 격차를 은유하기보다, 한 가족의 순간적 신분 상승 욕구의 시발점이 된다.

마치 김기영의 <하녀>에서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듯, <기생충>의 일가족 또한 저택 계단을 오르내리며 남의 것을 탐한다.  

다만 <기생충>의 백수 가족은 본분을 벗어난 현실감각의 결여라기보다는 그저 찌든 일상으로부터의 탈피와 ‘먹고살기’만을 원했을 뿐이다.

<기생충>은 봉준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만 이끄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송강호의 영화 내 입지는 과거 봉준호의 작품들에 비하면 쪼그라들어 보일 만큼 각 배역에 대한 안배가 세심하다.

단, 송강호는 앞서서 자신의 특출한 개인기를 보여주기보다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균형추 역할을 조용히 그러나 진중하게 맡고 있을 뿐이다. 가정에서 묵묵히 가장 역할을 수행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감독인 봉준호 못지않게 송강호 또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보여주는 것 같다.

<기생충>이 봉준호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번 메시지가 그의 전작들처럼 중장년층은 물론, 청소년까지 전 세대에게 전달되는 파괴력 있는 확장성을 띠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봉준호는 계속해서 자신의 예전작을 뛰어넘는 진화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칸이 그의 손을 들어준 이유일 것이다.

오늘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15세 이상 관람가’치고는 반칙인 장면이 나온다.

 

★★★★

담당업무 : 에너지,물류,공기업,문화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파천황 (破天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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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2019-06-13 17:46:35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