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사회①] 권력과 부의 대물림…불가피했던 역사적 흐름
[세습사회①] 권력과 부의 대물림…불가피했던 역사적 흐름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5.31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재계 세습 타파, 우리사회 우선과제인 이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서 중화권에서 유교문화를 경험하며 보수적 가부장제 하에서 사회발전을 이뤘다. 또한 중앙집권국가의 특징인 관료제를 밑바탕으로 한 소수 엘리트집단의 주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렇게 비슷하게 성장을 거듭하던 두 나라의 운명이 엇갈린 건 근대화의 기로에서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 선포로 근대국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은 반면, 우리나라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일본군의 힘을 빌려 진압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혁을 통해 급격한 근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렸다. 이어 그로부터 10년 후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면서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지니게 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광복 5년 만에 펼쳐지면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확실히 뒤쳐졌다.

근대화를 뒤늦게 이루고, 이 과정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꾀했고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 국민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한강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권력·경제구조를 지닌 일본을 성장모델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은 친일세력들이 일제강점기 동안 부정축재한 자산을 활용해 정재계에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 정권이다. 가부장제와 관료제에 위에 세워진 군부정권은 마치 근대 제국주의 일본 당시 군부가 국가운영을 독점했듯, 행정-입법-사법의 경계를 무시한 채 중앙집권적 개발독재에 집중했다. 그것이 바로 산업화였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격차는 10~20년 수준으로 크게 단축된다. '한국의 미래는 일본의 20년 전을 보면 된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발독재 아래 고도성장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성장모델로 삼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적절한 시간과 일정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에 그 부작용의 여파는 상당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정경유착이다. 오늘날 재계의 대표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사실 군부정권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원활하게 펼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1961년 설립한 어용단체였다.

이후 전경련은 수십년 간 정경유착의 소통창구를 맡았으며, 불과 수년 전까지도 권력과 자본이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핵심 역할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그 사례 중 하나다. 당시 전경련은 박근혜-최순실의 수금기관으로 활약해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군부정권이 종식되고 산업화에서 민주화의 길로 걸음을 옮긴 지 오래고, 나아가 적폐청산의 시대가 오고 있는 때에 어떻게 정경유착의 명맥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 있다.

정치인·재벌 기업인 후손들의 권력과 부의 대물림. 사진은 금수저 ⓒ pixabay
정치인·재벌 기업인 후손들의 권력과 부의 대물림. 사진은 금수저 ⓒ pixabay

권력가가 자본가를 지원하고 다시 자본가가 권력가를 후원하는 정경유착의 고착화, 이 부당한 상부상조가 오랜 기간 지속되기 위해서는 엘리트집단이 가진 권력과 부의 절대량이 수세대에 걸쳐 유지돼야 한다. 가장 쉬운 게 정략결혼과 세습이다. 2세를 통해 서로 혼맥을 쌓아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축, 그 세를 업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면을 이끌어 3·4세로의 원활한 세습을 도모해 권력과 부의 끊임없는 재창출을 노린다. 문제는 역량에 대한 공정한 검증도, 결과에 대한 정의로운 평가도 없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후광에 의지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가피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우리나라의 정경유착은 세습이라는 서로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만나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경유착이 생명을 잃지 않으려고 들이쉬고 내쉬는 어두운 숨결은 마치 발암물질처럼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부의 편중 현상을 심화시켜 서민들을 시름에 빠지게 하고, 부정부패에 따른 기회비용은 사회경제발전을 저해한다. 암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물질 자체를 들어내거나, 그 물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장치를 제거해야 한다. 세습 타파가 우리 사회의 우선과제인 이유다. 우리보다 10~20년 앞선 일본은 이미 이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진행 중에 있다.

1980·90년대 리쿠르트사건, 사가와규빈사건 등 총리가 낙마하는 대형 게이트가 연이어 터졌음에도 정경유착을 해소하지 못했던 일본 사회, 하지만 최근에는 정경유착의 호흡기인 세습의 고리를 끊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제48대 일본 중의원 선거 전체 당선자 중 세습 당선자는 전체의 23.4%로, 10년 전인 1996년 제41대 일본 중의원 선거 당시 30.4% 대비 7% 감소했다. 일본 재계는 오너경영인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한 상태다. 혼다, 파나소닉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2017년 기준 연봉 상위 10명 모두가 전문경영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경유착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으나, 최소한 변화의 움직임은 포착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세습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회에 입성하는 2·3세 정치인 수가 늘고 있고, 재벌 2·3·4세들의 경영권 승계는 날로 탄력을 받고 있다. 이대로는 정경유착의 단절이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시사오늘〉은 '세습사회'를 통해 정치권과 재계 내 세습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제안해본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