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김정은 행보에 내년 총선의 결과가 달라진다?
[주간필담] 김정은 행보에 내년 총선의 결과가 달라진다?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6.02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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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평화공세를 두고 한국당에서는 ‘신북풍’
역대 북한의 변수, 선거 및 위기 국면 때 활용
직간접 영향 미치는 북풍, 순풍 vs 역풍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핵 단추가 내 책상에 있다.(김정은)”vs. “더 큰 핵 단추 있다.(트럼프)”

이런 설전이 오간 작년 초이던가, 남북 관계를 다룬 한 세미나를 갔을 때였다. 전직 고위직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 “북미 관계가 일촉즉발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부풀리기다. 북한에 가서는 요만한 것을 크게, 미국에 가서도 북한의 말을 부풀려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의 전략 중 하나로 해석됐다. 즉 ‘풍선 효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했다. 감정이 안 좋을 대로 안 좋아진 양측을 그대로 놔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를 막고 화해 모드로 유도하려면 고조된 긴장감을 녹일 적당한 기름칠이 필요하다. 예컨대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소문자 a정도의 발언을 했다면, 그걸 가지고 미국에 가서는 대문자 A정도의 큰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부풀려 전하는 거다. 또 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북에 가 말할 때도 풍선처럼 크게 확대해 들려주는 전략인 듯 보였다.

얼마 뒤이던가. 우연의 일치인지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년도만 해도 북미 간 신경전 속 전쟁 우려까지 돌았다. 그러나 평창 동계올림픽 전후로 한반도의 봄이 찾아왔다. 남북미 대화의 모멘텀이 가동됐고, 해빙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중재자로서의 문 대통령의 역할에 세계가 주목했다. 2월 평창에서는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 깃발을 흔들었다. 4월 판문점에서는 남북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그리고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초유로 열렸다. 비핵화 노력이 담긴 합의문이 발표되자, 남북미 공동의 2018년 노벨평화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들도 새어나왔다.

지난 한 해는 남북 간 평화모드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한반도의 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사진은 평양에서 열린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서 백두산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뉴시스
지난 한 해는 남북 간 평화모드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한반도의 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사진은 평양에서 열린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서 백두산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뉴시스

다음날은 6·13 지방선거였다. 승리의 월계관은 정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갔다. 영남권 보수 텃밭에도 줄줄이 깃발을 꽂으며 전국적으로 압승을 거뒀다. 자유한국당은 전멸하다시피 했고, 평화쇼라고 비난했던 홍준표 대표는 물러났다. 한국당 내 일각에서는 신북풍에 참패했다고 탄식했다.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또 다른 야권의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안철수(서울시장 후보)가 평화공세에 졌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말처럼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의 바람, 그 영향력은 선거를 통해 문 대통령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자는 민심을 드러냈다.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루킹 간 불법 댓글 사건의 커넥션 의혹 등도 있었지만, 이 조차 선거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비약하자면, 오직 한반도 평화의 분수령만이 선거 정국을 강타할 뿐이었다. 또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오랜 기간 우리 국민심리에 영향을 준 분단 트라우마에 대한 피로감은 컸고, 이제 정말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응축돼 반영된 거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들려왔다. 어쨌거나 야권에서 신북풍이라고 칭한, 한반도 평화의 이름 앞에 모든 정쟁의 타이틀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래 갔을까. 이듬해로 이어지며 상황은 달라졌다. 또 한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며 두 정상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감동을 안겼지만, 손에 잡히는 가시적 성과물들은 적었다. 당장이라도 될 것 같았던 비핵화 프로세스도,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발전 교류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진척되지 못했다. 급기야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에서 진행된 북미 정상회담은 합의문 발표를 앞두고 결렬됐다. 회담이 잘 되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이 실행될지 모른다는 애초의 기대감도 무너졌다.

오히려 4·3 재보선을 앞두고는 ‘동창리 미사일 재개 시사’ 등의 북한의 돌발 변수가 악재로까지 이어졌다. 경제 악화에 겹쳐 민심의 풍향계는 이번엔 야권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평화에 대한 열망이 거꾸로 평화에 대한 피로감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선거 결과에서도 민주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선전한 한국당은 고전을 면치 못할 거라는 경남 창원성산에서마저 간발의 차로 지는 이변을 남겼다. 이후 미사일인지 발사체인지 모를 북한의 도발은 재개됐다. 최근에는 한반도 협상의 실무진인 ‘김영철 김혁철의 숙청설’도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논란이 된 또 하나의 소식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회동이 얼마 전 알려지면서부터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여당의 선거 전략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수장과 국정원장이 만난 것에 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에서는  ‘내년 21대 총선에 대비하려는 관권 선거의 획책용이다’, ‘또 한 번의 신북풍 몰이’라고 대여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반면 민주당은 ‘그 자리에는 기자도 동석했다’며 ‘북풍 공작으로 비화하지 말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평화당의 박지원 의원도 지난달 30일 민주당의 한국당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북풍 전문정당인 한국당이 신북풍이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라며 “북풍을 아무나 하나. 자기들이 해보았으니까 남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생각해 보면 북한에서 비롯된 변수, 일명 북풍은 역대 선거 판세를 변화시키거나 정국의 위기를 역전시키는 등 직간접 영향을 주는 단골요인이었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당시의 평화의 댐 사건, 수지 김 간첩 조작사건, 영화 <공작>의 모티브 중 하나인 총풍 사건 등 모두 북풍의 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 것들이다. 반대로 북풍의 역효과도 적지 않았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 대화록 논란, ‘종북 몰이’ 등이 여론의 반감으로 확산된 경우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조작이든, 기획이든, 자연발생적이든, 우연적이든 차치하고, 이렇듯 북한의 변수는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정부의 바뀜과 상관없이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앞선 일들처럼 이번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정책 등 한반도를 둘러싼 행보 하나하나가 남한 선거 및 정국 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독재 정권 때나, 민주화 정부에서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북풍의 영향력은 여전한 셈이다. 좋든 싫든 한반도 분단과 북한의 침략인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핵 보유 선언 및 좌우 이데올로기의 남남 갈등 과정 안에서 북풍의 지배 전선을 비껴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서 북풍의 영향력은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 때와 같이 순풍일까, 혹은 피로감이 쌓여 역풍으로 다가올까. 또 그것이 여야 어느 쪽의 유리한 국면이 되어줄까. 아니면 선거 전후로 북한의 어떤 변수도 감지되지 못하며 미풍에도 미치지 못하는 잠잠한 채로 지나갈까. 궁금한 가운데 범여권의 한 의원 측은 최근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현재 경기가 안 좋아 바닥 민심이 좋지 않지만,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제 발전의 동력을 기대해볼만한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경만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석좌연구위원(남북사회통합연구원장)도 2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행보가 선거 국면의 충분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북한의 도발 내지 유혹의 변수는 포퓰리즘 화하기 좋은 요소가 된다”며 “일례로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의 급랭으로 치닫다가 선거가 임박할 즈음 급속한 화해무드로 전환한다면 여론의 분위기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득표 유불리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시기 여부가 결정되는 등 국내 변수와 국외적 한반도 변수가 맞물린다면 정부여당에 좀 더 유리한 양상이 될 수 있다”고 가늠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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