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YS냐 박정희냐’ 선택하라고? 노무현-DJ 껴안은 민주당의 자기모순
[취재일기] ‘YS냐 박정희냐’ 선택하라고? 노무현-DJ 껴안은 민주당의 자기모순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6.04 21: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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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지역등권론과 노무현의 반(反)지역주의 정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민주당은 줄곧 DJ와 노무현의 정신을 함께 계승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당대표실에는 DJ와 노무현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심지어 당사에는 두 대통령의 흉상까지 나란히 세워뒀다. 여기에 모순은 없을까. ⓒ뉴시스
민주당은 줄곧 DJ와 노무현의 정신을 함께 계승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당대표실에는 DJ와 노무현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심지어 당사에는 두 대통령의 흉상까지 나란히 세워뒀다. 여기에 모순은 없을까.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가 되면서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았던 일이 있다. 지난달 민주당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의원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의총이 으레 그렇듯 식순 앞쪽에는 국민의례가 포함돼있었다. 

사회를 맡은 이후삼 의원이 입을 열었다. “국민의례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故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묵념.”

바른미래당 및 보수 정당을 출입할 당시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대부분의 보수정당은 ‘순국선열(殉國先烈)에 대한 묵념’으로 그쳤을 뿐, 박정희 전 대통령 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언급한 일은 없었다. 호기심이 생겨 민주당 출입기자에게 물었다. “원래 민주당은 국민의례 때 이렇게 DJ를 직접 언급하나요?” 그의 답변은 이랬다.

“보통 민주당은 DJ와 노무현을 국민의례 앞 뒤 순서로 꼭 같이 언급하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민주당은 줄곧 DJ와 노무현의 정신을 함께 계승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당대표실에는 DJ와 노무현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심지어 당사에는 두 대통령의 흉상까지 나란히 세워뒀다. 지난달 말에는 당직자들과 두 대통령의 생활 터전이었던 목포와 봉하 마을을 찾아 추모하는 행사도 열었다.

그런데, 노무현과 DJ를 같은 선상(線上)에 놓을 수 있을까?

기자는 지난주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취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많은 정치적 동료들을 만났다. 직접 만난 사람도, 여건이 되지 않아 휴대폰이 뜨거워 질 정도로 통화를 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기억으로 90년대 말 정치 상황을 묘사했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할 땐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냈다. 

“노무현은 평생을 지역주의와 싸운 사람이다.”

맞다.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답은 나온다. 그리고 지역주의를 미워했던 그가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크게 부딪혔던 사람은, 지금 그의 옆에 사이좋게 나란히 놓이게 된 DJ다.

1987년 정국은 노태우의 민주정의당-DJ의 평화민주당-YS의 통일민주당-김종필(JP)의 공화당 ‘4자 대결 구도’였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평민당을 제외한 3당이 합당을 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자, 노무현은 이를 “지역주의를 볼모로 하는 정치적 야합”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이기택·김정길·이철·박찬종 등과 8석의 약소한 민주당을 지켰다.  
노무현은 야권통합의 목소리에 따라 DJ의 평민당과 합당 후 ‘대권은 DJ, 당권은 이기택’이라는 공동대표체제의 새로운 민주당(1991년)도 만들었지만, 다시 DJ와 척을 지게 된다. DJ가 95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역등권론’이라는 개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다.”

이 같은 말을 사람들 앞에서 직접 했을 정도로, DJ에 대한 노무현의 분노는 거셌다. 그는 자서전에서도 “호남이 역사적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소외당한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었지만, 부산 시민들은 이것을 지역주의로 이해했다”면서 “나는 지역등권론을 반대했다”고 서술했다.

당시 상황을 겪은 원로 정치인들은 기자와 만나 “통추에는 DJ와 절대로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면서 “노무현과 우리는 당선만을 위한 분열의 정치를 하는 DJ를 당시에 미워했다”고 밝혔다.

결국 노무현은 1995년 DJ가 민주당을 뚝 떼어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 때도 따라가지 않았다. DJ의 정당, 나아가 DJ의 정치는 지역주의를 적극 활용한 ‘국민 분열의 정치’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재 정권을 제외한다면, 노무현이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자주 부딪혔던 사람은 DJ 및 DJ계 정치인이다. DJ와 노무현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뉴시스
독재 정권을 제외한다면, 노무현이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자주 부딪혔던 사람은 DJ 및 DJ계 정치인이다. DJ와 노무현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뉴시스

그의 지역주의 및 DJ에 대한 앙금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정신에서도 이어진다.

노무현을 포함한 민주당 내 호남계 비판 세력들은 한나라당 소속의 김부겸·김영춘·이부영·이우재·안영근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DJ계’로 불리는 동교동계 원로 정치인들을 “낡은 정치”, “호남 정당화(化)” 등으로 전면 비판하며 지역주의 행태를 강력 비난했다. 

DJ 뒤를 이어 진보 정권의 대통령이 됐지만, DJ가 평생을 껴안으려 했던 호남 지역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었던 그다. ‘호남 소외론’으로 진보당의 집토끼 지역에서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다시 지역주의 때문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사람이다.

“YS냐 전두환·박정희냐 선택하라”는 민주당의 자기모순

요컨대 독재 정권을 제외한다면, 노무현이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자주 부딪혔던 사람은 DJ 및 DJ계 정치인인 셈이다. DJ와 노무현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그런데 왜 민주당은 ‘DJ의 후계’로 노무현을 언급하고 있을까. 소위 ‘정치판’에서 잔뼈 굵은 민주당 관계자들이 역사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외면하는 것일까. 다가오는 선거에서 두 정권의 지지자를 모두 잡으려 눈 감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이인영 원내대표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한국당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망언 당사자들 징계를 촉구하면서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군사독재의 후예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요즘 진보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인가 보다. 지난 3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를 향해 “우파 진영은 자유를 우선시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박정희처럼 자유를 탄압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 말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흔히들 보수의 가치는 자유에, 진보의 가치는 평등에 있다고 한다. 지역등권론을 내세워 ‘호남정당화’를 추진하던 DJ는 과연 진보가 사랑한 ‘평등의 정신’에 완벽하게 부합했는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와의 싸움에 평생을 걸었던 노무현을 ‘DJ의 후예’로 놓는 것은 모순 아니겠는가.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과거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두 계층(DJ-노무현 지지자)을 모두 잡는 것도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다. 노무현과 DJ에게 계승할 만한 점이 각각 있는 것인데 뭘….”

부분적 무지일까, 선택적 외면일까.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 점차 심화되는 민주평화당 견제를 보니 ‘합리적 외면’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정권 창출을 위한 합리주의적, 실용주의적 태도는 좋은 작전일 순 있다. 물론 자기를 모순된 논리로 무장한 채 남의 모순만 지적해선 안 되겠지만.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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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데? 2019-06-06 09:36:36
합리적 외면이 와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