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사회④] 분노와 적응, 그리고 순응
[세습사회④] 분노와 적응, 그리고 순응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6.05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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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저항하지 않으면 변화는 요원하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세습사회'는 정치인과 재벌 오너일가들의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 최근 더욱 공고화되고 있음을 담담하게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 기획이다. 비판의식을 최대한 접어두고 힘을 쫙 뺀 채 정재계 세습의 추이와 앞으로의 전망만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이유는, 그것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바라보는 요즘 우리사회 대부분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2010년 전 세계를 분노 신드롬에 빠뜨렸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이 책에는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본의 폭력적 작태에 우리들은 분노해야 하며, 종국적으로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결탁을 거부함으로써 정의와 자유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시민들이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고,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사회도 분노한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경험이 수없이 많다.  4·19혁명, 부마민주화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최고 권력자를 법에 따라 파면당한 사례를 만든 2016년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분노는 이 땅의 권세가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나아가 긍정적인 사회발전을 이끄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격변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지속적으로 심화됐고, 엘리트집단이 만든 정경유착의 고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굳건해졌다. 권력과 부의 대물림은 시민사회의 감시 속에 더욱 교묘해졌다. 소수가 힘을 독점한 부당한 사회구조를 아래로부터 혁파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이를 꾀하지 못한 이유는 분노라는 본성이 거대한 현실의 장벽이라는 한계에 봉착해 자연스레 변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분노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감정 중 하나다. 인간은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법, 도덕, 관습, 예절 등 각종 규범들로 구성된 사회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한다는 것만으로 분노하고, 타인과 갈등을 초래한다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고독감을 느끼고 무력해진다.

특히 그 분노가 권력과 부, 신분 등 사회적 존재가치 문제로 인해 촉발된 것이라면 고독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사회와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존재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면서까지 현실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분노가 적응, 그리고 순응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변태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의 정점인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소유한 엘리트집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습사회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 분노의 변태는 쉽게 목격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몇몇 공기업과 민간기업 노조들의 고용세습 문제가 불거진 게 대표적인 예다. 한 대형교회 목사가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승계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귀라고 비난한 건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변태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진보언론 출신 청와대 대변인의 불명예퇴진, 평소 부의 대물림을 비판했음에도 자신은 미성년자인 딸에게 장모 소유 건물을 상속시켰던 전직 장관 등도 눈에 띈다.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며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이 같은 사례들을 지켜보면서 점차 분노에 무감각해지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고독한 혼잣말을 수없이 되뇌며 그들을 따라 부당한 사회에 순응한다. 부동산 투기꾼을 욕하면서 로또청약을 노리고,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떨어진 콩고물을 찾으며, 갑질 횡포를 부린 재벌 대기업 총수일가를 보고 혀를 차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때린다. 비약이 아니라 현실이다. 무관심과 순응 아래 정재계 정경유착은 그 명맥을 계속 잇고, 그 고리인 권력과 부의 대물림은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 세습사회가 세습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 사회생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민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의에 끊임없이 분노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부당한 체제 순응에 저항해 사회발전을 모색할 의무가 있다. 시민은 사회에 순응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손을 놓고 '어쩔 수 없다'며 주체적 사고 없이 순응한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현재 사회에 만족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품으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한 열정과 희망을 지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대사회에 사는 시민들이 품어야 할 진정한 자유의지다.

스테판 에셀은 이렇게 말했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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