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고려의 무신정변과 김원봉 논란
[역사로 보는 정치] 고려의 무신정변과 김원봉 논란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9.06.09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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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정치 중립성도 중요하지만, 정치권도 군을 정쟁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면 안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 국립현충원에서 6·25전쟁 당시 북한 정권 장관으로 군수를 맡았던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 국립현충원에서 6·25전쟁 당시 북한 정권 장관으로 군수를 맡았던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좌) 고려 망국의 현장 개성 만월대 사진제공=뉴시스

고려는 무신의 나라였다. 태조 왕건도 궁예 휘하에서 후백제와의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전공을 세웠던 명장이다. 후일 쿠데타를 통해 고려를 건국했고, 건국 주체 세력은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 복지겸 등 무장들이다.

건국 초 잠시 혼란기를 거친 후, 나라가 안정되자 신라계 6두품과 호족세력들이 연합한 문벌귀족세력이 지배층이 됐다. 이들의 권력욕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으로 표출됐다. 결국 금 사대를 주장하는 신라계 김부식을 주축으로 개경파 귀족이 권력을 잡았다.
 
개경파 귀족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 무신세력을 멸시할 정도로 천대했다. 고려는 과거제를 최초로 도입한 한반도 왕조다. 하지만 무과는 없었다. 과거를 통하지 않고 장군이 된 무신은 문신들의 멸시에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신의 인내심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사치와 향락이 주업무인 의종은 보현원에서 무신과 문신의 씨름경기를 주관했고, 여기서 무시를 당한 무신들은 칼을 들었다. 이른바 정중부의 난이다.
 
무신은 정권을 잡자 문벌귀족의 씨를 말릴 정도로 대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권력욕에 미친 무신들은 잇따라 쿠데타를 일으켜 정중부에 이어 경대승, 이의민 등 정권교체가 수시로 발생했다.
 
마침내 권력의 정점을 오른 이는 최충헌이다. 최충헌과 최우로 계승되는 최씨 정권은 60여년을 지배했다. 특히 최우는 몽골과의 항쟁을 주도하며 고려의 자주권을 지킨 공로가 있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도 최씨 정권에서 만들어졌다. 팔만대장경은 부처의 힘을 통해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고려인들의 염원이 담겼다.
 
하늘은 날로 타락에 빠진 최씨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 정권도 쿠데타로 무너졌고, 고려는 몽골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고려는 친원파인 권문세족의 천하가 됐고, 결국 망국의 길에 접어든다.
 
대한민국 국군은 김일성 북한 정권의 불법 남침으로 풍전등화에 빠진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다. 물론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국군은 수십만 명이 전사하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구국의 일념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이 땅을 수호했다.
 
또한 국군은 비엣남 전쟁에서 적국의 수장 호치민의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로 무용을 자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순신 장군의 수군을 무조건 피하라고 했듯이,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호치민도 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했다니 비엣남 군대에게 국군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 국립현충원에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정권 장관으로 군수를 맡았던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는 발언을 했다. 정치권은 김원봉 파문에 묻혀 국회 정상화는 물 건너갔다.
 
현충원은 한국전쟁 전사자들이 대다수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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