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아니라면’ 화법이 ‘남긴 것’
[주간필담] ‘아니라면’ 화법이 ‘남긴 것’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6.10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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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면 열풍은 ‘아니면 말고’ 식 무책임한 분열 정치와 닿아 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대한민국 정치권은 바야흐로 ‘아니라면’ 열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는 연설로 시작해서, 자유한국당의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 폭침을 다르게 볼 수 없다”, 그리고 최근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의 “김정은 수석대변인이 아니라면 북한을 비판할 자유를 허하라”까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비기로 ‘아니라면’ 화법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유행은 유행인지, 발언으로 논란이 일면 나오는 해명까지도 한결같다. 

‘독재자’ 보다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자는 것. ‘남로당’ 보다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측 책임을 물어달라는 것. ‘김정은 수석대변인’ 보다는 북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달라는 것. 이들 모두 후자(後者)에 담긴 ‘진짜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아니라면’ 화법으로 무고한 청자들을 역공격하기까지 한다.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김정은이 문재인보다 지도자로서 더 나은 면모도 있다”는 발언으로 비판이 일자 “악의를 가지고 왜곡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청자들을 멋대로 ‘악의를 가진 세력’으로 규정해 비하하고 나섰다. 

진짜 메시지는 뒤에 있으니, 앞의 수사(修辭)어구에 크게 주목하지 말라고 청자에게 강요한다. 왜 진짜 메시지를 보지 않고 고작 수사어구에 집착해 사소한 것들을 정쟁(政爭)화 시키느냐며 따지기까지 한다. 발화자 자신의 책임보다는 청자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명명백백한 책임전가다. 

청자가 수식어구에 담긴 폭력성과 저급함을 지적하니, 가짜에 매몰돼 진실을 읽지 못하는 우매한 사람 취급한다. 독재자가 아닌데 왜 발끈하느냐고 묻는다. ‘빨갱이’가 아니면 강경 대북 노선을 취하라고 부추긴다. 발언의 수위가 지독하다고 해도 독재자나 빨갱이가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전자보다 후자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다른 표현을 사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진짜 메시지’가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분열의 수사법을 사용했다면, 그건 수사(修辭)가 진짜 메시지로 둔갑하는 것을 방조(傍助)하는 것 아니겠는가. ⓒ뉴시스
전자보다 후자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다른 표현을 사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진짜 메시지’가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분열의 수사법을 사용했다면, 그건 수사(修辭)가 진짜 메시지로 둔갑하는 것을 방조(傍助)하는 것 아니겠는가. ⓒ뉴시스

‘아니라면’ 말 속엔 숨겨진 ‘아님말고’식 분열의 정치

결국 이들의 ‘아니라면’ 화법은 ‘아님 말고’식 정치와 닿아 있다. 

한국당이 추천한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호의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전 수원지법 판사 등의 후보를 청와대가 거부하면서 5·18 진상규명 위원회는 위원 선정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누굴 빼고 누굴 더하는 게 여야간의 파워게임이 돼버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착착 진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가 미국·일본·중국 등 국제 정세와 긴밀히 닿아있는 상황에서, 당장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강경 대북 노선을 취하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남북회담 성과마저 무너뜨릴 악수(惡手)다.

모두 국내외 정세 상 당장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소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불가능을 알면서도 이런 자극적인 발화를 한 것일까. 왜 ‘아님 말고’ 식 정치의 정수(精髓)가 담긴 ‘아니라면’ 화법을 사용한 것일까. 

정치는 비즈니스와 달리 ‘적을 만드는 게임’이다. 명백한 적이 있을수록, 분열의 대상이 있을수록 유대는 강력해지고 지지층은 집결한다. 그리고 대중의 적을 절대악으로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주장보다는 상대방의 자아를 공격함으로써 그들의 5·18 특별법, 천안함 진상규명 관련 메시지는 무력해진다. 그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독재자, 남로당, 북한 수석대변인으로만 남는다. 나 아니면 너, 선 아니면 악의 이분법적 세계다. 

그래서 이들이 발화에 담았다는 ‘진짜 메시지’의 진의를 더욱 믿어주기 어렵다. 

독재자보다 ‘5·18 특별법’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다른 표현을 사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진짜 메시지’가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분열의 수사법을 사용했다면, 그건 수사(修辭)가 진짜 메시지로 둔갑하는 것을 방조(傍助)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조건 발화자의 문제가 크다.

정치인은 말을 업으로 삼는 직업이다. 항상 일반인보다 말을 더 경계해야 한다. 선출된 정치인의 말은 국민의 도덕성 및 품위와도 직결된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정제된 언어는, 위선(僞善)이 아니라 정치 사회에서 지켜야할 예의다. 기자는 그것이야말로 선진화된, 문명인다운 정치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정치라도 나쁜 연설로 포장됐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좋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인의 말은 중요하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말들을 우리는 선동이라고 일컬으며 경계해왔다. 이젠 자극적 수사를 활용해 '분열의 미래'를 부추기는 경우도 경계해야 될 때가 온 듯하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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