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과 한국교회> “민중이 말 못하면 하늘이 직접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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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한국교회> “민중이 말 못하면 하늘이 직접 말한다”
  • 심의석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7.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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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프롤로그-3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심의석 자유기고가)

네 번째로 말한 ‘성당 없는 종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이상론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성당 없는 종교’를 말하지만 예수 시대가 아닌 현대에 교회당 없이 목회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성당 없이 성경을 강해했지마는 이는 극히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당 짓기에 목회의 우선순위를 두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언이니 교파싸움이니 성령운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다시 돌아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다.

그런데도 이 당연한 비판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 기이한 일은 직격탄을 맞은 개신교는 뒷전에서 불평을 했는데, 빗맞은 천주교가 정식으로 들고 일어나서 반론을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함석헌이 천주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개신교의 교파싸움을 말하면서 천주교에 대해서 “천주교는 우리는 그런 싸움 아니한다고 자랑할는지 모르나, 그것은 마치 국민의 불편을 식민지전으로 전가시켜 겨우 통일을 유지해가는 제국주의 국가의 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교파는 다 열교(裂敎)라는 것을 밤낮 선전해서만 유지돼가는 통일이다.

▲ 시국강연회에서 함석헌과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이희호 여사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사)함석헌기념사업회
개신파에서 개종해온 것을 선전 광고하는 것은 그것이 교파심 아니고 무엇인가?”가 전부다. 

그런데도 천주교 서울지구 출판부장 윤형중 신부가 월간지 ‘신세계’ 1956년 9월호에 함석헌의 기독교 비판을 반박하고 천주교를 변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함석헌은 응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음해 3월에 함석헌은 ‘사상계’에 ‘할 말이 있다’(3-51)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하고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 대통령과 군인에 대해 한 말은 본인의 양해도 받지 않고 출판사 임의로 깎아서, “모가지를 잘리면 잘리었지 말을 잘리고 싶지 않은” 함석헌을 크게 분노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발표된 글만으로도 당시로서는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정부가 언론 취체를 중단하고 민중이 할 말을 하게 하라고 촉구한다. 
 
“저와 조금 다르면 공산당이라, 비국민이라, 이단이라! 제발 그런 소리를 맙시다! 시대착오다. 역사의 거꾸로 감이다. 하늘 명령 거스름이다. 그것으로 망한 우리나라 아닌가? 제발 이 민중이 할 말을 하게 하라! 마이다스야 벌써 죽은 지 오래지 않나? 나는 죽어도 말은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다!’ 어리석을 진저, 화 있을 진저, 민중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자여! 아이들을 찬송 못하게 하면 길가의 돌이 부르짖을 것이다. 민중이 말 못하면 하늘이 직접 말한다. 하늘은 민중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러나 하늘이 직접 말을 하게 되는 날엔 큰일이다.”
 
그의 예언대로 하늘이 직접 말을 하는 날이 왔다. 큰일이 났다. 바로 3년 후에 4·19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까맣게 모르는 당시의 소위 사회지도층은 본분은 잊어먹고 독재정권과 야합하여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함석헌은 그들을 비판하면서 그 중 한 부류로 부패한 종교도 다음과 같이 질타한다. 
 
“나는 또 무슨 종교의 거룩한 직원도 아니다. 중도 목사도 감독도 신부나 주교도 아니다. 모가지를 열네 번 잘리면 잘렸지 신부 목사는 절대 아니 된다. 되면 무엇보다 백주에 아무 것도 없는 껌껌한 방구석에 불을 켜놓고 거기 절을 해야겠으니 그런 얼빠진 짓이 어디 있으며, 또 나도 꼭 같은 인간이면서 하나님이나 되는 척하고 선남선녀를 보고 절을 해라 할 터이니 그건 못한다.

속엔 양갈보의 치마보다도 더 얼룩덜룩한 세상을 그리면서 겉으로는 아니 그런 척 검은 예복을 입고 서야겠으니, 그나마도 제 손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프랑스 영국 미국서 빌려온 물건,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의 피를 빨고 장사라는 이름으로 도둑질을 하는 손으로 된 것이니 그건 못한다. 철없는 여자 손에서 가락지를 뽑을 뿐 아니라 맘까지 뽑아야지, 있지도 않은 천당 지옥 가보기나 한 듯이 있다 하여서 영혼 건저주마 하는 대신 이 세상에선 개돼지 같은 살림에도 만족(하게)하고, 정신적으로 거세(去勢)를 하여 이리 같은 압박자들이 맘 놓고 해먹도록 해주는 대신 신교의 자유(신앙의 자유는 사실 하나님이 양심 위에 주는 수밖에 없는데) 얻어가지고 실속으로는 제가 세상에서 향락하는 보장을 얻어야겠으니, 나는 천당 지옥은 아니 믿어도 내 양심에 내리는 하나님 명령이 무서워 그런 짓은 못한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이 담 차라리 지옥 가는 것이 낫지, 나는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은 민중을 속이고 업신여기고 팔아먹을 수는 없다.”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천주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슬쩍 스쳐만 가는 비판을 받고도 참지 못했던 윤형중 신부가 작심하고 비판하는 함석헌의 글을 읽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사상계’ 1957년 5월호에 ‘함석헌에게 할 말이 있다’ 하는 글을 냈다. 함석헌도 이번에는 응수한다. 같은 월간지 6월호에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글로 대응한다.

이 정도로 마무리되나 했던 두 사람 간의 논쟁은 월간잡지 ‘신태양’ 1958년 10월호에 서창제 교수의 ‘무교회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실리면서 1년여 만에 재연된다. 본래는 ‘신태양’ 사에서 윤형중 신부에게 원고 청탁을 했는데, 날짜에 맞춰 원고를 찾으러 갔더니 윤 신부가 “이 사람의 글이 좋을 것이오.”라고 하면서 서 교수의 원고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함석헌이 이를 가톨릭의 공식의견으로 받아들이고 동지 12월호에 ‘사자냐 아메바냐’라는 글을 내어 대응하게 된다. 
 
서창제 교수가 함석헌의 스승인 우치무라 간조를 무교회주의자라, 어용 종교사상가라 비난한 데 대하여 함석헌이 변론한 내용은 이미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바 있다. 여기서는 함석헌의 천주교 비판을 간단히 인용하기로 한다. 교황 숭배와 마리아 숭배, 그리고 계급주의를 이렇게 비판한다. 
 
“땅 위에서 파파라는 자는 아버지를 참칭(僭稱)하는 허망한 것이다. 모든 죄악이 그것을 숭배하는 데서 나온다. 성모라 하여서 마리아 숭배를 시작한 것은 완전히 육정적(肉情的)인 생각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어머니가 있어야 아버지 노릇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참 아버지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꼭 같이 대접하는 평등주의의 사상을 방해하기 위하여 계급주의의 교회를 조직해 놓고는 거기 반대하는 것은 공동체의식이 없다고 한다. 공동체는 모든 존재가 꼭 같은 자격을 가지고 하나 되는 하늘나라만이지 인격차별을 하는 단체가 무슨 공동체인가? 그들은 자유신앙을 가지면 일인일교(一人一敎)가 되어서 못쓴다고 한다. … (그러나) 일인일교야말로 이상이다.”
 
“일인일교야말로 이상이다”라는 함석헌의 말은 획일적인 교리와 의식(儀式)과 제도에 순치된 신자들에게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예수를 믿더라도 종파에 따라 이들은 다를 수 있고 실제로 다르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두고 교리와 의식과 제도를 비교해보면 바로 이 사실이 바로 수긍될 것이다. 다시 개신교로 범위를 좁혀 보더라도 교파마다 교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 분파가 100개를 넘는 것은 감투싸움 때문이기도 하지마는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해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각 개인이 믿는 예수도 구체적으로는 당연히 다를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각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달라야 한다. 함석헌이 천주교의 획일주의를 비판하고 일인일교를 주장하는 저변에는 사람에 따라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함석헌은 또 이 글에서 “있지도 않은 천당 지옥 가보기나 한 듯이 있다 하여서 영혼 건저주마 하는 대신 이 세상에선 개돼지 같은 살림에도 만족(하게)하고, 정신적으로 거세(去勢)를 하여 이리 같은 압박자들이 맘 놓고 해먹도록 해준다.”고 신·구교를 싸잡아 비판한다.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사상은 하늘에는 수염이 하얀 하나님의 웅장한 보좌가 있고 땅속에는 뜨거운 불이 이글거리는 고통스러운 지옥이 있다는 성경 기록당시의 세계관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인공위성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하나님의 보좌는 없고, 최첨단 장비를 총동원하여 아무리 땅속을 깊이 파들어 가도 거기에 지옥은 없다.

현세에서 예수와 함께 살면 그때 그곳이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천국이고 내 맘에서 예수가 떠나면 그때 그곳이 근심과 고통이 소용돌이치는 지옥이다. 이런 의미에서만 천당·지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는 함석헌이 ‘思想界’에 처음으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을 쓴 1956년이다. 장준하가 발행하는 ‘사상계’는 그 이름이 암시하는 대로 무거운 잡지였다.

일반 대중잡지처럼 쉽게 읽혀지지 않는 잡지였다. 그런데도 당시 대학생들은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만 행세할 수 있었다. 이 잡지는 그만큼 권위가 있었다. 나는 이 잡지를 매달 사보지는 못했지만 함석헌의 글이 실리는 달 치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모양이었다. 함석헌의 글은 독자를 긁어모았다. 전국의 종이 값을 끌어올렸다.  당연히 위에 인용한 함석헌의 기독교 비판은 시국을 비판하는 그의 다른 글들과 함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4·19혁명은 함석헌과 ‘사상계’가 없었으면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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