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전두환의 후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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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전두환의 후예인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6.16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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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계승한다더니…‘제 집 잔치’ 불참한 황교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여야 4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6·10 항쟁 32주년 기념식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뉴시스
여야 4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6·10 항쟁 32주년 기념식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뉴시스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전두환의 후예인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의 5·18 관련 법안 처리 동참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군부독재가 아닌 문민정부를 계승한다면, 적극적으로 5·18 관련 법안 처리에 협조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6월 10일, 정치권에서는 똑같은 물음이 반복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여야 4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6·10 항쟁 32주년 기념식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만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 시각, 황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억압 실태 토론회’에 참석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보자. 짧디짧은 ‘서울의 봄’이 지나가고, 대한민국에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박정희 정권 때 치열하게 투쟁을 벌였던 민주화 투사(鬪士)들은 또 다시 찾아온 ‘군인의 시대’에 절망했고, 일부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에 못 이겨 말을 바꿔 탔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겨우 목숨만 건져 미국으로 망명했다. 민주화에 대한 의지마저 꺾여버린 시련기였다.

이때 민주화 투쟁의 불씨를 살린 사람이 YS(김영삼 전 대통령)였다. YS는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통해 억압적 조치 완화 약속을 받아내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해 무너진 민주화 운동 세력을 재건했다. 1985년에는 신민당을 창당해 제12대 총선에 참여,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면서 응축됐던 국민의 염원을 폭발시켰다.

1987년 4월 13일에는 전두환 정권이 이른바 ‘4·13 호헌 조치’를 내놓자 이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호헌 조치 철폐와 직전제 개헌 쟁취를 위한 전면 투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이 도화선이 돼 일어난 시위가 6·10 항쟁이다. 6·10 항쟁의 주인공은 국민들이지만, 그 주춧돌을 마련한 것은 YS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전두환의 후예인가’라는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진정으로 YS를 계승하려 했다면, 한국당은 6·10 항쟁 기념식을 ‘잔칫날’로 받아들여야 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6·10 항쟁은 YS가 목숨 바쳐 이끌어온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표는 여야 4당 대표가 모두 참석한 6·10 항쟁 기념식을 외면한 채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공당의 대표로서도 그렇지만, YS 계승을 자처하는 정당 대표로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주인이 ‘제 집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만약 6·10 항쟁을 ‘남의 집 잔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황 대표에게는 또 다시 이런 질문이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전두환의 후예인가.”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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