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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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봉산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6.17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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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첫정이라 못 떼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신선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 최기영
신선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 최기영

등산을 취미로 삼은지 꽤 오래됐다. 서른이 넘자마자 허리 디스크가 도져 고생했다. 당시 의사선생님은 여러 가지 운동을 권유했는데 그중 하나가 등산이었다. 그리고 일단 가까운 곳부터 가보자며 찾아 나섰던 곳이 바로 도봉산이다. 

도봉산을 택했던 이유는 지하철역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경의중앙선, 경춘선, 우이신설노선 등 지하철이 사방으로 생기며 산행지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산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내게 도봉산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어떻게 보면 도봉산이야말로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역세권의 원조인 셈이다. 그 뒤 나는 마음이 심란하거나 일이 있어 멀리 산을 가지 못할 때면 홀로 도봉산을 찾곤 했다. 그렇게 첫 정과도 같이 도봉산과 친해지며 차츰 산을 알아가게 됐다. 

도봉산에 오르는 코스로는 지하철 1호선이나 7호선 도봉산역에 내려 일행을 만나 산행을 하고, 다시 도봉산역 방향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도봉산역에서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인데 도봉서원을 지나 약 1km를 더 오르면 도봉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1km를 더 오르면 정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이암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송추유원지에서 오르는 길은 계곡의 맑은 물과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도봉산역에서 두 정거장을 더 가 의정부 회룡역에서 내려 오르는 길도 산꾼들한테는 인기가 좋다. 사패능선과 도봉산 포대능선을 연계해서 제법 길게 산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봉산 정상부의 암봉들. 왼쪽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순이다. 등산객들은 신선대만을 오를 수 있다. ⓒ 최기영
도봉산 정상부의 암봉들. 왼쪽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순이다. 등산객들은 신선대만을 오를 수 있다. ⓒ 최기영

나는 1호선 망월사역에서 내려 포대능선을 만나 도봉산 신선대로 향하는 코스를 가장 좋아한다. 쉬엄쉬엄 산행을 해도 넉넉하게 네다섯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편안한 계곡길이 있는 데다, 험한 암릉구간도 만날 수 있어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쪽 산길을 도봉산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해서 원도봉산이라도 하는데, 산 중턱에는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생가터를 만날 수 있다. 엄 대장께서는 거기서 낳고 자랐고 험한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이곳 도봉산에서 훈련했다고 하니 그가 왜 도봉산을 어머니같은 산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주말 나도 오랜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이날은 망월사역에서 내려 심원사 방면으로 산길을 잡았다. 이 코스는 초입이 제법 가파르고 험하지만 도봉산 정상부 암봉들의 장관과 포대능선을 조망하며 오를 수 있고, 원도봉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망월사를 바라볼 수 있다. 은석암 주위를 지나면 소나무숲길인 다락능선을 만나는데 다락능선은 이른 봄 진달래 군락의 모습도 아름다운 곳이다. 

다락능선을 지나면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과 다른 암봉들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면 포대능선을 만난다. 포대능선은 예전에 대공포 진지인 포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오르면 저 아래 도시의 모습과 어우러진 도봉산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도봉산 Y계곡의 모습이다. 아찔한 Y계곡을 지나면 신선대에 오를 수 있다. ⓒ 최기영
도봉산 Y계곡의 모습이다. 아찔한 Y계곡을 지나면 신선대에 오를 수 있다. ⓒ 최기영

그리고 바로 Y계곡을 만난다. Y계곡은 도봉산 정상부의 험준한 바윗길인데 바위 사이로 Y자 모양의 아찔한 바윗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다시 능선을 만난다. 산행 초보자들은 Y계곡을 피해 우회 등산로를 택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길이지만 Y계곡을 지나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최고의 절경이다.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740m)이다. 자운봉과 함께 선인봉, 만장봉, 신선대 등 네 개의 암봉이 모여 있는데 신선대만을 오를 수 있다. 나는 신선대를 들렸다가 마당바위 쪽으로 내려와 천축사를 들려 도봉산역 쪽으로 하산을 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하산길은 늘 아쉽다. 그래서 나는 하산길에 있는 천축사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천축사 입구에 있는 청동불상군을 지나면 자운봉과 함께 어우러진 천축사 대웅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일요일 정오부터 1시까지는 점심공양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 이곳에 들른다면 맛있는 사찰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그렇게 천축사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자운봉과 천축사 대웅전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상념에 젖곤 한다. ⓒ 최기영
자운봉과 천축사 대웅전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상념에 젖곤 한다. ⓒ 최기영

시시포스는 제우스로부터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 바위는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시시포스는 그렇게 영원히 그 고된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나도 이날 신선대에 그렇게 무거운 짐을 두고서 내려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그 짐은 어느새 내게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나는 다시 산에 올라야 할 것 같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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