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YS 자택] 중앙정보부 ‘초산 테러’ 있었던 그 곳
[상도동 YS 자택] 중앙정보부 ‘초산 테러’ 있었던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6.20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선 개헌 반대하던 YS, 자택 앞에서 ‘초산 테러’ 당해…YS는 배후로 중앙정보부 지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70회 제2차 국회본회의 속기록에 남아 있는 YS의 발언 내용.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
제70회 제2차 국회본회의 속기록에 남아 있는 YS의 발언 내용.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

박정희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만료가 2년 앞으로 다가온 1969년. 민주공화당(공화당)에서는 개헌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대통령 중임제 하에서 재선까지 마친 박정희가 다시 한 번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여당은 대통령의 3선 연임 허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또 협박했다.

그러나 무수한 설득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인물이 있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였다. 신민당 원내총무이자 대변인이었던 YS는 앞장서서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기를 들고 투쟁을 벌여나갔다. 그러던 중, 가뜩이나 ‘눈엣가시’였던 YS가 박정희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은 제70회 제2차 국회본회의 속기록에 남아 있는 YS의 발언 내용이다.

“본 의원은 3선 개헌 음모는 제2의 쿠데타다, 5·16 쿠데타에 이어 다시 제2의 쿠데타다, 이렇게 단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만에 하나도 이런 일이 없지만은 삼선개헌이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는 이 정권은 망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우리 국민의 원부(怨府)요, 증오의 대상이요, 위로는 장관으로부터 밑의 말단 면서기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 전부가 중앙정보부 때문에 못살겠다는 거예요.”

박정희 정권을 ‘쿠데타 정권’으로 규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를 향해 직격탄(直擊彈)을 날린 YS의 발언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실제로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김형욱은 고흥문 신민당 사무총장을 만나 “김영삼이 배때기에는 칼이 안 들어가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 20일 밤, 이른바 ‘초산 테러’가 발생한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YS를 향해 괴한들이 초산이 든 유리병을 던지는 ‘테러’를 가한 사건이다. 다행히 YS에게는 안에서 차문을 잠그는 습관이 있어 인명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YS는 자서전을 통해 이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지금도 나는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시내 청진동에 있던 음식점 ‘장원’에서 유진오 신민당 총재, 그리고 양일동 의원과 함께 3선 개헌 반대 전략을 숙의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내가 탄 승용차는 90도 각도로 두 번 굽은 모양의 내 집 앞 골목 어귀를 천천히 커브를 틀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대낮에도 한적하고 비좁은 골목에는 외등조차 없어 밤에는 거의 인기척이 드물었는데, 차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 명의 사내가 앉아 있는 것이 전조등에 비쳤다. 그런데 전조등이 비치자 두 사내가 차 앞으로 뛰어나와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보통 신체가 건장한 사람이 우세한 법인데, 이상하게도 키가 작은 사람이 오히려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싸우면서도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벌어진 싸움 때문에 차는 부득이 멈춰 섰고, 나는 기사에게 ‘이상한 싸움도 다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가 앉아 있는 오른쪽 뒷좌석의 문을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몇 차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인들로부터 배운 습관대로 항상 문을 안에서 잠그고 다녔기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잘 열리지 않자 괴한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탁, 탁’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내가 쳐다보니 그는 왼손으로는 차문을 당기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테러’를 직감했다. 내가 ‘수류탄이다. 차를 빨리 몰아’ 하고 소리치는 순간 운전기사도 크락숀을 울리며 급히 앞쪽 내리막으로 차를 몰아 나갔다. 갑작스런 발진에 놀란 두 괴한은 양쪽으로 비켜섰으나, 차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났다. 차 문을 열려고 하던 괴한이 손에 들고 있던 물체를 집어 던진 것이었다.”

YS 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초산 테러 자국. ⓒ김영삼 자서전
YS 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초산 테러 자국. ⓒ김영삼 자서전

괴한이 집어던진 물체는 초산이 든 유리병이었다. 이 초산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차체의 철판이 녹아내리고 콘크리트 바닥에는 구멍이 패여 부글부글 끓을 정도였다. 명백히 YS의 목숨을 노린 테러였다. 그러나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저 박정희 정권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1969년 6월 21일자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20일 하오 10시 5분, 서울 상도동 7의6 앞 골목에서 국회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41)이 서울 자2-2347호 크라운(운전사 김영수·36)을 타고 집으로 가다 괴한 1명으로부터 초산병(길이 13cm)으로 피습을 받았으나 인명피해는 없었고 차의 뒷문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다. 이날 밤 김 의원이 탄 차가 피습지점에 이르렀을 때 후리후리한 키에 흑색작업복을 입은 청년 3명이 길 가운데서 옥신각신하다 차를 세우고 그 중 1명이 차 뒤로 돌아와 김 의원이 타고 있는 차 뒷문을 열려고 했다. 문을 안에서 잠근 김 의원은 이상한 예감으로 차를 급히 몰라고 운전사에 지시, 1m50cm가량 달려갔을 때 이 청년이 주머니에서 꺼내 던진 초산병이 차 오른쪽 뒷문과 뒤창 사이의 철판에 맞으며 병이 박살났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한 일이었음에도, YS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를 몰아붙였다. 아래 내용은 초산 테러 바로 다음 날인 1969년 6월 21일, YS가 국회 본회의에서 한 신상발언의 일부다.

“(전략) 저는 단언합니다. 이것은 지난 13일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특히 개헌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나라는 독재국가요, 특히 독재국가로 끌고 나가고 있는 그 원부(怨府)가 중앙정보부다. 그 책임자인 김형욱이는 제2의 최인규와 같고 민족의 반역자다. 이러한 무리가 이 땅 위에 있는 동안까지는 다시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살 길이 없다’ 하는 얘기를 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한 보복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앙정보부에서 했다. 김영삼이를 죽이기 위해서 중앙정보부에서 음모한 것이다. 총이나 권총을 가지고 쏘는 경우에는 실수하는 예가 있어요. 잘못 쏘아 가지고 다리나 팔에 맞을 수는 있지만, 차 옆에서 한 치 바깥에서 문 열어 가지고 그 병으로 나한테 뒤집어씌웠다고 했을 때에 나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살인 범죄를 꾀했던 것입니다. (중략)

우리 국회의원이 국가로부터, 정부로부터 이처럼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경우, 사랑하는 우리의 농민, 노동자, 학생들은 얼마나 심한 박해를 받겠습니까.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예요? 독재자가 통치하는 독재국가예요. 박정희는 독재자요.

아무리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 칼로 세운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한다고 하는 성경 말씀이 있어요. 힘을 가졌다고 해서 힘을 행사하는 자, 반드시 그 힘에 의해서 망할 것입니다.”

초산 테러 장소에 설치된 동판. 이 동판은 YS 손녀 김인영 작가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초산 테러 장소에 설치된 동판. 이 동판은 YS 손녀 김인영 작가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편, 김영삼민주센터는 6월 20일 초산 테러가 일어났던 상도동 자택 앞에 바닥 동판을 설치했다. 이 동판은 YS 손녀 김인영 작가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작가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손녀 입장에서보다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할아버지(YS)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동판을 디자인했다”며 “민주주의는 할아버지(YS)와 국민들이 함께 이뤄냈다는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