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향수(鄕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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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窓] 향수(鄕愁)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6.21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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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마음속 고향 시골마을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소낙비 그친 후에 햇볕을 타고 오르는 수증기 내음, 저 멀리 산등선에 금방 채색해 내건 쌍무지개, 금빛 물방울 머금은 단호박의 싱그러운 햇빛 바라기. 나날이 붉어지는 자두의 시큼 달달함은 생각만 해도 침 고이게 한다. ⓒ인터넷커뮤니티
마음속 고향 시골마을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소낙비 그친 후에 햇볕을 타고 오르는 수증기 내음, 저 멀리 산등선에 금방 채색해 내건 쌍무지개, 금빛 물방울 머금은 단호박의 싱그러운 햇빛 바라기. 나날이 붉어지는 자두의 시큼 달달함은 생각만 해도 침 고이게 한다. ⓒ인터넷커뮤니티

고향 마을은 생각하면 언제나 포근해진다. 맑디맑은 냇물이 친구를 부르며, 친구들을 탈 없이 키워냈다. 깨끗한 논밭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마음속 고향 시골마을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감꽃을 하나 둘 주워 지푸라기에 꿰어 감꽃 목걸이를 만들었다. 목에 걸면 금목걸이가 부럽지 않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 이른 새벽, 바닥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 홍시는 그렇게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돼 주었다. 맑은 공기와 물, 이슬이 융합된 천상의 맛, 홍시는 바로 신의 작품이었다.  

고향 흙길은 되뇌면 살에 송골송골 두드러기가 일 정도로 감각적이다. 비 내리는 여름날에는 맨발로 흙길을 다녔는데, 물 간지러움이 부드럽게 발등을 감싸고돌았다. 소낙비 그친 후에 햇볕을 타고 오르는 수증기 내음, 저 멀리 산등선에 금방 채색해 내건 쌍무지개, 금빛 물방울 머금은 단호박의 싱그러운 햇빛 바라기. 나날이 붉어지는 자두의 시큼 달달함은 생각만 해도 침 고이게 한다.

어릴 적 이맘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즐거운 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동네 아이들과 소쿠리를 들고 냇물로 가 피라미 잡고 멱 감는 일이었다. 이른바 천렵(川獵) 놀이였다. 맑은 냇물은 물고기들 천국이었다. 어찌나 많던지 냇물을 거슬러 오르는 피라미떼는 끝이 없어 보였다.

개똥을 주우러 다니던 친척 아재의 짚 망태가 눈에 선하다. 당시 집집이 개를 키웠는데, 개똥은 농사용 거름을 만드는 데 좋은 재료가 되었다. 농번기에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일손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모내기를 하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모내기하는 날에는 네 명의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으면 모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농번기에 등교하지 않는 아이가 으레 많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법하다. 

농번기엔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와 학생들이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일명 ‘모내기 원정’은 당시 교장선생님의 아이디어인 것 같았는데, 교실을 벗어나 간식을 먹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고학년 학생들은 모내기를 해본 경험이 많기에 농사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해냈다. 논 주인도 그것을 알기에 학생들이 모내기를 도우러 온다고 하면 반기는 분위기였다. 교장선생님은 일의 대가로 적으나마 금전을 받았는데, 학생들의 방한모자를 사는 데 썼다. 

시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방학 때 시골에 가면 냇물 풍경이 점점 낯설어졌다. 그 많던 동식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수많았던 생명체가 농약의 독성을 견뎌낼 길이 없어 떠나고 말았다.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농작물을 얻기 위해 논밭에서 쫓아낸 친구들은 헤아릴 수 없다. 논우렁이, 다슬기, 거머리, 벼메뚜기, 물자라, 장구애비, 미꾸라지, 참개구리, 청개구리, 유혈목이, 능구렁이…. 논밭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생명체가 있더라도 그 숫자는 엄청 줄었다. 

이젠 농사를 짓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고, 농사로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게 됐다. 온갖 정성을 쏟아 농작물을 기르지만 정작 손에 쥐는 것은 별로 없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외국에서 쌀을 수입해 먹다 보니 농사는 이젠 옛말이 됐다. 학생들이 모내기하며 공부하던 시절은 박물관 속 유물이 돼 버렸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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