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페루에 혼을 묻은 아프리카 흑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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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페루에 혼을 묻은 아프리카 흑인의 노래
  •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2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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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44) Afro-Peruvian Music의 어머니 Susana Baca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 아메리카 대륙으로 잡혀온 흑인들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던 서유럽 국가들이 노동력 충원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로 끌고 온 흑인들은 공식적으로 집계되고 기록된 숫자만 약 4000여만 명에 이른다. 인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잡혀 노예선에 실린 흑인은 대략 1억 명 쯤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렇게 6000여 만 명이라는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잡혀서 배에 실린 노예는, 습하고 뜨거운 노예 이송선 선창에 쇠사슬로 묶여 불결한 상태로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몇 달씩 걸려서 이송되다가 절반 이상이 각종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사망한 노예는 노예의 통계에 잡히지 않고 바다로 버려졌고, 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노예들 중 일부도 기록에서 누락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기록상 아메리카 노예로 기록된 흑인은 절반도 안 됐던 것이다.

최초로 아메리카로 잡혀온 흑인은 1521년으로 기록돼 있고, 페루에는 1529년부터 1537년 사이에 363명이 도착한 공식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대량의 흑인 노예가 페루에 공급돼 공공사업, 교량 건설, 도로 공사에 투입됐다. 한편으로는 백인 군인들의 시종이나 보디가드, 하급 군인으로도 종사하기도 했다. 이후 흑인은 두 종류로 분화됐는데, 하나는 본래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아메리카로 들어온 'Negro Bozales'와 아메리카에서 2세로 태어나 스페인 문화와 언어를 익힌 'Negros Ladinos'로 나뉜다.

전자는 많은 노예들이 초기에 안데스산맥 서부의 고산지대에 분포해 있는 각종 광산에서 가혹한 조건 속에서 광부로 혹사당했다. 후자는 이들을 'Afro-Peruvian'이라 분류하는데, 요리사, 세탁사, 잡부, 정원사, 하급 군인, 교회 노동자로 일했다. 경우에 따라 스페인 남자와 흑인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도 포함돼 있는데 혼혈은 흑인과 원주민, 흑인과 황인종, 백인과 흑인의 분류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도 다르다.

* 아프리카 음악의 페루적 재현

이 아프로-페루비언의 인구가 현재는 대폭 늘어 인구의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메스티조라는 혼혈 인구에 대부분 포함돼 따로 비율을 구분해내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아프로-페루비언의 전통과 문화는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아프로-페루비언 출신의 가수 Susana Baca(Susana Esther Baca de la Colina).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이 아프로-페루비언 출신의 가수 Susana Baca(Susana Esther Baca de la Colina).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이 아프로-페루비언 출신의 가수 Susana Baca(Susana Esther Baca de la Colina)는 2011년 페루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Baca는 1944년생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 인근의 어촌 Chorrillos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교사, 민속학자, 민족음악연구가로서 두 차례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가 주로 추구하는 음악은 아프로-페루비언 뮤직이라고 하겠다. 때문에 그녀와 함께하는 밴드도 페루 전통 악기를 주로 사용한다.

cajon.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cajon.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이를 테면 cajon(과일 상자같은 박스), udu(점토 주전자), quijada(동물의 턱뼈), gourd(박) 등과 같은 것이다.

quijada, udu, gourd.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quijada, udu, gourd. ⓒ김선호 세계 음악 칼럼니스트

그녀의 대표곡은 1995년에 발표했던 'Maria Lando'이다. 이곡은 'The Soul of Black Peru'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돼 있는데, 노래를 들으면 직감적으로 아프로-페루비언의 잠재된 역사적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으로는 'Se Me Van los Pies'(My Feet Go)가 있다.

이곡을 들어보면 아프리카 음악을 페루의 메스티조가 스페인어로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왜냐면 이 곡은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포닉 스타일, 선창(先唱)에 뒤따르는 여러 명의 후창(後唱), 그리고 대단히 단순한 음률의 반복과 흥겨운 춤이 그것이다.

Baca는 현재 바닷가 인근에 있는 그녀의 고향 Chorrillos에 '흑인종 연구소' 쯤으로 해석되는 'Instituto Negrocontinuo'를 설립하고 지속적으로 아프로-페루비언의 문화와 춤과 노래를 수집, 연구하는 뜻깊은 일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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