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시진핑 방북과 曲突徙薪(곡돌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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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시진핑 방북과 曲突徙薪(곡돌사신)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6.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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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 불가능 변수...근본 준수를
중국, 사실상 핵 협상 새 중재자 부상
미·중 패권전쟁 지렛대 악용 가능성
中 '단계적 해결' 선호, 복잡해진 解法
김정은, '핵 리스트 제출 검증' 결단해야
교착상태 깨는 비핵화 순풍 염원
6월 말 G20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전기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북핵 협상 해법(解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멈춰섰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비핵화 협상이 교착을 지속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방문,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북·중 관계의 근간이 흔들린 이후 처음 이뤄진 중국 정상의 방문이다.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이뤄진 것으로 시 주석이 주석직에 오른 이후 처음이며,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2005년 10월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 이어 14년 만의 방북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4차례 방중하면서 시작된 북·중관계 복원 작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는 셈이다.

시 주석의 방북과 북·중 정상회담에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북·중 결속을 과시해 북핵 일괄 타결 협상방식을 요구하는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시 주석의 방북이 북·미 협상 재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에도 복잡함이 감지된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시 주석을 압박해 미국에 유리한 무역합의를 이끌려는 구상에 ‘방북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을 가진 뒤 오사카로 건너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미·중, 한·중 정상회담을 비롯해 29일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공유될 것이다. 

사실상 시 주석이 북핵 협상의 중재자로 떠오른 셈이다. 따라서 이번 G20 회의는 북핵 문제까지 포함한 미중 담판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가 급류를 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주석의 북한 방문 결과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측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미·중 무역전쟁 갈등이 날로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이뤄져 실로 관심이 크다.

우려도 적지 않다. 북핵 문제는 비핵화 방식에서 미국의 ‘일괄타결’과 북한의 ‘단계적 해결’의 셈법이 계속 맞서며 허송세월하고 있다. 중국의 관심도 북핵의 일괄 폐기가 아닌 ‘단계적 해결’ 경향으로 북한편에 서 있다. 중국이 이렇게 북한 문제에 접근하면 핵 폐기는 더욱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다. '曲突徙薪(곡돌사신)'으로 가야만 한다. 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21일 보도했다.ⓒ뉴시스
지난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21일 보도했다.ⓒ뉴시스

한반도 정세 새 향방 가려질 듯

주된 관심은 실제 시 주석의 이번 방북 결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남북 대화와 북·미 접촉 모두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북이 일단은, 협상재개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 정권을 옥죄고 있는 국제적인 대북 제재의 성패도 중국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방북 발표를 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도맡던 중재자 역할을 시 주석이 대신할 것 같은 기류다.

북중 정상 간 회동의 최대 현안은 한반도 정세 안정 관련 논의다. 미중 미북 갈등의 장기화가 자칫 비핵화 프로세스를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이 이뤄진 만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의 순풍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청와대가 ‘시 주석 방북 문제를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북-중의 만남에 우리의 의중이 들어 있다’고 밝힌 것도 그런 기대감을 키운다. 

만약 김 위원장이 미국과 다시 대화에 나설 뜻을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과 조기에 3차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대해 봄직한 계기와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시 주석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기고가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이례적 기고문에서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룩되도록 공동으로 추동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의 태도는 교착 국면에 빠진 북미회담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신호다.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그 중재 역할을 중국이 맡도록 하면서 중국의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북한 또한 명분에서 실리를 챙기는 모양새가 됐다. 향후 진전과 파장에 따라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향방이 가려지게 됐다.

‘폐기’에서 ‘동결’ 선회 가능성은 심각

여전히 비판론이 적지 않다. 이번 시 주석의 방북 결과는 북핵에 관한 한 국제사회의 기류가 ‘폐기’에서 ‘동결’로 선회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시 주석은 방북 전 북한 노동신문 기고에서 "대화를 통하여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북한의 '합리적 관심사 해결'에 대한 지지는  미국이 주장하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이 아닌, 제재완화와 안전보장을 포괄하는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에 힘을 보탠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의 방북이 알려진 직후 미 백악관이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된 비핵화(FFVD)"라고 선을 그은 것도 바로 이런 점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이번 방북 결과는 중국 최고 지도자가 14년 만에 방북했다는 시의성 차원을 넘어, 북한의 1차 핵실험 뒤 북·중 관계의 근간이 흔들린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북핵 폐기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할 수도 있다. 

시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와 당국자 발언 등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북핵 국제 공조가 붕괴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완전한 핵 폐기가 보장돼야 제재 해제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북한은 부분적 비핵화를 제시하며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 전략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최고조로 심화된 상태에서 북한을 협상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도 엿보이는데 이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대북 제재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은 미중 대립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과 함께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고 비핵화의 수레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영향력을 과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미 대통령 선거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제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을 뒷배로 활용하는 가운데 북·중 밀착이 지나쳐 북·중 vs. 한·미의 대결 구도가 노골화돼서는 안 될 것이다. 동맹인 미국과, 경제 관계가 밀접한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좁아져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극대화해 보이려면 비핵화의 주요 축으로서 적극적으로 관여할 공산이 더 크다. 다만,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북핵 해법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북한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단거리 미사일 발사 를 했다. 연말까지 시한을 정해 놓고 미국에 계산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미국이 오판할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해 놓은 상태다.

중국과의 밀월을 배경 삼아 북한도 덩달아 남북 또는 미·북 협상에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온다면 북핵협상은 한층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런 때 중국이 북핵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면 미·중 관계도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를 엄격히 이행하면서 북한을 남북 그리고 미·북 대화의 장으로 불러낼 때에만 비로소 시 주석의 방북 카드도 국제사회 호응과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제대로 가야한다. 

협상 복원 계기 돼야 

최근 비핵화 협상 관련 분위기는 대화의 물꼬가 트일 때가 된 거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낙관을 가능케 한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여전한 신뢰를 보내며 잇따라 대북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북한도 새로운 셈법을 갖고 나오라고 미국을 압박하긴 하지만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다. 

북한이 이희호 여사 장례에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조화와 조의문을 보냈고,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 기념우표 발행 등 북한 측에서도 긍정적 신호가 감지된다.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관련 기념품을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유럽 순방 중에 언제든 김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며 대화 재개를 거듭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시 주석의 방북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한·미가 굳건한 공조를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다시 나오게 해야 할 때다.

대북제재 전선 붕괴 우려 

물론, 시 주석은 경쟁국인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번 방북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이 가열되는 시점이라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방북을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시 주석으로선 김정은의 후견인으로서 영향력을 확인하는 한편, 이달 말 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해법을 내밀며 미중 갈등의 휴전을 노릴 수도 있다.

중국은 지금 미국과의 무역갈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게다가 미국은 송환법 관련 시위를 벌이는 홍콩은 물론 대만 문제까지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현재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출품에 관세 25%를 부과하고 있으며, 나머지 중국 수출품 3000억달러에 대해서도 관세 25% 부과를 압박하며 지식재산권 보호 등에서 중국이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을 국가로 표현하고 홍콩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에 유리한 무역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 분위기 반전 카드로 북핵 협상 방안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북·중 정상의 만남은 늘 대미 압박 카드로 활용됐다. 시 주석이 북핵 문제를 미·중 무역전쟁의 지렛대로 사용하려 든다면 모처럼 조성된 대화 기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시 주석이 앞으로 김 위원장의 제재 완화나 경제 지원 요청에 힘을 실어준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선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낳을 뿐이다. 북한이 지난해 초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중국까지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인도적 지원을 명목으로 북한에 대규모 쌀과 비료를 무상 지원하며 대북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음을 주목치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비핵화보다는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써온 게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고 버티는 건 중국이 ‘뒷배’를 봐주는 데도 원인이 있다.

비핵화 결단 압박 초점 맞춰야

결국 향후 각국의 북핵문제 입장조율 방향이 관건이다. 

최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까지 보내며 톱다운 방식의 타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은 오히려 유보적이다. 대북 제재 방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추가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임은 물론이다.

그간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던 문재인 대통령마저 북유럽 순방에서 거듭 북한이 먼저 핵 폐기 의지를 실질적으로 보이라고 촉구한 것은 그만큼 북한에 대한 답답함과 실망감을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북유럽 3개국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인 스웨덴에서 강조한 ‘스웨덴의 길’은 종전에 비해 단호하고도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할 만 하다. 핵을 포기하고 평화를 선택해 번영을 누리는 스웨덴을 모델로 삼으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이어서 재래식 무력에 대한 군축도 함께 노력하자”며 ‘선(先) 비핵화, 후(後) 재래식무기 감축’이라는 향후 구상까지 내비쳤다.
북핵 협상방식에 있어서도 문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는 실무협상 우선으로 돌아섰다. "미·북 간의 구체적인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실무자 준비 접촉을 거쳐 정상회담을 갖는 전통적인 보텀 업(bottom-up) 방식 대신 정상 간 합의로 먼저 돌파구를 연 뒤 실무자들이 구체적인 방안을 뒷받침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북핵 문제를 잘 아는 미국 실무자들을 건너뛰고 정치적 업적에 목말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으로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는 김정은과 한편에 섰던 것이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선(先) 실무협상 후(後) 정상회담' 방식이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피할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문 대통령도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북한에 완전한 핵 폐기를 촉구하고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 방침을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해 왔던 종전과 다른 자세를 보였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 외교도 이제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을 압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시 주석의 북한 방문은 한미 정상의 진전된 입장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돼 당사국 간 입장차이가 줄어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정도 앞둔 3월, 6ㆍ12 1차 북미 정상회담 전후인 5월과 6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올해 1월에 각각 중국을 찾는 행보를 보였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북을 계기로 다시 최종 입장 수정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한•미•일 공조 강화를 

이런 시점에서 향후 우리 정부의 입장과 태도도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한·미 동맹을 탄탄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청와대의 화웨이 감싸기로 한·미 균열은 표면화하고 있고, 한·일 관계도 대법원 징용판결, 초계기 갈등 등으로 인해 최악 상태다.

북한의 핵 사기극에 국제사회가 속으려 해도 대한민국 대통령만은 "진짜 비핵화를 하라"고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동안 이 당연한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 편에 서서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보증하는 역할을 때때로 해왔다. 

지난해 3월 우리의 방북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결단을 듣고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재개의 결심을 받아 낸 것처럼, 북미 교착을 풀기 위한 남한의 ‘2019년 버전’ 역할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판문점이든 어디서든 남북 정상이 만나 하노이 회담 결렬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시설 폐기만으로는 미국의 민생부문 제재 해제를 얻지 못한 교훈을 살려 북한이 대담한 핵폐기를 실천에 옮기도록 남측이 제안하는 한편 미국과도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공조 태세가 어긋나선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북유럽 국가들 순방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촉구한 것도 공조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설혹 북·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주장과 달리 ‘단계적 비핵화’ 방안이 도출된다고 해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주변국 사이에서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여러 방안이 제시되는 가운데서도 우리 입장만큼은 확실히 지킬 필요가 있다.

북핵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우방국인 미국·일본과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 북중러 3국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길 경우 북핵 해결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어느 때보다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단계적 해법에 매달리면서 외톨이 외교를 고집하기에는 한반도 정세가 너무 엄중하다.

중국은 6·25 때의 ‘항미원조(抗美援朝)’까지 들먹이며 북을 감싸는데, 문 정부가 북 ·중에 절절매며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문 정부는 북핵 완전 폐기를 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

협상 동력 살리는 계기로

다른 한편으로, 한국 정부는 중국과도 긴밀한 소통의 끈을 이어가면서 시 주석 방북을 비핵화 협상 동력을 살리는 계기로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아직 살아 있는 만큼, 정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남북 정상의 만남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모든 채널을 총동원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시진핑 정부의 도움을 계속 끌어내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비핵화 조치를 선제적으로 단행하도록 시진핑 정부를 더욱 설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중 간에는 북핵 문제 외에도 앙금과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우리는 미·중 무역분쟁의 한가운데에 끼여 자신들의 편에 서라는 압력을 양쪽에서 받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이 이달 말로 확정된 만큼 어떻게든 시 주석의 서울행도 성사시키는 게 필요하다.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시 주석을 이해시켜야,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중국의 압박과 이에 따른 후유증도 덜 수 있다.

미국은 최근 우방 25국과 함께 유엔 안보리에 북한에 대한 추가 정제유 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미 국방장관 대행은 중국 카운터파트에게 북한의 불법 환적 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주며 제재를 독려했다. 

정부는 하노이 회담 직후부터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부분 제재 해제 카드를 꺼내 들며 미국을 설득하려다가 몇 차례 면박만 당했다. 문 대통령도 북의 가짜 비핵화를 감싸고 도는 방식으로는 돌파구가 없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먼저 진짜 비핵화 의지를 보이라'는 문 대통령의 이번 새로운 메시지는 한 번에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도 핵을 내려놓지 않고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거기서 비핵화의 실낱 같은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北, 핵 폐기 실무협상 응해야

북한으로서도 이번 시 주석의 답방은 북미 핵 협상에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친서까지 보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완벽한 비핵화 진전 없이는 북미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협상을 위해 북한에 지금 중국이라는 뒷배의 후원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러시아와의 밀착 행보로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북한의 외교전략은 과거에도 이미 수차례 확인됐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든든한 지원 약속을 받으며 미국의 빅딜 압박을 교묘히 피해갔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에 인도적 차원의 쌀·비료 제공이나 북한관광 활성화 등의 ‘선물 보따리’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한다. 유엔 제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되 북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조치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 경제 우선주의를 내세웠지만 북미 협상이 막히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원은 규모와 상관없이 가뭄의 단비일 것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이에 안주하며 비핵화 의지를 의심받을 만한 조치를 취하거나 지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외면할 경우,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건 김 위원장의 결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북유럽 3국 순방 중에 일관되게 호소한 것은 김 위원장의 대화 복귀다. 문 대통령은 할 말을 다 했고,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문 대통령은 “시기·장소·형식을 묻지 않고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간 직접 대화보다 문 대통령을 통한 비핵화 의지 전달이 더 효율적임을 알아야 한다. 제재 해제는 물론 협력과 지원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한국이다. 이제 그의 결단만이 남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유럽 3개국 국빈방문을 마무리하면서 “평화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당장 실행 가능한 실천적·적극적 평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남북대화, 북·미 협상이 결국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성찰해 보자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 "(김정은과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북한이 진짜 핵을 버릴 준비가 됐는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속여 넘겨 핵 보유와 제재 해제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꿈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다시 사전 핵 폐기 구체적 합의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가 하노이 때처럼 노딜로 끝나면 미·북 협상 구도 자체가 완전히 허물어질 위험성이 높다. 김정은이 정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풀고 북을 정상국가로 복귀시키고 싶다면 먼저 핵 폐기 실무협상에 응해 핵 리스트를 제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북중은 1,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도 정상회담을 열어 ‘혈맹의 협의와 조정’을 해 왔다. 따라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이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문을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화통화에서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미·중 정상의 통화는 양국 간 무역전쟁으로 껄끄러워진 관계를 반전시킬 계기가 될 것으로 해석됐다. 

여기에다 이달에는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미·중, 한중 정상회담이 뒤따른다. G20 무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 주석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6월 말이 남북미 대화의 동력을 살릴 절호의 기회다. 

‘대화와 신뢰’ 회복 출발점으로

이달에 진행되는 일련의 정상외교 이벤트는 북미가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도록 새 접점을 찾을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북미는 모처럼의 기회를 잘 살려 대화의 동력을 되찾아야 한다. 이와 맞물려 4차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대화와 교류의 새 돌파구도 마련되길 바란다.

한국 당국은 모든 것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6월 마지막 회담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환경을 만드는 데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6월 말 7월 초는 하노이 이후 정체된 한반도 정세가 명실상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대화와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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