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지침서③] 김가영 “生으로부터 탈출해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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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지침서③] 김가영 “生으로부터 탈출해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역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6.22 02: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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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가영 청년 부대변인
“청년세대, 노동은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재화 획득과정뿐 아니라 일상생활 불안에도 공정성 판단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이 청년 지침서(指針書)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생각과 고민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글이다. 지침서의 세 번째 페이지를 장식할 사람은 정의당 김가영 청년 부대변인이다.

김 부대변인은 이공계 출신으로 약 10년 간 모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안정적으로 사회에 잘 자리 잡았지만, 도리어 그 시절을 ‘생(生)’과 ‘정치’를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삶과 정치는 연결됐다고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 밥 먹듯 하는 야근과 주말 근무에 정치는 뒤쳐질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는 직장인에겐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참여한 정의당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를 계기로 청년 부대변인을 맡았으며, 지금은 정의당 여성위원회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직자로서 정의당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내부인’과 그럼에도 정의당의 아픈 지점을 객관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외부인’,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중간자’에 가까웠던 김 부대변인을 21일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지침서의 세 번째 페이지를 장식할 사람은 정의당 김가영 청년 부대변인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침서의 세 번째 페이지를 장식할 사람은 정의당 김가영 청년 부대변인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정의당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다른가.

“‘민주당 2중대’라는 별명처럼 애매한 스탠스(stance)나 눈치 보는 모습에서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당이 조금 더 선명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 당이 선명해지면 지지세력 확장에 문제가 있지 않나.

“정의당이 대중진보정당의 노선을 고민하기 때문에, 우리의 메시지를 말하지 못하고 오른쪽을 의식한다. 오른쪽으로 한 발 갔다 뒤로 빠졌다 다시 한 발 갔다 하는 행보가 과연 대중적인가를 생각해보면 물음표다. 시대적 부름이나 호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명한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정의당이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의당이 대변해야 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선명한 메시지가 대중적이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

- 2030 청년세대의 고민은 무엇인가.

“청년들을 보면 일정 부분 체념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청년들은 ‘내가 모자라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이만큼의 인생을 바쳤는데, 너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는 네 노력의 산물이다’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있고, 이것이 사회적 진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단순히 취업이 안 되는 것, 집을 살 수 없는 것을 뛰어넘는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

김 부대변인은 4월 창원성산 재보선 때 이상했던 점을 얘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부대변인은 복지가 나를 호명한 적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그래도 문재인 정부에서 많은 청년 정책을 내세웠다.

“지난 4월 여영국 후보의 선거유세단으로 참여하며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의외로 시장에서 많은 분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며, ‘아가씨,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든가 ‘이렇게 하면 자영업자들 ‘그런 식으로 하면 자영업자들 못 먹고 산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근데 과연 그럴까? 과연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분들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내가 됐든 남이 됐든 간에 강하게 피부로 느끼시는 게 있다. 

반면 지금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평등이나 복지 같은 가치는 누가 손에 쥐어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맞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 손에 복지를 쥐어준 적이 없으면, 복지에 대해서 ‘저 많은 돈이 어디로 갔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이 복지가 나를 호명하는지, 내 손에 쥐어진 적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 창원성산 재보선에서 여영국 후보가 예상과는 달리 적은 표차로 당선됐다.

“표심에 대해서 정확히 분석하긴 어렵지만, 선거유세 하면서 이상한 점은 있었다. 정의당과 자유한국당 양쪽 모두 마이크를 잡고 ‘창원의 경제를 누가 무너뜨렸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사실 한쪽 캠프에서만 말하는 게 맞지 않나. 또한 실제로 정의당에 표가 나온 지역은 의외로 경제적 수준이 좋은 곳이었다는 점도 특이했다.”

- 아이러니하다. 정의당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인데 정작 노동자들은 지지하지 않는 건가.

“맞다. 청년 세대를 봤을 때, 노동은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대학을 나왔으니 똑똑한 사무직이라 보고, 노동은 블루칼라에 한정된 기제라고 본다. 사실 임금 받고 일하면 모두 노동자이지 않나. 그런데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이미지만이 부각돼 대다수의 청년들은 본인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단순 취업이나 주거 문제를 떠나서 ‘네가 못나서 이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다닐 때 친구들에게 ‘너 노동조합 가입하라는 얘기 들었니?’라고 물으면 대다수가 기억을 못하거나 ‘우리 회사에 노조가 있나?’라거나 ‘우리 생산직 아닌데 노동조합 가입할 필요 있나?’는 반응이 돌아왔다. 학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못난 부분을 노동조합을 통해서 커버한다는 사고가 무의식중에 깔려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의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 내 또래에게는 내 얘기가 아니고, ‘노동 얘기는 80년대에 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노동은 분명 우리 당의 정체성인 가치지만 이를 국민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세련돼질 필요도 있다. 관심이 없는 청년들에게 ‘너도 노동자’라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나.”

김 부대변인은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정의당의 철학이 괜찮다고 평가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부대변인은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정의당의 철학이 괜찮다고 평가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정의당만의 특별한 청년 정책이 있나.

“모든 정당에서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가 아니라 아카데미를 통해서 당에서 키우려고 한다. 외부에서는 그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정의당은 서로 싸워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처음엔 나도 ‘정치 아카데미인데 왜 토론을 안 할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당에서는 정치는 누구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정의당은 청년세대를 모이게 하는 과정을 엄청나게 똑똑한 리더 한 명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청년 당사자로써 혹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겠다는 철학이 있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정의당의 철학이 괜찮다고 본다.”

- 정의당 여성위원회 차장으로서 젠더문제에 대해 얘기한다면.

“젠더문제에 대해 갈등이란 말을 붙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동등한 대상을 두고 해야 하지만 여성이 아직 차별받는 사회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건 갈등이 아니다. 최근 20대 남자 담론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데, 왜 20대 여성은 아직도 문재인을 지지하는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마치 남성 집단에 대해서는 ‘우리 큰아들 잘돼야 하는데’라는 심정으로 보면서 왜 우리 큰 딸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는가. 여학생에게 위협받는 남학생은 있을 수 있지만, 여직원에게 위협받는 남직원은 없다. 공정이라는 단어를 쓸 때 재화의 획득과정만 얘기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겪고 있는 불안에 대해서는 왜 공정한지 아닌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가.”

- 청년으로서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딜레마가 있다. 고용과정 속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깨려고 하는 사람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여성에게 두드러진다. 내가 팀장으로, 상무로 진급하고 싶은데 되지 않을 때 좌절을 갖고 문제를 직시한다. 반면 우리 사회 최하층에 있는 분들은 채용 상의 성차별이 들리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만으로 벅찬 사람들에겐 채용 성차별이 아니라, 채용 그 자체를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기 때문이다. 생으로부터 탈출해야 정치영역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대다수의 분들은 생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 청년도 마찬가지고.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해서 변화를 가져 오려면, 생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역설이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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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스 2019-06-22 08: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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