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직접 뛴다’ 대기업 총수들, 광폭행보…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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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직접 뛴다’ 대기업 총수들, 광폭행보…왜?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6.27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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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 총수들이 최근 일선현장에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극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재계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분석들이 제기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기업 오너들은 지난 26일 서울 한남동 승지원을 찾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심야 회동을 가졌다. 이번 회동은 앞서 청와대 오찬에서의 만남이 너무 짧기에 정부와는 무관하게 마련된 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회동이 성사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 총수들이 승지원에 모인 게 지난 2010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만찬 이후 9년 만에 처음인 데다, 특히 향후 반세기 가량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 차세대 재벌 오너들이 주도적으로 해외 귀빈과 별도의 만남 자리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최근 글로벌 시장 불투명성 심화, 내수 경기침체 가속화 등으로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인 만큼, 총수부터 솔선수범해 난관 타개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요즘 대기업 오너들은 일선현장과 공개석상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유명 축구선수 기성용은 국가대표 시절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돌이켜 보면 그 발언은 팬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팬들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 여의치 않은 여건 등으로 쌓인 불만이 표출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은 답답해서 직접 뛰는 길을 택했다. 경제위기감 고조, 자신의 리더십과 능력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 비우호적인 경영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재벌 오너들, 〈시사오늘〉이 그 배경을 짚어봤다 ⓒ 시사오늘
유명 축구선수 기성용은 국가대표 시절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돌이켜 보면 그 발언은 팬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팬들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 여의치 않은 여건 등으로 쌓인 불만이 표출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은 답답해서 직접 뛰는 길을 택했다. 경제위기감 고조, 자신의 리더십과 능력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 비우호적인 경영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재벌 오너들, 〈시사오늘〉이 그 배경을 짚어봤다 ⓒ 시사오늘 김유종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 주주총회 등 그룹 정기행사에 워낙 참석을 꺼려서 '침묵의 리더십'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면담, 같은 해 10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 면담, 올해 2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청와대 국빈오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왕세제와 공장 견학, 지난 4월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문 대통령과의 만남, 이달 비(非)전자 계열사 삼성물산 방문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또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가치라는 특유의 철학을 앞세워 국내외 여러 포럼, 강연회 등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설파한 데 이어, 지난 25일에는 '행복전략'이라는 새로운 경영실천 방안을 제안하는 등 재계에 의미 있는 신(新)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밖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수소경제에 보폭을 맞추면서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제시해 부친 정몽구 회장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채를 뽐내고 있으며, 취임 1년차에 접어든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탈권위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며 그룹 안팎으로 자신의 입지를 활발하게 구축 중이다. 특히 구 회장은 R&D센터를 자주 방문하는 현장경영 행보를 보이며 연구개발과 인재확보에 방점을 둔 눈치다.

일각에서는 재벌 대기업 오너들의 이 같은 광폭행보에 대해 다른 풀이도 나온다. 대승적인 측면보다는 자신의 안녕에 더 무게를 둔 행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데다, 과거 자신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최태원 회장도 같은 논리로 풀이된다.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결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동거 등으로 국민 시선이 곱지 않은 실정에서 사회적 가치와 행복론 설파는 일종의 브랜드 이미지 개선작업과도 같다. 한국투자증권과의 불법대출 문제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의선 부회장, 구광모 회장 등은 그룹 안팎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젊은 오너들이다. 정 부회장은 아직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엘리엇의 공세도 방어해야 한다. 구 회장은 1년 간 승계절차를 밟는 일에 집중하느라 아직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외 행보가 절실히 요구되는 오너들"이라고 부연했다.

재계에 능통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재벌개혁 구호를 더 강하게 외칠 공산이 크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들어간 것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 공정경제를 실제로 더 강화하느냐, 마느냐 문제를 떠나서 국민들에게는 이미 김상조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반재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느냐. 그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요즘 재벌 총수들 행보를 보면 그야말로 친(親)정부 일색이 아닌가. 이것도 비슷하다. 친정부 행보를 통해 실제로 실익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를 떠나서 '정부가 반재벌이라서 재벌은 어쩔 수 없이 친정부네',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재벌은 말도 잘 듣는데 왜 자꾸 때리는 거야'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는 효과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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