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정치’ 자극하는 박원순의 ‘천막철거 정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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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정치’ 자극하는 박원순의 ‘천막철거 정치’, 속내는?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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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고? “오히려 그 반대”
진보 집결·보수 궤멸 동시에 노린 강경 대응… “朴은 치밀한 사람…정치 세력화 염두에 뒀을 것”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우리공화당이 시작한 ‘천막 정치’를 일부러 자극하는 박원순의 ‘천막철거 정치’에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박 시장이 진보의 집결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한국당의 궤멸을 동시에 노렸다고 분석했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우리공화당이 시작한 ‘천막 정치’를 일부러 자극하는 박원순의 ‘천막철거 정치’에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박 시장이 진보의 집결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한국당의 궤멸을 동시에 노렸다고 분석했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여의도 당사(黨舍)를 처분하고 여의도공원 맞은편에 천막을 설치했다. 천막을 당사로 삼고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다고 읍소했다. 성과는 확실했다. 한나라당은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을 획득하며 제1야당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13년.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도 천막 당사를 설치하고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된 단독회담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야 대표와 대통령의 3자회담은 성사됐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존재감을 높이려던 김 대표는 54일 만에 특별한 지지율 반등 없이 빈손으로 원내 복귀해야 했다.

두 경우는 일명 ‘천막 정치’의 사례다. 노상(路上)에 천막을 설치하고 지지층을 집결시켜 세를 키우려는 전략으로, 내년 총선을 앞둔 우리공화당(구 대한애국당)이 선택한 작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천막 정치'에 대응하는 정치인 박원순의 '천막철거 정치'에 정치권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5일 공화당의 광화문 불법 천막을 강제 철거하며 전에 없던 강경 대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엔 진보 결집과 한국당 궤멸을 노린 두 가지 책략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극우보수 결집에 맞선 진보 결집… ‘진보의 왕벌’로 설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주장하는 애국당은 지난 5월 10일 광화문 광장에 서울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천막을 기습적으로 설치했다. 이에 시는 바로 다음날부터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수차례 보냈지만, 애국당 측은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천막을 당사로 삼아 당명을 우리공화당으로 변경하는 최고위원회의까지 열었다. 

그때까지 무력 집행은 없었다. 서울시와 박 시장 측은 ‘일단 두고 보자’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던 지난 25일, 천막 설치 46일 만에 박 시장은 강제 철거 조치를 내렸다. 시 공무원들과 용역업체 직원까지 투입됐다. 공화당은 박 시장을 비웃듯 5시간 만에 같은 자리에 천막을 무려 5배나 늘렸다. 현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으로 인해 잠시 청계천 광장으로 천막을 임시 이동한 ‘휴전 상태’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한 민주당 지지자는 박 시장의 이번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법적 문제가 없는데 철거한 게 아니잖아요. 서울시장으로서 올바른 행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애국당 같은 극단적 세력이 소규모라고 해서 계속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럼 우리(진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기 쉽죠. 결과야 어찌 됐든 간에 그쪽에게 한번 본 때를 보여줄 필요는 있었다고 봐요.” (30대 여성, 서울 송파구 거주)

박 시장이 극우 보수 세력을 무시하지 않고 일침을 한 것이 진보당 지지자로서 속 시원했다는 소리다.

실제 진보 지지층에서 박 시장은 이번 ‘천막 철거 정치’를 통해 그간 쌓아온 행정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결단력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강조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지난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치를 하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외적 갈등은 내적 통합을 항상 유발하기 때문”이라며 “외부의 적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돕는다. 그것이 바로 루이스 코저가 말한 갈등론의 제1법칙”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적용하면, 극우보수인 공화당·태극기 세력과 박 시장이 전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위기의식을 느낀 진보 지지층이 박원순 시장을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 이후 박 시장이 진보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당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6일 기자와 만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민주당 안에서도 나름 큰 계파를 차지하고 있다”며 박 시장의 정치 세력이 앞으로 더 비대해질 가능성을 높게 샀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도 지난 2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화당의) 태도는 정말 옳지 않다. 그건 보호해 줄 가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기준이 있고 정확하게 원칙이 있으니 그대로 집행해야 되는 것이 맞다”고 본격적으로 박 시장을 거들었다.

박 시장은 내심 공화당의 ‘몸집 불리기’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사오늘
박 시장은 내심 공화당의 ‘몸집 불리기’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사오늘

◇ 박원순,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고? 오히려 반대… 공화당 키워 보수 죽이기

“천막만 더 커졌잖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 것 아닌가요? 광화문이든 청계천이든, 기자들이랑 천막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지나다닐 때마다 짜증이 납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지나다니는데 국격(國格) 떨어지게….” (20대 남성, 서울 종로구 거주)

‘제3당을 지지한다’고 말한 한 시민은 이날 기자와 만나 박 시장의 천막 철거가 ‘긁어 부스럼’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을 비롯한 극우 보수 시민들이 저항할 빌미를 왜 굳이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실제 정치권 일각과 일부 언론에서는 왜 체급(體級)도 되지 않는 약소한 우리공화당(공화당)을 공격해 그들의 세력화를 돕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박 시장의 철거에 분노한 극우가 더욱 결집하면, 공화당이 내년 총선에서 득세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시장의 행정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냥 무시했으면 한국당도 조용하지 않았겠느냐”며 “보수들이 비교 대상으로 자꾸 ‘세월호 천막’ 얘기를 하게 만든 것도 사실상 박 시장 탓”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과 한국당이 강제 철거에 대한 비난 근거로 ‘세월호 천막’을 들이미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도 지난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화당에 대해 “옛날 친박연대처럼 정당에 대한 전국 지지도가 어느 정도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기반으로 일정 이상의 비례대표 확보할 수 있다”며 공화당의 세력화 가능성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박 시장은 오히려 역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내심 공화당의 ‘몸집 불리기’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문종 의원을 포함해 공천 경쟁에서 탈락한 한국당 내 친박(親朴) 의원들이 공화당으로 결집하면, 그동안 보수에서 우위를 점했던 한국당이 TK·PK 지역 총선에서 위기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PK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어부지리로 득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1일 한국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TK에서 창원성산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지난 4·3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한국당 강기윤 후보가 애국당 진순정 후보와 표가 갈려 정의당 여영국 후보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수 분열이 PK를 비롯해 전국으로 확대된다면, 한국당은 큰 피해를 입고 보수 세력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7일 기자와 만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은 굉장히 전략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라며 “정치 세력과 표를 모으는 작전에 있어서 상당히 계획적이다. 모든 것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요컨대 시민의 공간인 광화문 광장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정치 대결, 그 가운데서도 공화당의 저항 행위와 그에 맞선 진보의 역(逆)결집은 박 시장의 차후 정치 행보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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